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시위처럼 팽팽하게 … K발레, 종주국 파리 심장 '적중'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7. 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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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코리아하우스 공연
'백조…' 등 고전발레부터
가야금 적극 활용한 '계절; 봄'
전통 색채 '활' '호이 랑'까지
콧대높은 관객들 기립박수
"BTS 팬인데 韓발레도 매력적"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스페셜 갈라 중 '호이 랑'(안무 강효형)의 한 장면. 무용수 이재우(왼쪽)와 정은지. 국립발레단

발레 종주국으로 꼽히는 프랑스 파리의 한복판에 가야금·한복·장단 등을 접목한 '한국 발레'가 적중했다. 2024 파리올림픽을 기념해 국립발레단이 28~29일(현지시간) 선보인 스페셜 갈라 무대다. '백조의 호수' '해적' 등 19세기 고전 발레뿐 아니라 단원들이 직접 개발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계절; 봄' '활' 등 컨템포러리 발레까지 총 여덟 작품이 다채롭게 현지 관객과 만났다. "새로운 발레를 발견했다" "완성도 높다"는 반응들이 나욌다.

첫 공연이 열린 지난 28일, 파리 중심부 코리아하우스 강당에는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사전예매 없이 선착순 무료로 배부하는 공연 표를 받기 위한 남녀노소·국적불문 인파가 몰리면서다. 코리아하우스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올림픽 기간 중 한국 선수단 응원과 문화 교류를 위해 운영하는 홍보·전시관으로, 지난 25일 개관 이후 사흘 만에 8000여 명이 다녀가는 등 국내외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발레 객석에도 외국인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았다.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인 수자니 씨(21)는 "2016년부터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며 "K팝이나 음식, 화장품 외에도 한국을 더 알고자 발레 공연이 있다고 해 보러 왔다"고 했다. 이날 800여 석이 일찌감치 매진돼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 이들도 있었다.

국립발레단은 먼저 유명한 '백조의 호수' 중 '흑조' 그랑 파드되 장면으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오딜 역할을 맡은 안수연의 32회전 푸에테 동작에 여지 없이 박수갈채가 나왔다. 곧바로 이어 강효형 안무작 '호이 랑'을 통해선 유려한 선과 여백의 미로 반전 매력을 발산했다. 조선시대 효녀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2019년 만들어진 창작 전막 작품이라, 서양권의 클래식 발레와 차별된다. 이날은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는 애틋한 2인무 부분을 보여줬다. 특히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높이 들어 올려 돌리는 동작이 많은데, 큰 키의 이재우·정은지가 짝을 지어 곧고 시원시원한 움직임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악기의 소리를 몸짓으로 표현한 '콰르텟 오브 더 소울'(안무 박슬기), 관능적면서도 애절한 탱고 본연의 맛을 살린 '탱고'(안무 신무섭) 등 현대적 안무작도 이어졌다.

28일(현지시간) 국립발레단 스페셜 갈라를 보기 위해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선 모습. 정주원 기자

프랑스 혁명을 다룬 바실리 바이노넨 안무작 '파리의 불꽃' 2인무는 이번 갈라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무대다. 관객들도 특히 큰 함성을 보냈다. 무용수 민소정과 엄진솔은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파랑·하양·빨강 3색으로 구성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다. 여기에 엄진솔은 돌려차기하듯 높고 힘찬 점프, 민소정은 가볍고 경쾌한 몸짓으로 조화를 이뤘다. 전용 공연장이 아니다 보니 무대가 너무 좁아 발레리노가 두 번만 뛰어올라도 무대 밖으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는데,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이날 작품 중 가야금 연주와 함께한 '계절; 봄'(안무 이영철), 장구 등 전통 타악기 장단에 맞춰 춤추는 '활'(안무 강효형)은 특히 한국적 색채가 짙었다. 안무가이자 무용수로서 무대에 선 강효형은 리허설 중 매일경제와 만나 "언제 어디서 공연을 올리든 최선을 다하지만 올림픽이 한창인 파리에서 무대를 선보이려니 책임감과 긴장감이 느껴진다"며 "발레를 한국적으로 승화한 고유함이 관객들에게 잘 받아들여졌으면 한다"고 했다. 실제 작품은 마치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힘차게 탄력을 받아 튕겨나가듯, 강효형을 비롯한 7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강한 에너지를 무대 위에 풀어놨다.

'활'을 끝으로 모든 무용수와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겸 예술감독이 무대에 올라 인사하자 기립박수가 터졌다. 마침 대한민국 여자 양궁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한 소식이 전해져 금빛 여운이 진했던 이날, 국립발레단이 쏜 화살도 파리 관객들에게 꽂힌 셈이다.

관객들은 클래식 발레에서 흔히 보는 튀튀가 아니라 한복 느낌이 나는 의상 등 새로운 요소에도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인 니콜 베르고 씨(60)는 "기술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음악·리듬·의상 등에 전통 요소가 섞여 흥미로웠다. 같으면서도 다른 발레였다"고 했다. 파리에 거주하며 처음으로 국립발레단 공연을 봤다는 교민 이지윤 씨(27)는 "현대적인 안무가 많아 새로웠다"고 했다.

이날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무대 위 축사를 통해 "발레의 본고장이자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한국 발레의 세계적 역량과 드높아진 한국 예술의 위상을 보여주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

[파리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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