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안정적’ vs K ‘박학다식’ vs S ‘현지인 찬스’…시청률 0%대 중계의 각자 다른 매력 [파리 2024]
시청률은 KBS 승, SBS 0%대 꼴찌
서로 매력 달라도…佛 이해 부족 공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차분한 MBC vs 박학다식 KBS vs 현지인 찬스 SBS
시청률 ‘0%대의 경쟁’이다. 지상 최대의 ‘볼거리’를 쏟아부은 2024 파리올림픽을 위해 방송 3사 ‘중계 전쟁’이 막을 올렸지만, 시작은 처참했다. ‘올림픽 중계의 꽃’인 개막식에서조차 3사 합쳐 3%대 시청률이 나왔다.
전통적으로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은 각 방송사의 ‘오늘’을 확인하는 바로미터다. 스포츠 빅이벤트의 중계는 각사의 최신 방송 기술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시시각각 달라지는 경기 상황을 순발력과 전문성으로 들려주는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도 3사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났다. 개막식에선 방송 3사 중 KBS만이 유일하게 현장중계로 참여했다.
KBS가 개막식을 위해 섭외한 주인공은 공연기획자이자 배우인 송승환 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예술감독. 송승환 해설위원과 함께 이재후 아나운서가 캐스터로 함께 했다. MBC는 해설위원 없이 전종환·김초롱 아나운서의 중계로 시청자와 만났고, SBS는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앙과 주영민 해설위원, 정석문 캐스터가 함께 했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프랑스 역사와 문화 예술의 총체였다. 프랑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담아낸 ‘프랑스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상징은 물론 프랑스와 연결 고리를 가진 방대한 콘텐츠들이 장장 4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개막식에 꽉꽉 채워졌다. ‘꾸안꾸’(꾸민듯 안 꾸민듯)의 정석으로 꼽히는 ‘프렌치 시크’의 나라가 역대급 ‘꾸꾸꾸’(꾸미고 또 꾸미고) 무대를 만든 셈이다. 개막식 연출은 프랑스의 배우 겸 예술 디렉터 토마 졸리가 맡았다.
방송 3사 입장에서도 이번 올림픽은 쉽지 않은 중계였다. 송승환 해설위원은 “개막식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제공되지 않아 지금 중계하는 우리도 모두 처음 보는 영상과 광경”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니 이번 올림픽 개막식 중계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프랑스에 대한 깊이 있는 역사, 문화적 상식 및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방송3사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강점이 있는 프랑스인 파비앙과 공연예술 전문가인 송승환을 해설위원으로 낙점한 것이다.
뚜껑을 열자 승부는 갈렸다. 시청률로서는 KBS가 왕좌에 올랐다. 29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전 2~6시까지 방송한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의 시청률은 KBS가 1.4%로 가장 높았고, 이어 MBC 1.0%, SBS 0.6% 등의 순이었다. 각 시청률이 0.4%포인트의 근소한 차이였지만, 심야 방송인데다 3사의 시청률이 0~1%대의 참담한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큰 격차라 할만 하다. 지상파 방송3사 누적 시청률은 고작 3.0% 정도였다.
KBS는 ‘박학다식’한 전문성을 뽐냈다. 시각 장애 4급 판정을 받아 온전하게 현장을 볼 수 없었음에도 송승환은 철두철미한 준비로 무리 없이 진행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공연예술가 전문가답게 프랑스 역사 안에서 꽃피운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친절하게 풀어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레이디 가가가 지지 장메르의 ‘깃털로 만든 내 것’을 부를 때 “레이디 가가가 개막식 초대 가수로 나올 거라는 풍문이 있었지만 알려진 바는 없었다”는 후일담을 전하며 그의 무대 구성에 대해 “프랑스는 ‘캬바레의 나라’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19세기 초에 유행한 캉캉에 대해 “초기엔 풍기문란한 춤이라고 비판 받았지만 이후 관습을 깬 혁명의 춤”이라는 설명은 KBS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이재후 캐스터와의 호흡도 돋보였다. KBS ‘클래식 FM’에서 ‘출발FM과 함께’를 진행 중인 이재후는 프랑스가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가 등장하자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그를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라고 소개하며 지금 연주하는 곡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라는 것을 정확하게 짚었다.
