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 불태우듯 위험관리 실패한 작업환경 폐기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4. 7. 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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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치 한겨레는 '"손가락 기형은 8인치 라인 훈장" 삼성반도체 노동자 하소연'이라는 제목으로 이 회사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제기한 작업환경 문제를 보도했다.

△3년마다 근골격계 질환 유해 요인을 조사하고 △근골격계 질환 발생 우려가 있으면 인간 공학적으로 설계된 인력 작업 보조 설비 및 편의 설비 설치 등 작업환경 개선 조치를 할 것 △근골격계 부담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유해성 등에 대해 주지시킬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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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총파업 결의대회가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열려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임영섭 |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

지난 15일치 한겨레는 ‘“손가락 기형은 8인치 라인 훈장” 삼성반도체 노동자 하소연’이라는 제목으로 이 회사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제기한 작업환경 문제를 보도했다. 하루 종일 서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손가락 변형, 하지 정맥류 등의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쪽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작업환경 기준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법 규정을 지켰으니 문제없다는 투로 들린다.

사쪽이 준수했다는 산업안전보건규칙이 정하는 작업환경 기준의 요점은 이렇다. △3년마다 근골격계 질환 유해 요인을 조사하고 △근골격계 질환 발생 우려가 있으면 인간 공학적으로 설계된 인력 작업 보조 설비 및 편의 설비 설치 등 작업환경 개선 조치를 할 것 △근골격계 부담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유해성 등에 대해 주지시킬 것 등이다. 일반적인 작업장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현재의 접근법은 마치 사람들에게 일터 안전·보건이 주로 외부 기관의 세세한 규정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1970년대 초 로벤스 보고서가 영국의 안전 규제 방식, 즉 사업주가 해야 할 사항을 일일이 정하는 지시적 규제 방식의 폐해를 지적한 핵심이다. 이는 ‘위험을 생산하는 자가 위험을 통제하는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다’는 통찰로 귀결, 영국 안전·보건의 나침반이 되었다.

영국은 사업주가 주도적으로 안전·보건 확보 조치를 하도록 의무 지운다. 영국 산업안전보건법 제40조는 “합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치하라는 의무를 위반한 것과 관련된 재판 과정에서, 피고가 의무를 충족하기 위해서 실제 행한 조치보다 더 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도 작업장의 구체적 실태를 반영한 실질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해당 안전·보건 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 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안전·보건 규칙을 준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21년 9월30일 선고 2020도3996 판결 등 참조)

삼성전자는 1995년 3월9일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대대적인 ‘애니콜 화형식’을 했다. 휴대전화의 불량품 문제가 터지자 2000여명의 삼성전자 직원이 보는 앞에서 15만대의 휴대전화를 불태워버렸다. 운동장 한편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안전 경영’은 위험 관리를 품질 관리처럼 경영의 본질로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불량제품을 규정대로 만들었으니 문제없다고 항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규정을 지켰으니 작업환경이 문제없다”고 항변할 게 아니다. 품질 관리에 실패한 제품을 불태운 것처럼 위험 관리에 실패한 작업 환경을 폐기하는 것이 ‘안전 경영’이다. 그것이 진정 세계 일류 기업에 걸맞은 ‘자존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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