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도 칼럼] ‘BNK 맏며느리론’에 더해야 할 것
경쟁 앞서 존재 이유 성찰…혁신 새바람 고루 퍼지게
‘전국 종갓집 맏며느리협회’는 유홍준이 결성을 시도하다 포기한 단체 이름이다. 학자로 행정가로 글쟁이로 유명한 그는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에 사연을 소개했다. 답사를 다니며 종갓집 맏며느리를 만날 때마다 자부심으로, 사명감으로, 운명적으로 종가의 전통을 지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단다. 종부들은 안팎으로 두 가지 고통을 견딘다. 하나는 문화재로 지정된 종가를 고치려 할 때 생긴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나 지방자치단체와 길고 답답한 허가 실랑이를 벌인다. 또 하나는 종갓집에 홀로 남아 겪는 어려움이다. 종친들이야 행사 때마다 왔다가면 그만이지만 종부는 그들 지청구를 견뎌내야 한다.
협회 사무국장을 맡아 종부들을 대변하려는 뜻을 이루진 못했어도 전국 종부들을 한자리에 모시는 데는 성공했다. 2006년 6월 9일 서울 ‘한국의집’에서 열린 ‘종갓집 맏며느리 초청 간담회’다. 전국에서 38개 종가 종부 60여 명이 모였다. 당시 문화재청장이던 유홍준이 이들을 초청했다. 이 간담회에서도 종부들은 비슷한 하소연을 쏟아냈으나 마음속 응어리는 따로 있었다. “우리는 옛 어르신들 하신 대로 좇아가고는 있습니다만 머지않아 종부가 희귀동물처럼 천연기념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종부가 세월에 밀려 사라질 삶의 흔적이라면 흑백 사진처럼 빛바랜 추억이라 하겠으나 지금도 그 가치가 오롯한 우리의 자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족 제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부모 세대가 있어야 자식 세대가 있고, 그 대물림이 우리 전통이고 문화다.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찾아내 단점을 장점으로, 종부의 위기감을 자긍심으로 바꾸는 건 우리 사회 몫이다.
‘BNK 맏며느리론’을 듣고 떠오른 생각이다. 부산은행은 1967년 설립 이후 부산 경제 젖줄 역할을 해왔다. 2011년 BS금융지주 출범, 2014년 경남은행 인수, 2015년 BNK금융그룹으로 새출발 등 BNK와 동남권 동반성장이 세월을 더할수록 그룹 맏이 기업인 부산은행 할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산은행, BNK 맏며느리론이 나오지 싶다. 부산은행이 ‘부산시금고’ 지정을 위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과 경쟁하면서 더 커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부산은행은 2000년 부산시 주금고 지정 이후 한번도 그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올해 부산시 전체 예산은 15조6998억 원이다. 이 가운데 70%를 주금고가, 나머지 30%를 2금고가 각각 관리한다. 이번에 5대 시중은행이 한꺼번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부산시는 8월 14일 각 은행으로부터 제안서를 받는다. 내년부터 4년간 시 예산을 관리할 부산시금고 윤곽이 드러나는 변곡점이다.
부산은행은 자본금 9774억 원, 임직원 3500여 명의 국내 최고 지방은행이며 최근 5년간 부산은행 1241억 원을 비롯해 BNK그룹 전체 3147억 원인 지방세 납부 실적을 내세운다. 무엇보다 부산 돈이 서울로 역류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가 지방시대에 어울린다. 또 부산 중소기업 지원액이 25조5000억 원이다. 사회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은행은 지난해 순이익의 14.5%인 548억 원을 사회공헌활동에 썼다. 부산에서 얻은 이익을 부산에 환원한다는 약속 이행인 셈이다. 맏며느리론의 배경이며 부산시금고 지정의 당위론으로 여겨진다.
맏며느리론이 여기서 그쳐선 곤란하다. ‘아무리 잘 해도 빛이 안 날뿐더러 그것도 모자란다고 야단’이라며 자탄하지 말라. 내부통제 강화와 혁신 경영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노력이 맏며느리론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4년마다 한번씩 맏며느리 소임을 얼마나 잘 해왔는지, 더 잘할 수 있는지 점검받는 과정에 더해 얼마나 내부를 다지고 혁신의 씨앗을 틔우고 있는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기관경고를 엄중히 여기고 디지털금융시대 신시장 개척 및 해외시장 확장 등 탈지방은행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야 맏며느리론을 대하는 부산 사회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어느 맏며느리 집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루는 따로 사는 막내 며느리가 들렀더니, 시어머니가 혼자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막내 며느리가 한편으론 맏며느리 흉을 보며, 한편으론 시어머니 식사를 챙기느라 오랜만에 바쁘다. 이를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온다. 깜짝 놀란 막내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네 하는 걸 보니 이제 너희 집에서 살아보고 싶구나.” BNK금융그룹이, 부산은행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면 부산시금고를 노리는 시중은행을 다루는 시어머니 노릇은 시민이 한다.
종갓집 맏며느리가 제사상에 피자를 올리는 세상이다. 자신감이 그 바탕이다. 부산은행은, BNK금융그룹은 혁신으로 부산의 변화를 이끌 자신감이 있는가.
정상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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