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갈 돈이면 베트남"… 휴가철 바가지에 줄줄 새는 내수

김정환 기자(flame@mk.co.kr),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4. 7. 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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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성수기도 국내여행 외면
소비둔화로 2분기 GDP 역성장
성장위해 내수 진작 절실한데
여행수지 60분기째 적자 행진
제주도 골프장도 바가지 논란
1년새 이용객 10% 이상 줄어
해법 못내놓는 정부 뒷짐만
전국 관광거점 밑그림 그려야

◆ 내수해법 여행소비 ◆

값비싼 국내 여행지 피해 해외로 29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이 여름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소비의 한 축인 여행 소비는 감소하는 반면 해외 소비는 늘면서 만성적인 여행수지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한주형 기자

최근 A씨는 지인 가족들과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다가 베트남으로 목적지를 틀었다. 항공권에 대한 부담이 생겼지만, 현지 풀빌라를 강원도 숙소보다 최대 40%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강원도의 웬만한 특급호텔 1박 비용은 50만원대인데 방을 구하기도 어렵다"며 "베트남은 골프 라운드와 물놀이 일정을 끼워도 전체 예산이 국내 여행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여름휴가 성수기가 시작됐지만 무섭게 치솟는 여행비에 국내 관광은 국민에게 외면받고 있다. 휴가(vac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급증하는 여행 물가를 가리키는 '베케플레이션(vacaflation)'이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올해 2분기 소비 둔화에 한국 경제가 6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0.2%)을 기록하며 내수 진작이 절실해졌는데, 내수의 한 축인 국내 관광 산업에서 '역조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여행수지 적자 규모는 38억9000만달러로 60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상품수지는 반도체 수출 선전에 지난해 2분기부터 흑자 전환하며 국민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반면 여행수지는 전체 경상수지를 끌어내리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만성적인 여행수지 적자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간 여행객은 3045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5% 급증했다.

이 같은 속도를 감안하면 올해 해외여행객은 7000만명을 넘어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전인 2019년(7058만명) 수준까지 불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단기 수익에 급급해 '바가지 물가'로 일관하는 업계의 후진성과 정책 부재가 최대 문제점으로 꼽힌다. 최근 SK커뮤니케이션즈가 성인 남녀 6311명을 대상으로 여름철 국내 여행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72%는 '바가지 숙박 요금'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성수기에 유독 비싸지는 음식값(17%)도 문제로 거론됐다.

국내 대표 관광지인 제주를 찾는 발길도 부쩍 뜸해졌다. 1분기 제주도 골프장을 찾은 국민은 40만6728명으로 1년 새 12.5% 줄었다. 바가지 논란에 제주도민 골퍼들도 발길을 돌릴 정도다. 제주도민 골프장 내장객은 같은 기간 10.7% 감소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관광비서관은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사라졌고, 국가관광전략회의는 대통령 주재회의에서 총리로 급이 낮아졌다. 관광 정책 실행에 나서야 할 한국관광공사 수장 자리는 지난 1월 김장실 전 사장이 퇴임한 후 6개월째 공석이다. 내수 진작을 위한 '여행 가는 달' 이벤트나 여행 박람회와 같은 관광 정책도 일회성 일색이라는 지적이다.

여행수지 개선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해외 관광 설명회는 외래 관광객 입국자 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질적 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문지 역시 서울, 부산, 제주 권역에 편중된 기형적인 구조다. 서울 주변 호텔이 공급 부족으로 상습적인 만실 사태가 이어지자 경기권에 숙박하면서 서울까지 관광하러 오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 관광학과 교수는 "관광 산업은 총성 없는 전쟁인데 한·중·일 관광객 유치 경쟁에서 한국은 이미 열세에 놓였다"며 "중장기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여행수지 개선은 점점 요원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2000년부터 정부 주도로 장기 관광 산업 밑그림을 마련해 시행 중인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앞장서 지역별 5개 관광 거점을 중심으로 30여 개 2차 거점을 깔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K팝, K푸드의 매력을 살려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오고, 국내 관광과 소비를 확대하는 전략 수립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실제 여행수지는 경상수지 개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여행수지가 1억달러 늘 때 경상수지는 1억8800만달러 불어났다. 반면 상품수지와 본원소득수지가 1억달러 늘 때 경상수지는 각각 9400만달러, 1억1000만달러가 증가해 여행수지에 비해 미치는 영향이 작았다. 여행과 레저의 전후방 산업 연계 효과도 상당하다. 한경협은 여가활동 소비 1원당 생산유발액이 1.76원에 달해 국내 제조업 주력 상품인 휴대폰(1.48원), TV(1.57원), 컴퓨터(1.71원)보다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했다.

반장식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휴가를 통한 부수적인 경제 효과가 크다"며 "소비 진작 효과 함께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활성화 대책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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