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M과 굿이 만나 생긴 일
‘군문열림’ 8월 23·24일 세종문화회관 공연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 연습실. 반복적인 전자 리듬에 타악기 젬베가 새로운 리듬을 얹는다. 굿판에서 보던 방울과 광징도 때로 금속성 굉음으로 끼어든다. 간혹 인간 목소리가 들리지만 뜻 없는 허밍이나 뜻 모를 가사다. 기승전결 없는 리듬은 언제 끝날지 모호하다. 그저 영원할 것 같은 반복에 귀와 마음을 맡길 뿐이다. 시간과 공간 감각이 조금씩 흐려진다. 땀 흘리는 연주자의 얼굴에는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없다. 이것이 제작진이 말한 ‘음악멍’의 순간인가.
이들이 준비하는 공연 ‘군문열림’은 ‘컨템퍼러리 굿’을 표방한다. “시대의 신명, 신성한 소통을 통한 치유와 위안”이라는 제작진의 소개만 읽고서는 공연의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연습실에서 ‘군문열림’에 참여하는 미디어아트 프로덕션 이스트허그의 고동욱, 밴드 64ksana(육사크사나)의 준도(심준보)·에조·원재연, 정가 명인 강권순을 만났다.
음악에만 집중하면 ‘군문열림’은 EDM 공연에 가깝다. 전자음악이 기본이고 여기에 굿판에서 사용되는 악기나 인간의 목소리가 섞이는 방식이다. 준도는 굿에 사용되는 음악이 “원시적인 형태, 본질적인 의미의 EDM”이라고 설명했다. “페스티벌에서 관객 10만명 속에 춤추고, 디제이로 음악 틀기도 하면서 그 뿌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우스 장르는 시카고의 흑인 게이들이 들으며 해방감을 느낀 음악이고, 테크노 장르는 자동차공업이 쇠퇴한 디트로이트 사람들이 듣던 해방의 음악이거든요. 상업화된 EDM 이전 과정을 찾다 보니 굿 역시 해방과 연결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한 생각일 뿐 확인이 필요했다. 준도는 전국의 굿판을 찾아다니며 관찰했다. 그러다가 만신 김금화 굿판의 장구재비 조성연을 만났다. “무당은 신이 나야 신이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신이 나게 서서히 분위기를 올려주는 게 장구의 역할”이라는 조성연의 설명을 들으며 준도는 생각했다. ‘장구재비하고 디제이하고 역할이 똑같잖아.’
‘군문열림’이 실제 굿판처럼 귀신을 부르거나 원혼을 달래는 목적은 아니다. 고동욱은 “관객이 공연에서 응어리를 해방하고 어딘가로 넘어간다면 그것이 제의적”이라고 말했다. 강권순은 “무당은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다. 굿을 안 해도 여기 사람들 모두 예술성으로 관객을 이어준다”며 “작두만 안 탈 뿐 모두 무당”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특히 제주 굿에 기반을 둔다. 준도는 “제주 굿은 악기에 조금 더 날것의 느낌이 있고, 리듬도 토속적”이라고 말했다. 원재연은 “시김새(골격음 앞뒤의 장식음)가 ‘흐엉’하고 마무리하는 식으로 다르고, 붙임새(박자를 어긋나게 붙이는 기교)도 다르다”고 표현했다.
고동욱은 이전에도 굿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굿은 무당이라는 연행자가 신내림 받는 과정을 보여주는 종합예술”이라고 해석한 그는 연행자와 관객의 뇌파를 미디어아트로 보여준 적도 있다. 이번엔 제주 굿에서 사용하는 신이 내려오는 큰대(긴 장대에 기, 요령 등을 묶어 세운 것) 이미지를 빌려 공연장에 커다란 나무 형태 구조물을 세운다. 스탠딩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무대와 객석 구분이 없다. 구조물 중심으로 자리한 연행자들이 연주하면 관객들은 굿판 구경하듯이 자연스럽게 그들 주위를 둘러싼다. 공연장에서 판매되는 주류를 반입할 수 있어서,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분위기도 낼 수 있다. 이는 굿판에서 신에게 술을 권하는 주잔권잔의 요소를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준도는 “해방을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라도 오셨으면 좋겠다”며 말했다. “20대 초반 뭐해 먹고살아야 하나 답답하기도 해서 음악으로 도피했어요. 음악 듣고 춤추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간이 사라지고 시간은 멈추고 음악이 흘러가는 순간을 느꼈어요. 과거나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껍데기가 사라지는 순간.” 공연을 보는 모두가 느낄 수는 없겠지만, 어떤 이는 느낄지도 모르는 순간이다. ‘군문열림’은 다음달 23, 24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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