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로하고 토닥이는 시의 세계로

한겨레 2024. 7. 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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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책상에는 어떤 책이 있나요? 교과서나 문제집, 만화, 소설, 자기계발서 혹은 잡지가 있나요?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자신의 시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에서 "자신과 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 명 가운데 두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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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ㅣ 너와 함께 읽고 싶은 책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여러분의 책상에는 어떤 책이 있나요? 교과서나 문제집, 만화, 소설, 자기계발서 혹은 잡지가 있나요?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 책상에는 책 몇 권, 신문 두 종류와 시집 한 권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마음을 기울여 읽는 책이 있다면 시집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책상 위에는 시집이 있나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자신의 시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에서 “자신과 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 명 가운데 두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신 책상 위에 시집이 있다면 우리는 그 천 명 중 두 명에 속할 것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름입니다. 태양의 열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합니다. 공기 중에 빽빽하게 자리한 습기는 온몸을 끈적이게 하고, 구름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비를 몰고 옵니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여름 날, 시집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시의 연과 연 사이를 삶의 여백이라 부릅니다. 시는 공간과 여백을 만들어 우리가 그것을 채워 나가길 기다립니다. 많은 이들이 시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 말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곡이 어떤 음으로 이뤄졌는지 바로 알아맞힐 수 있나요?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음이 흘러가고 연주되는 대로 음악을 즐깁니다. 음악가가 누구이고, 어떤 악기가 사용됐고, 그 음악을 왜 만들었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음악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이뤄집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몰라도, 이해하기 어려워도 우리는 그림을 즐기고 사랑합니다. 저는 시도 음악과 그림처럼 대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요? 혹시 그 안에 여름이 있지는 않나요? 그 여름은 어떤 빛깔 어떤 음색인가요? 크기와 무게는 어떤가요? 안희연 시인은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서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걸었다”(‘열과’)고 했습니다. 언덕은 오르기 어렵습니다. 여름에 오르는 언덕은 말할 것도 없이 힘들죠. 그렇게 올라간 언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시인은 그런 여름 언덕을 어떻게 올라가고 내려왔을까요?

우리는 무언가를 잃은 채 올라가기도 하고,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올라가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것을 찾아서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이 여름, 여러분과 함께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읽으며 천 명 중 두 명, 세 명, 그 이상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여름을 살다보면 “나무가 부러졌다는 소식”(‘폭풍우 치는 밤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슬픔이나 절망 같은 건 더더욱 없다”(‘영혼 없이’)고 했지만, 슬픔과 절망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는 압니다. 여러분이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캐치볼’) 뒤 이 여름을 견뎌내고 살아낼 것임을요.

지금 당장 시집을 펼쳐보세요. 행과 연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워해도 괜찮습니다. 시의 여백에 여러분의 여름을, 가방 속 짐을, 한숨을, 슬픔을, 절망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요. 시는 그렇게 여름날 언덕을 오르는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토닥입니다. 여름이 지나면 여러분의 시간은 어떤 풍경을 하고 있을까요? 멋진 풍경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 /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열과’)고.

김지숙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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