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떠나는 청년인재들, 사명감 강조만으론 안된다
한국의 청년들이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의료 등 '핵심 인재'들의 마음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초급장교와 부사관, 필수과 의사와 방역 수의사 등 사회의 '기간(基幹) 인재'들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고 있다.
청년이 떠나는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도 10년 전 비슷한 고민을 했다. 1965년 독립한 신생국을 한 세대 만에 선진국으로 발전시킨 리콴유. 2015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한 그는 89세 때인 2013년 출간한 책에서 인재들이 싱가포르를 떠날까 우려하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최고의 우수한 인재를 지키지 못한다면 싱가포르는 더 이상 과거의 싱가포르가 아닐 겁니다. (중략) 당시 고촉통, 림킴산 같은 인재가 있어 지금의 싱가포르를 세웠습니다. 그들이 오늘날의 글로벌 세계에서 젊은 시절을 살았다면 그들은 어쩌면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에 취업해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
은퇴한 리콴유까지 나서서 걱정을 해서 그런가, 지금 싱가포르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책을 잘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과 인재가 10년 전보다 더 몰려들면서 '아시아의 허브'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많은 한국의 청년들도 싱가포르로 건너가 일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청년들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 우선 핵심 인재들이 외국으로 이탈하고 있다. 특히 AI와 반도체 인력의 해외 탈출이 문제다. 미국 시카코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마저도 40%가 해외로 떠나고 있다. 반도체 업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영어 실력이 좋아진데다 취업비자의 문턱도 낮아졌다. 미국이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차이가 나는 연봉 수준도 물론 매우 중요한 이유다.
청년 의사들의 마음도 떠나고 있다. 젊은 수련의는 물론 의대생 중 많은 이들이 미국 등 해외 진출 준비를 하고 있다. 의사 인력은 선진국에서 환영받는 핵심 인재다. 미국은 최근 몇몇 주들이 한국의 의사가 별도의 대학병원 수련 없이 미국 면허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고 있다는 소식이다. 싱가포르는 이미 예전부터 서울대, 연대 등 한국의 몇몇 의대 졸업생에 대해 바로 의사 면허를 주고 있다.
핵심 분야만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기둥 역할을 하는 필수 분야의 청년들도 자기 자리를 떠나고 있다. 군의 허리인 초급 장교와 부사관의 이탈이 급증하고 있다. 병사들은 복무 기간이 단축되고 월급이 인상됐는데, 그들을 지휘하는 초급 장교와 부사관은 그대로이니 마음이 떠난 것이다.
의료에서는 응급의학과,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과 수련의사들이 빈발하는 민형사 소송과 실 근무시간(주 100시간 내외) 대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으로 미용이나 경증 등 비필수 분야로 떠나고 있다. 수의 분야의 필수과라고 할 수 있는 가축방역관도 급여가 높고 근무 환경이 좋은 반려동물 쪽으로 가고 있다.
한국의 핵심 인재들은 왜 조국을 떠나려 하는가. 기간 인재들은 왜 자신의 분야를 떠나고 있나. 애국심이 부족해서? 사명감이 모자라서?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한국의 기성세대와 정치권은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지만, 89세의 리콴유는 10년 전에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싱가포르 일각에서 나온 세금 인상 주장에 대해 리콴유는 이렇게 말했다. "세율을 많이 올리면 최고 인재는 떠날 겁니다. 이미 우리는 인재를 잃고 있어요. 싱가포르 최고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대기업에 스카우트되어 돌아오지 않고 있지요."
리콴유는 애국심이나 사명감만으로 인재의 외국행을 막기 어렵다고 보았다. '세계화된 세상'이며,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정치인들, 착각하지 말라. 청년들이 한국을,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이유는 '애국심'이나 '사명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해서이다. 그러니 사명감만 강조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청년들의 이탈에 대한 해법 마련에 비로소 '착수'라도 할 수 있다. 그래야 미래의 희망을 제시해 돌아오게 할 수 있다. 해법은 '존중과 걸맞은 대우'이다. 청년 인재들이 한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군대, 필수의료, 필수 동물의료 등 기간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기성세대와 정치가 할 일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승민 "사도광산 등재 찬성? `국익 어디에 있나` 尹 답해야"
- "내껀 언제 환불해줘요?" 뿔난 소비자들…속도내는 `티메프`
- 현실판 사랑과 전쟁? “아파트 동거 중 남친이 결혼 석달 앞두고…”
- 이준석이 깐 `고액 월급`에 `부글부글`…의원 특권 폐지 신호탄 되나
- 30대女 “남편, 부동산·코인 또 몰래 투자 후 돈 날려…‘이혼’이 답일까”
- KDI "중장기 민간소비 증가율 1%대 중반"
- 현대차그룹, 폭스바겐 누르고 수익성 톱2 등극
- 믿을 건 밸류업뿐인데…세제 인센티브, 국회 통과 `하세월`
- 코스피 하락 베팅 `곱버스` 거래량↑…"트럼프 리스크 주의해야"
- 성수·영등포 확 바뀌나… 서울 준공업지역 규제 확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