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배 더 넓게 보는 '로먼의 눈'… 모든 우주이론 '리셋'
"우리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낸시 그레이스 로먼'은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겁니다. 2027년 발사하고 나면 이는 인류 지식 체계를 흔드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지난 18일 찾은 미국 메릴랜드주 고더드우주비행센터 빌딩 29. 현존 최고의 우주망원경으로 불리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탄생한 이곳에서는 JWST 뒤를 이을 로먼 우주망원경 개발이 한창이었다. 지름이 약 2.4m에 이르는 동그란 형태의 거대한 망원경 주경(거울)이 건물 중앙에 있었으며 그 옆으로 우주망원경 본체와 탑재체, 각종 부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얀 방진복을 입은 NASA 연구원들은 그 옆 책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조작하거나 부품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베고냐 빌라 NASA 로먼 우주망원경 개발 담당 엔지니어는 "핵심 장비들에 대한 개발을 대부분 마치고 장비나 부품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면서 "이 과정을 마치면 조립에 나서게 되며 현재 개발 일정 지연 등의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우주망원경은 지구 대기권 바깥 우주 공간에서 천문 관측을 수행하는 광학 관측 장비다. 관측을 위해 우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적외선, 감마선 등 다양한 전파의 파장을 활용해 우주를 관측한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가시광선이나 근적외선 등 특정 파장 대역을 제외하면 대기 영향으로 관측하기 어려운 파장을 갖는 전파가 많다. 먼 우주 공간으로 우주망원경을 보내면 지상에서 관측이 불가능한 전파를 관측할 수 있다.
우주망원경은 1946년 그 개념이 처음 제시됐다. 미국 물리학자인 라이먼 스피처가 우주에서 천문대를 운영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견이 받아들여져 1968년 인류 첫 우주망원경인 미국의 'OAO'가 탄생했다. 미국우주협회(NSS)에 따르면 현재까지 인류가 발사한 우주망원경 수는 약 90개인 것으로 집계된다.
'허블의 어머니'로 불리는 낸시 그레이스 로먼의 이름을 딴 로먼 우주망원경은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해온 '원시 블랙홀'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홀은 중력의 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 빛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파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우주 공간이다. 물질은 만유인력에 의해 모든 다른 물질을 잡아당기는 힘을 낸다. 모든 물질은 중력을 갖고 있다. 우주 공간에서 물질이 어떠한 이유로든 작은 공간에 압축되면 강한 중력이 발생해 주변의 물질을 당기게 되고 점점 커진다. 이렇게 물질이 많이 압축돼 중력이 빛을 빨아들일 정도가 되면 블랙홀이 된다.
블랙홀은 질량과 크기에 따라 초대질량 블랙홀, 항성 블랙홀, 원시 블랙홀로 나뉜다. 가장 큰 블랙홀은 초대질량 블랙홀이다. 이 블랙홀은 질량이 최소 태양의 수십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른다. 큰 은하계는 중심에 초질량 블랙홀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성 블랙홀은 중간 크기의 블랙홀로 가장 흔한 유형이다. 태양의 질량보다 수십~수천 배 정도 무겁다. 은하계 내에 수십 개가 존재한다.
원시 블랙홀이 가장 작다. 하나의 원자 크기만 하다. 그러나 그 속에 산 하나의 질량이 있다. 다만 초대질량 블랙홀이나 항성 블랙홀과 달리 원시 블랙홀은 실제 관측된 바가 없다.
많은 과학자들은 현재의 우주에는 원시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는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내놓은 '호킹 복사'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 이론은 블랙홀이 일종의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에너지 방출이 계속되다 보면 블랙홀은 질량을 잃고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블랙홀의 질량이 작을수록 빠르게 폭발에 이른다고 봤다. 138억년 전 빅뱅 직후 생겨난 원시 블랙홀들이 현재까지 존재할 리 없다는 결론이다. 원시 블랙홀들은 빅뱅 직후 물질 일부의 밀도가 극에 달하며 형성된 것으로 분석해왔다.
