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민심·예의보단 비방·비난…버티기 일색에 체력전 된 국회
22대 국회가 의원들의 체력전으로 변질됐다.
인사청문회나 법안 처리 등 안건에 대한 논리적인 토론보다는 마라톤 의사 일정에 비생산적인 공방이 일상화된 모습이다. 장기간 소모적 공방이 이어지면서 고성은 물론 인신공격성 발언과 감정적, 원색적인 표현까지 잇따라 나온다. 개원 2달만에 국회와 정치에 대한 국민 피로감만 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다. 과방위는 지난 24일부터 사흘간 이진숙 후보자의 청문회를 진행했다. 현행 인사청문회법상 후보에 대한 청문회는 3일까지 가능하지만 통상 장관급 직위 후보자에 대해선 하루 일정으로 청문회를 진해해 온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장기 청문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청문회 기간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소모적이고 감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청문회 시작부터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과 이진숙 후보간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최민희 위원장은 이진숙 후보를 불러 "저와 싸우려 하면 안된다"고 말했고 이진숙 후보자 역시 5·18 민주화운동 비하 글에 '좋아요' 표시를 한 것을 두고 "손가락 운동을 조심하겠다"고 발언해 야당 위원의 격한 항의 끝에 사과했다.
사흘간 청문회에도 국회 과방위는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검증 불출분을 이유로 27일 대전MBC에 대한 현장검증을 진행했고 다음달 2일 전체회의에 이 후보를 증인으로 소환했다. 이에 대해 여당은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아보려는 야당의 집요함"이라며 반발했다.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논의하는 29일 회의에선 최민희 위원장이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인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하다 보니 민주주의 원칙이 안 보이냐"는 발언을 해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의 항의를 받았다. 결국 최 위원장은 여당의 항의가 잇따른 후에 "전체주의 운운한 부분에 대하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9일 최고위원회에서 "사상 유례없이 3일 동안 열린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남긴 것은 막말과 갑질뿐"이라며 최민희 위원장에 대한 윤리위 제소 방침을 밝혔다.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과 그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역시 소모전과 자극적 언사로 얼룩지고 있다.
지난 25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에 방통위법 개정안을 상정하며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방송4법 가운데 법안 3개가 '상정-필리버스터-24시간 후 강제종료-본회의 표결'이라는 수순으로 본회를 통과했고 29일 현재는 마지막 법안인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한 야당의 필리버스터 종결동의안은 오는 30일 오전 표결될 예정이다. 사상 유례없는 5박6일간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셈이다.
22대 국회 개원 직후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것을 고려하면 개월 2달만에 필리버스터 5차례라는 기록을 세웠다.
방송4법에 대해서도 "여야합의 없는 법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예정돼 있다. 앞서 폐기된 채상병 특검법과 달리 방송4법에 대해선 여당의원 대부분이 반대의사를 밝히는 만큼 재표결에서 폐기가능성이 크다. 여야모두 소통과 합의없이 강대 강 대치로 체력만 빼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필리버스터 사회진행을 두고 우원식 의장은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부의장의 불참을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방송4법 본회의 상정 직후 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필리버스터 사회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우원식 의장과 민주당 소속 이학영 의장이 닷새째 3시간씩 교대로 사회를 보고 있어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한다.
우원식 의장은 "국회의원으로서 (방송4법에) 반대하는 게 부의장이 사회를 거부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 부의장의 사회복귀를 요구했고 주 부의장은 "국회의장은 지금이라도 '충분한 여야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법률안과 의안은 처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반박했다.
김훈남 기자 hoo13@mt.co.kr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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