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되니깐’ ‘비바씨’… 어느 1등 소셜 디자이너의 도전
전북 김제에선 지평선을 볼 수 있다. 허허벌판 서부영화 속 풍경 같은 죽산면에 빵집, 자수공방, 와인바가 하나둘 들어섰다. 최별 문화방송(MBC) 피디가 폐가를 고쳐 5도2촌 생활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바람만 스치던 이곳이 입소문을 탔다. 최별 피디의 시골집은 책방이 됐다. 그리고 이 죽산면에 2023년 11월부터 오호진(50) 사회적기업 명랑캠페인 대표와 박설인(44) 도로시앤컴퍼니 대표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스테이 두 곳을 쓸고 닦을 청소기를 들고, 사람들을 모아서 말이다. 이 논과 밭, 아름답지 않냐고 옆구리 찌르면서.
낮은 목소리에 확성기 다는 ‘유희의 인간'
2024년 6월19일 오호진 대표를 만난 날, 죽산면 빵집에 배우 이장우가 다녀갔다. “뭐라고요? 아~ 아쉬워라. 저 연예인 좋아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 ‘덕후’였던 그는 15년 동안 영화·공연을 기획했는데, 52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말아톤>도 그가 속한 팀의 결과물이다. “이 영화로 발달장애에 대한 관심이 확 일어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한이 없다” 싶을 만큼 일한 뒤 공연 기획사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만났다.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빈곤층 아이들이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구스타보 두다멜도 총, 칼 대신 악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 내한 공연을 잇따라 열었어요. 그리고 엘 시스테마가 왔죠. 이 오케스트라를 만든 호세 아브레우 박사도 초청하고요. 그 공연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떤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보다도 뜨거운 에너지가 있었어요.”
2011년 그는 희망제작소에서 열린 ‘소셜디자이너스쿨’에 다니며 사회적기업의 개념에 대해 알게 됐다. “제가 가만히 있으면 병나는 스타일이라 이것저것 막 찔러봐요. 신기했어요. 누군가를 위해 일하면서 나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게.” 2013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상을 타고 2015년 1월 문화예술 콘텐츠로 변화를 모색하는 회사 명랑캠페인을 만들었다. “저는 유희의 인간이에요. 제가 만드는 캠페인이 재밌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아, 회사 그만두지 말걸 하는 생각도 때때로 들죠.” 올해 2024년으로 10년, 그만큼 쉽지 않았다.
‘입법 연극’ ‘명랑캠페인’의 첫 번째 캠페인 목표는 확실했다. 2013년 그가 미혼모 거주시설 두리홈에서 워크숍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시도를 5년씩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두리홈 엄마들과 6개월 동안 30차례 만나면서 그는 이 이야기들을 묵혀둘 수는 없었다. “당시에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어요. 어린 엄마들 대부분 가정이 해체되거나 폭력 탓에 쫓겨나 살다 애정이 고파 아이를 갖게 됐더라고요. 그렇게 저출산이 문제라고 난리 치면서 (미혼모를 차별하는 건) 앞뒤가 안 맞죠. 미등록이주 아동들한테 주민등록 안 주는 상황도 이해가 안 돼요.”
응원 콘서트 부탁으로 만난 2000년대생
입법 연극 〈미모되니깐〉은 그렇게 나왔다. 엄마들이 직접 배우가 됐다. 연극이 끝나면 토론이 벌어졌다. 관객이 무대에 올라 엄마들 자리에 서봤다. 미혼 엄마들의 독백을 담은 〈뮤직토크쇼 모(母)놀로그〉도 올렸다. 의자 세 개 놓을 곳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든 공연했다. 연극을 보러온 국회의원들한테 한부모 관련 법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받자마자 말 바꾸지 못하도록 보도자료로 뿌리고 영상도 만들었다.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그리고 미혼한부모 당사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공청회, 국회를 “미친 듯이” 찾아다니던 시절이었다. 2017년 한부모가족 지원이 국가의 의무란 점을 강조한 한부모가족 지원법 일부 개정, 2018년 양육비 긴급지원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양육비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이끌어냈다. “아, 나 정말 할 일 다 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보호시설에서 자라 만 18살에 홀로 서야 하는 청년들과의 인연은 2019년 한 의뢰로 시작됐다. 같은 건물에 입주한 회사 소이프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응원하는 ‘꽃길만’ 콘서트를 열어달라고 했다. 2013년 그가 어린이 재활병원 모금콘서트를 벌일 때 만난 가수 션이 나서줬다. 뮤지컬 배우들을 대거 섭외했다.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그의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얘네는 잘못이 없는데. 그냥 눈 떠봤더니 시설에서 크고 있는 건데. 어른으로서 미안하더라고요. 그 아이들의 외로움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어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자기는 엄마가 원래 매해 바뀌는 건 줄 알았다고요. 안쓰럽지만 그런 마음은 안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우린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1970년대생과 2000년대생으로 만나려고 한 거예요. 너네는 내 어린 친구들이라고요.”
2024년 6월 그의 생일, 청년들은 장수를 기원하며 홍삼, 소금, 기름을 선물로 가져왔다. 그의 남편은 이렇게 놀렸다. “그 친구들은 너를 어르신이라고 생각해.” 홍삼이 필요한 나이가 된 그도 2022년 아버지가 숨진 뒤 “자신이 막 안쓰러웠다”. “이 나이에도 이런데…. 아이들 마음이 더 느껴지더라고요.”
