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영국 흙수저·미국 개천용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4. 7. 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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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살던 공공주택 바닥은 차가운 콘크리트였고, 난방비를 제때 내지 못해 온수가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항상 실직 상태였고, 문맹이었던 어머니는 조울증을 앓았다.

2015년 의회에 입성했고, 이달 초 치러진 영국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당인 보수당을 누르고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앤절라 레이너 영국 부총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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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살던 공공주택 바닥은 차가운 콘크리트였고, 난방비를 제때 내지 못해 온수가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항상 실직 상태였고, 문맹이었던 어머니는 조울증을 앓았다. 16세에 학교를 자퇴했고 덜컥 임신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정부가 운영하던 저소득층 복지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다. 간병인이 된 그는 노조 간부로 일하며 정치적으로 급부상했다. 2015년 의회에 입성했고, 이달 초 치러진 영국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당인 보수당을 누르고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앤절라 레이너 영국 부총리 이야기다.

영화 같은 삶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은 미국에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J D 밴스 상원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일자리와 희망이 사라져가는 러스트벨트에서 나고 자랐다. 10대에 출산을 한 그의 어머니는 약물중독자였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친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가족을 떠났다. 집안은 물론 주변에도 대학을 나온 사람은 거의 없었고, 폭력과 마약중독자를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했고, 이라크전쟁에도 참전했다. 이후 제대군인 혜택을 받아 대학에 입학했고, 예일대 로스쿨까지 졸업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벤처투자자가 된 그는 2022년 37세의 나이에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그가 2016년에 쓴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2020년에는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레이너 부총리와 밴스 후보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다. 막말 논란도 심심찮게 불거진다. 하지만 '개천 용' 그 자체인 이들이 '흙수저들의 희망'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흙수저들이 학업이나 경력을 중단하지 않고 꿈을 향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를 촘촘히 갖추는 일은 우리에게도 꼭 필요하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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