로먼 우주망원경에는 '광시야 관측기(WFI)'라는 탑재체가 실린다. WFI는 로먼 우주망원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다. WFI는 3억화소의 적외선 카메라로 달 궤도 너머 우주를 탐사할 수 있다. 적외선 탐지기 18개로 세세하게 우주를 탐사한다.
WFI의 가장 큰 장점은 이른바 우주의 '큰 그림(빅 픽처)'을 빠르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WFI에 장착된 로먼 우주망원경은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약 1000배 빠르게 우주 사진을 찍어낼 수 있다. 이는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100배 넓은 시야를 가졌기 때문이다. NASA는 "이렇게 넓게 우주를 조사하다 보면 원시 블랙홀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며 "로먼 우주망원경은 수십억 개의 우주 물체를 조사해 전에 인류가 보지 못했던 우주의 빅 픽처를 생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먼 우주망원경이 원시 블랙홀 관측에 성공하면 호킹의 이론에는 오류가 발생한다. 호킹의 이론을 포함해 물리학의 많은 원리들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은하 형성부터 우주 역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원시 블랙홀 관측으로 해결되는 난제도 있다. 대표적인 게 블랙홀 생성에 대한 비밀이 풀리는 것이다. 블랙홀의 기원에 대해서는 '가벼운 씨앗' 이론과 '무거운 씨앗' 이론이 맞서왔다. 가벼운 씨앗 이론에 따르면 별이 죽으면서 태양 질량의 100배 정도인 작은 블랙홀이 생겼다. 이후 우주의 수소 가스들을 집어삼켜 거대 블랙홀로 커졌다는 이론이다. 무거운 씨앗 이론은 초기 우주에서 중간 크기 질량의 블랙홀이 먼저 생겼다는 것이다. 로먼 우주망원경이 원시 블랙홀 관측에 성공하면 가벼운 씨앗 이론이 힘을 얻게 된다. 천문학계 닭과 달걀 논쟁이 해결되는 셈이다.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자들은 지구를 비롯해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물질은 전체 우주의 약 4.4%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절반을 한참 넘는 68.6%는 암흑에너지다. 암흑에너지는 우주가 가속 팽창하도록 만드는 미지의 에너지를 말한다. 로먼 우주망원경은 우주 전체에서 물질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분포돼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다.
NASA는 연말까지 로먼 우주망원경에 대한 조립과 검증을 이어간다. 빌라 엔지니어는 "열 진공 시험, 추진 시스템 조립, 원심 분리기 실험 등을 진행한다"며 "로먼 우주망원경은 다 조립하고 나면 무게가 약 4166㎏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름 2.4m의 주경을 기반으로 별의 빛을 차단해 외계 행성 이미지를 직접 촬영하고 훨씬 희미한 행성을 관찰할 수 있는 '코로나그래프',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우주망원경을 보호해줄 '선 실드(SASS)' 등이 부착된다. 주경은 관측하고자 하는 천체에서 나온 빛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크기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주경과 동일하지만 무게는 약 4분의 1 수준이다.
현재 로먼 우주망원경 발사는 2027년 5월로 예정돼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헤비 로켓에 실려 발사된다. 미국이 2010년부터 계획을 세우고 개발에 착수한 지 17년 만이다. 32억달러(약 4조4355억원)란 막대한 예산의 성과물이 될 전망이다. 우주에 쏘아 올리면 최소 5년, 최대 10년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NASA는 "로먼 우주망원경과 함께 허블 우주망원경, JWST를 운영하면 큰 시너지가 기대된다"면서 "로먼이 넓은 시야에서 목표물을 발견하고, 허블이 이를 적외선으로 추적하며 JWST는 더욱 선명하고 깊은 시야를 확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메릴랜드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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