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둘, 아빠 셋… ‘막장 가족’에서 발견한 새 가족의 의미[선넘는 콘텐츠]
“난 엄마가 2명, 아빠가 3명이야.”
20대 여성 ‘유코’(나가노 메이)는 결혼을 앞두고 동갑내기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적 부모 외에도 새엄마 1명, 새아빠 2명까지 부모가 5명이나 있다는 것. 그런데 유코의 얼굴엔 그늘이 없다.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표정도 해맑다.
사실 유코의 친엄마는 유코가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유코의 친아빠는 새엄마와 재혼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혼했다. 친아빠는 브라질로 떠났고 유코는 새엄마와 살게 됐다. 새엄마는 이후 두 번의 결혼을 더 했다. 남들과 달리 유코에게 부모가 많은 이유다.
17일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는 여러 부모의 손에 길러진 한 여성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정상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주제를 톡톡 튀는 설정과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내며 일본에서 120만 명 관객을 모았다.
● 아빠에게 “~씨”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자 국내에 2019년 출간된 동명의 장편소설에서 유코와 3번째 아빠 ‘모리야마’(다나카 케이) 사이엔 긴장감이 흐른다. 예를 들어 유코는 “모리미야 씨”라며 ‘~씨’라는 호칭을 붙인다. 친부모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
“친부모와 살았던 시간이 짧고 부모가 귀찮게 느껴지기도 전에 남이었던 리카 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내 부모가 된 사람은 이즈미가하라 씨, 모리미야 씨…”
유코는 또 “친딸이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아빠란 원래 그런 존재인지, 잔소리를 들은 적은 여태 없다”고 불만을 드러낸다.
“피가 섞인 가족에게는 없는 깔끔한 거리감이 늘 내 곁에 있다.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없는 게 다행인가, 아니면 불행인가.”
● ‘츤데레’ → ‘딸바보’
소설에선 모리미야도 속으론 따뜻하지만 겉으로는 퉁명스러운 ‘츤데레’로 묘사된다. 쉽게 가까워질 수 없는 새아빠와 딸 사이의 차가운 감정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반면 영화에서 부녀 사이엔 따뜻함이 가득하다. 모리야마는 유코를 자상하게 챙기는 ‘딸바보’로 묘사된다. 유코를 위해 매일 아침, 저녁을 차리고 “유코가 혹시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술도 마시지 않는다. 유코가 고등학교 졸업한 뒤 독립한다는 말에 속절없이 좌절하는 모리야마의 모습은 친아빠와 다름없이 보인다.
유코가 “왜 재혼 안 하냐. 아빠처럼 굴지 말라”며 농담을 던지고, 모리야마가 “널 시집 보내는 게 내 의무”라고 당당히 외치는 대화를 통해 실소를 자아낸다. ‘비정상 가족’이란 무거운 주제를 마치 코미디 영화처럼 가볍게 전달하는 매력을 더한 셈이다.
● ‘울음 버튼’ 곳곳 배치해 눈물샘 자극
새엄마 ‘리카’(이시하라 사토미)에 대한 설정도 다르다. 소설에서 ‘리카’는 병에 걸려 몸이 쇠약해진 상태지만 유코의 결혼식에 참여해 축하한다. 유코의 삶을 지지해줬던 부모들이 ‘바통’을 유코의 남편 ‘하야세’(미즈카미 코시)에게 전달하는 순간을 함께한다.
반면 영화에선 유코가 결혼할 때 리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오랜 투병 사실을 유코에게 숨긴 채 세상을 떠나는 것. 이 때문에 영화 후반부 유코가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 유코 곁을 지키는 건 유코의 아빠들뿐이다. 과거 리카가 유코가 피아노를 연주한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후반부에 반전으로 보여주며 극적 연출을 유도한다. 이처럼 영화는 ‘울음 버튼’을 곳곳에 배치해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 ‘비정상 가족’은 정말 불행할까
작품을 보며 내내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유코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자그마한 편견은 있지만, 유코는 이에 별로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코의 새아빠와 새엄마는 친아빠와 친엄마 못지않게 넘치는 사랑을 주는 것도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나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에선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가능하다. 친부모 아래서 자란 ‘하야세’는 “오히려 서로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친부모보다 낫다”고 유코를 부러워한다. 유코는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빠 셋의 축하를 받으며 ‘버진 로드’를 걸어간다.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어느 가족’(2018년)처럼 정상 가족에 대한 환상을 부순다.
그러니 동화 같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어떤 ‘비정상 가족’은 ‘정상 가족’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드라마 ‘무빙’을 본 뒤 스마트폰을 켜고 원작 웹툰을 정주행한 적이 있나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상 캐스팅’을 해본 적이 있나요? ‘선넘는 콘텐츠’는 소설, 웹소설, 만화, 웹툰 등의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깊이 있게 리뷰합니다. 원작 텍스트가 이미지로 거듭나면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재밌는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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