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이면 어때? 안 유명해도 금메달 따는 한국 여자 양궁의 힘
이름값, 랭킹 안 따지고 실력대로 대표 선발
1~3차 선발전 거치고도 또 평가전 진행
선발전 바늘구멍이 한국 양궁의 원천
서울에서 파리까지 36년을 달려온 한국 여자 양궁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올림픽에 단체전 종목이 처음 생긴 1988 서울 대회 이래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10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선수가 바뀌어도 세계 최강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신화를 써 내려가는 과정은 힘들었다. 2024 파리 올림픽이 유독 그랬다. 에이스 임시현(한국체대)을 필두로 전훈영(인천시청), 남수현(순천시청)이 뽑힌 여자 양궁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로 꼽혔다. 전훈영과 남수현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메이저 국제 대회 출전 경력이 전무한 무명 선수였고,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을 달성한 임시현조차 올림픽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전초전 성격인 올해 양궁 월드컵 1, 2차 대회에서 잇달아 중국에 져 준우승을 차지했을 땐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좋은 결과를 내고 난 뒤에야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전훈영은 “팬들이 못 보던 선수라서 나 같아도 우려했을 것”이라고 솔직히 고백할 정도로 걱정이 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한국 여자 양궁은 견고하고 단단했다. 그 바탕에는 ‘한국 1등이 세계 1등’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한국 양궁 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이들에게 이름값이나 경험은 중요치 않다. 이미 실력을 충분히 검증받아서다.
한국 양궁은 철저히 실력 위주 선발을 고수하고 있다. 단순하게 잘 쏘면 태극마크를 달고, 못 쏘면 짐을 싼다. 직전 올림픽 등 국제 대회 성적이나 세계 랭킹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선발전도 일회성이 아니라 여러 차례 검증을 거친다. 일정 기간의 기록을 토대로 커트라인을 넘긴 100~120명이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 자격을 갖추고, 선발전은 세 차례 진행된다.
이렇게 남녀 4명씩 매년 뽑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단체전은 남녀 3명씩만 나갈 수 있어 마지막 3명을 뽑기 위한 평가전이 두 세 차례 펼쳐진다. 이래서 양궁 대표 선발전은 행운이 작용할 여지가 없는 바늘구멍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관왕 장혜진이 2020 도쿄 올림픽에 못 나가고, 2020 도쿄 올림픽 3관왕 안산이 2024 파리 올림픽에 못 나간 이유 역시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셔서다. 이게 바로 한국 양궁의 힘이다.
대회 준비도 철저히 했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의 대회 현장과 비슷한 환경에서 실전 훈련을 했다. 자체 스페셜 매치 때는 흔들림 없는 ‘슈팅 로봇’과 승부를 벌여 고득점 능력을 키웠고,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홈경기에서 소음 적응 훈련도 했다. 파리 센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비한 훈련 역시 경기 여주 남한강에서 진행했다. 파리 올림픽 결전지에선 대한양궁협회가 선수촌과 별도로 경기장 인근에 마련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 조절을 했다.
다만 올림픽에서 다가오는 중압감을 견디는 건 궁사들의 몫이었다. 특히 단체전 10연패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커 부담도 두 배였다. 네덜란드와 준결승, 중국과 결승은 두 차례 모두 슛오프(연장전)까지 가는 피 말리는 승부를 벌이기도 했으나 역시 마지막에 웃은 건 한국 여자 양궁이었다.
10연패를 달성한 뒤 믹스트존에서 만난 임시현은 “대한민국이 항상 왕좌를 지킨다고 하지만 멤버가 바뀐 지금, 우리한테는 10연패가 새로운 도전이자 목표였다”며 “우리 도전이 역사가 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표팀 맏언니 전훈영은 “선발전과 평가전을 뚫고 들어왔다. 공정하게 선발됐다”며 “(국제 대회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를 지우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고,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막내 남수현은 “정말 간절히 준비했다”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까 즐기며 할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291431000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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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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