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고체 물질 속 ‘암흑 전자’ 존재 첫 규명

노도현 기자 2024. 7. 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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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단위 구조에서 같은 종류의 원자 네 개가 두 쌍(왼쪽 위, 오른쪽 아래 붉은색 동그라미와 오른쪽 위, 왼쪽 아래 푸른색 동그라미)으로 짝을지어 대칭을 이룰 때 발생하는 전자 파동의 간섭 무늬를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어둡게 나타나는 부분이 상쇄간섭의 결과로 전자의 암흑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김근수 연세대 교수 제공

국내 연구진이 고체 물질 속에서 빛으로 관측할 수 없는 ‘암흑 전자’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근수 연세대 교수팀이 미국·영국·캐나다 등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고체 물질 속에서 ‘암흑 전자’의 존재를 처음 규명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게재됐다.

자연에는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아 관측하기 어려운 암흑 상태가 존재한다. 보이진 않지만 다양한 자연 현상에 영향을 준다. 확인되지 않은 암흑 상태의 존재를 규명하는 일은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자연의 기본 입자 중 하나인 ‘전자’도 암흑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암흑 상태의 전자는 원자나 분자에 존재했다. 수많은 연구자는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고체 물질 속의 전자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암흑 상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왔다.

김 교수는 “빛을 이용해 고체 물질 속 전자를 측정하면 이론적으론 보여야 하지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전자가 있다”며 “‘왜 일부 전자가 보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기본적이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학계의 많은 전문가들도 막연한 답변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2020년 같은 종류의 원자가 한 쌍으로 대칭을 이룰 때 발생하는 ‘양자간섭’을 연구했다. 당시 이를 두 쌍으로 확장하면 어떤 조건에서도 관측이 불가능한 암흑 상태의 전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갖게 됐다.

이후 4년간 연구하면서 전자의 암흑 상태를 설명하는 모델을 고안했다. 방사광가속기(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강력한 빛을 만들어냄으로써 극미세 구조까지 관찰할 수 있는 장비)를 활용해 고온초전도체인 구리 산화물에서 관측할 수 없었던 전자가 암흑 상태에 해당하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초전도는 낮은 온도에서 물질의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영하 240도 이하 극저온에서 처음 발견됐다. 1986년 이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발견돼 이를 ‘고온초전도’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초전도 이론으로는 고온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 난제로 남아 있다.

연구팀은 고체 물질 속 전자가 암흑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핵심 요인을 구성 원자들의 독특한 배열에서 찾았다. 고체 물질의 원자들은 미세한 단위 구조가 반복되는 형태로 배열된다. 이 단위 구조에 같은 종류의 원자 네 개가 두 쌍으로 짝을 지어 대칭을 이루면 전자 간 ‘상쇄간섭’이 발생한다. 이를 통해 빛 에너지, 편광, 입사 방향 등 어떠한 측정 조건으로도 관측할 수 없는 암흑 상태의 전자가 형성됨을 확인했다.

김 교수는 “고체 속 암흑 전자의 존재 규명은 그 존재를 모를 때 설명할 수 없었던 양자현상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현대 물리학의 오랜 난제인 고온초전도의 비밀을 푸는 데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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