2020년부터 명랑캠페인은 ‘비바씨’ 캠페인을 벌인다. 자립준비청년들이 “홀로 세상에 떨어진 씨앗” 같아 이탈리아어로 만세(viva)와 영어 씨앗(seed)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인스타그램 웹툰 <독립, 만 18세>에 자립준비청년들의 독립생활 분투기를 담았다. 쓰레기 분리배출에도 서툰 18살들이 대출서류 작성법부터 배워가며 대환장 이사를 하고, 자립지원금 500만원을 아끼며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대학을 졸업한다. ‘뜨루’는 체불임금 600만원을 받는 데 1년 반을 보내고 “쓰레기 더미” 같은 집에 살았다. ‘알로’는 사랑에 빠졌다. ‘비바씨’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자립준비청년이 일상을 직접 담은 ‘비바로그’도 올렸다. 곧 보호시설에서 나가야 하는 예비 ‘비바씨’들이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고 댓글을 달았다. 성공인가? 매출로는 실패였다. 조회 수, 구독자 수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영화 일을 해서 유튜브도 잘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세상이더라고요. 그래도 이 프로젝트들 덕분에 아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어요.”
4도3촌 힘겹지만 이주는 포기
이 경험은 캐릭터 사업으로 이어진다. 자립준비청년들을 모델로 비비, 바바, 씨씨 캐릭터를 만들어 액세서리, 가방 등 상품을 제작했다. 동시에 이 캐릭터들과 연결해 자립준비청년들과 책 모임, 공연 모임을 꾸렸다. 그가 캐릭터 사업에 열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립준비청년 72명의 주택청약통장과 디딤씨앗통장에 매달 5만~15만원씩 보태고 있다. 10개 도시 그룹홈에 음악교육도 벌인다.
캐릭터 상품 가운데 하나인 암막 우산을 펼치면, 김제 평야를 배경으로 캐릭터 ‘씨씨’가 웃는다. 그는 2023년 11월 최별 문화방송 피디와 자립준비청년 관련 다큐멘터리를 논의하다 김제에 처음 왔다.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논밭에 푹 빠져버렸어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어? 기획자의 일은 누군가를 빛내주는 거잖아요. 이 보석 같은 지역을 알려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렇게 박설인 도로시앤컴퍼니 대표와 죽산포레스트 스테이 2곳을 운영하며 ‘영감여행’을 꾸렸다. 온갖 비타민을 털어 먹고 새벽 5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김제에 도착하자마자 청소하고, 2박3일 동안 기사이자 여행가이드이자 요리사가 됐다. 그사이 김제의 매력도 계속 발굴했다. 죽산면 젊은 사장님들과 관광객들이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연결하고, 벽골제에서 요가도 했다. 20대 문화기획자, 음악가, 디자이너들로 이뤄진 영감여행단은 그냥 놀다 갈 수 없었다. 김제에서 받은 영감으로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김제를 담은 노래, 디자인이 나왔다. 암막 우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저희 20대 직원이 강력하게 제안하더라고요. 젊은이들은 네트워크를 꾸리고 한정된 시간 안에 자기 포트폴리오에 더할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한다고요.” 과연 논밭이 통할까? 사람들이 왔다. 영감여행을 7차례 벌였다.
영감여행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일이었다. 여행객당 10만원씩 받아서는 두 사람 인건비는커녕 난방비와 교통비, 식비를 대기도 부족했다. 그렇다고 요금을 올리기에 논밭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죽산면엔 저녁에 할 게 없어요. 그래서 논밭 걷기를 많이 하고 일찍 자게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어요.” 지역의 지원을 받기도 어려웠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 지원이 대폭 줄어든데다 사업 지원 대상도 청년이나 지역민 중심이었다. 4도3촌(4일은 도시에서 3일은 촌에서 생활한다는 말) 삶은 힘에 부쳤다. 주 7일 근무가 이어졌다. 2023년만 해도 그는 김제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남편은 퇴사까지 했다. 그런데 포기했다. “캐릭터 사업이나 행사 기획 관련 일이 서울에 몰려 있고 직원들도 서울에 있으니까요. 이주했다가는 월급도 못 주겠더라고요.” 김제 평야가 여름 볕에 뜨겁게 달아오르자 영감여행은 막을 내렸다.
사비를 털어서 먹고 쉬고 놀게 하는 이유
영감여행은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여행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사비를 털었다. 자립준비청년 18명은 공짜로 김제 죽산면에서 2박3일 쉬고 놀았다. 그가 이 버전의 영감여행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은 이런 장면 때문이다. 그가 점심값을 내고 동네 어르신들이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차려줬다. 20~25살 청년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팔짱도 꼈다. 밥을 배 터지게 먹은 청년들은 말했다. “할머니, 저 여기서 좀 잘게요.”
이렇게 돈을 쓰고도 명랑캠페인은 10년 동안 적자를 낸 적이 없다. 토크콘서트, 뮤지컬, 지역축제, 기념일 등 기획으로 수익을 올렸다. 환경미화원 안전 캠페인, 고독사 위험군에 속한 50대 독거남들의 ‘나비남 영화제’ 등 작은 목소리에 콘텐츠로 확성기를 다는 일도 계속했다. 상처 많은 ‘뜨루’는 일하는 동안 생각이 사라지고 퇴근하자마자 잠드는 물류회사에서 일하다 정규직이 됐다. ‘알로’는 결혼해 아빠가 됐다. 그도 청년들도 쉽지 않았지만 “잘 버텨냈다.”
글·사진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희망제작소×한겨레21 공동기획] X의 지역작당: 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찾아 다 아는 길 대신 미지의 X를 택한 사람들.
*‘X의 지역작당’은 이번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은 곧 새로운 연재로 돌아옵니다. 그간 수고하신 김소민 연구위원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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