[김희원 칼럼] 검찰, 사람에 충성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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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김건희 여사를 출장 조사한 검사들이 억울해했다.
이원석 총장의 진상조사 지시에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거부와 다름없는 연기 요청을 했고, 김경목 검사는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진상조사의 대상이 되다니 화가 난다'며 사표를 냈다가 돌아왔다.
총장 패싱 인사가 반복되고 검사들이 공직에 진출하면서 검찰은 독립적 수사기관이 아닌 권력의 부속기관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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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불신 키운 김 여사 대면 조사
대통령에 충성해 검찰 망가뜨리나
독립성·공정성 원칙 다시 세워야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김건희 여사를 출장 조사한 검사들이 억울해했다. 이원석 총장의 진상조사 지시에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거부와 다름없는 연기 요청을 했고, 김경목 검사는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진상조사의 대상이 되다니 화가 난다'며 사표를 냈다가 돌아왔다. 이런 반발에 놀랐다. 특혜와 예외로 가득한 조사절차가 수사의 공정성을 흐린 건 안 보이는 걸까. 김 여사를 기소한다면 모를까, 면죄부 주고 끝낼 거라는 예상이 벌써 파다한 건 어쩔 셈인가.
김 여사가 성역이냐는 비판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들이 항소심 판결을 앞둔 상황에도 검찰이 한 번도 소환하지 않은 선택적 수사에서 비롯했다. 총장의 소환조사 원칙을 묵살하고 검사들이 대통령경호처 청사로 찾아가 휴대폰을 맡긴 채 실시한 저자세 대면조사는 성역을 재확인한 꼴이 됐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고발 후 4년을 뭉개다 하루 조사로 끝낼 만큼 가볍지 않다. 김 여사가 시세조종을 알고 있는 듯 보이는 통화 녹취록이 여러 개다. 검찰이 1심 재판부에 제출한 종합의견서에선 김 여사 모녀가 시세 차익으로 번 수익이 23억 원에 달한다고 기재돼 있다. 재판부는 수익 실현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김 여사 관련 혐의는 구체적 판단 없이 넘어간 게 많다. 제대로 조사해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23억 원 수익의 일부라도 사실이라면 그만큼 개미들이 피해를 봤다는 뜻이다. 선의의 투자자로부터 약탈한 범죄수익이다. 공범들 재판에서 “(주가조작은) 다수의 선량한 투자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강조한 검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수사팀의 ‘하극상 수사’를 두둔하는 말이 검찰 내부에서 나오는 건 더 당혹스럽다. 여러 기사에 인용된 검사들 발언을 보자. “김 여사 측이 원칙대로 하면 ‘안 나오겠다’고 버티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 (…) 절충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대면조사를 이끌어내지 못해 ‘봐주기 논란’이 일었던 사건을 어떻게든 매듭지으려다 나온 결과일 수도 있다.” “총장이 잘못은 짚되 포용할 부분은 포용하고 넘어가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눈치껏 대통령 부부의 심기를 살펴서 제3의 장소로 절충한 조사를 포용하고 무혐의로 매듭지으라는 말이 아닌가. 은밀한 속내를 버젓이 드러내는 게 민망할 지경이다. 검찰은 공정하게 보이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검찰총장이 임기 중 정치에 직행해 대통령이 된 여파가 이런 것이다. 총장 패싱 인사가 반복되고 검사들이 공직에 진출하면서 검찰은 독립적 수사기관이 아닌 권력의 부속기관이 돼 버렸다. 검찰이 언제는 정치적이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르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권력에 굴종하는 건 다른 문제다. 검찰 직할체제를 구축한 대통령과, 섣불리 검찰을 개혁한다는 야당 사이에서 제도 자체가 망가지고 있다.
자긍심을 갖고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이 여전히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검사들이 결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검찰의 독립성, 공정성은 우습게 버려지기엔 너무 중요한 거라고 목소리 내기를 바란다. 검사들이 항의의 사표를 던질 때 그 대상은 원칙적 수사를 지시한 총장이 아니라 수사를 방해하는 권력이어야 한다. 검사들이 나서지 않으면 거악은 누가 척결할 것이며, 선량한 시민들의 범죄 피해는 누가 구제할 것이며,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믿음은 누가 지킬 것인가. 제도에 충성해 검찰을 구해야 한다. 검사들은 사람에 충성하지 마라.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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