실시간 대처도 눈에 띄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의 최초 ‘흑인 수석’ 기욥 디옵의 무대가 나오자 “박세은이 2년 전 한국에 왔었다”며 안방 시청자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네덜란드 선수단이 입장할 땐,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이 네덜란드 출신인 얍 판 츠베덴”이라는 설명도 더했다.
MBC의 강점은 두 아나운서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진행이었다. 파리를 책임진 두 사람의 진행은 아나운서의 직업적 강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차분한 음색, 정확한 발음으로 귀에 착착 감기는 해설을 들려줬다. 특히 2020 도쿄올림픽부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개폐회식 중계를 맡았던 김초롱 아나운서와 뉴스부터 라디오까지 도맡고 있는 MBC의 베테랑 전종환 아나운서의 호흡이 좋았다.
MBC는 개막식 초반부터 센스있는 해설을 보여줬다. 성화를 들고 파리 지하철 내부로 이동하는 세 어린이의 모험을 담은 영상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메인 테마 멜로디가 등장했을 때 3사에서 이 곡을 언급한 사람은 김초롱 아나운서 뿐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파리오페라극장 지하에 숨어사는 ‘유령’의 이야기를 그린다. 뮤지컬의 백미 역시 유령이 배를 타고 여주인공 크리스틴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가 울려퍼질 땐 “미스터리한 성화 봉송 주자가 들어간 곳은 샤를 샤틀레 극장”이라며 “이 곳에서 현재 ‘레미제라블’ 리허설이 진행 중”이라는 깜짝 정보까지 들려줬다. 개막식 연출과 파리 현지에서 이뤄지는 일정을 긴밀히 엮은 연출이라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었다. 이번 개막식의 논란과 파격 중 하나인 머리가 잘린 마리 앙투아네트와 ‘술과 욕망의 신’인 디오니소스로 분장한 프랑스 가수 겸 배우 필리프 카트린이 나체에 가까운 파란 망사 옷을 입고 등장하자, 전종환 아나운서는 “저한테는 좀 어려운 개막식”이라는 반응을 보여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SBS는 프랑스인 파비앙과 함께 한 친근한 진행이 돋보였다. 개막식의 시작을 알리는 영상에서 등장한 성화 주자가 프랑스의 인기 코미디언 ‘자멜’이라는 점은 파비앙만이 알아봤다. 그러면서 그가 프랑스의 영웅 지네딘 지단에게 성화를 전달하자 “두 사람이 절친”이라는 뒷얘기도 전했다.
모국어에 대한 ‘실시간 통역’은 장점이었다. 프랑스어 노래들의 의미를 전달해주는 장면과 편안한 이야기는 돋보였다.
사지만 방송3사의 올림픽 중계는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컸다는 평이 많다. 2024 파리올림픽은 프랑스와 서양 여러 나라와의 문화적 교집합은 물론 각종 레퍼런스와 맥락을 포착해 전달하는 센스가 중요했다. 3사 중계는 저마다 치밀하게 준비하긴 했지만, 백과사전식 지식을 넘어 시청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자국민인 파비앙 마저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진 않았다.
개막식 내내 파리 전역을 뛰어다닌 복면을 쓴 성화 주자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게임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주인공이다. 그는 아르노 빅토르 도리안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방송3사에선 이 게임을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KBS 이재후 아나운서는 ‘괴도 루팡’의 복장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MBC에선 실수도 나왔다. 아이티 선수단이 입장할 때 캉토로프는 ‘물의 유희’에 이어 에릭 사티의 ‘짐 노페디’를 연주했으나, 김초롱 아나운서는 “피아노 연주가 귀에 들어온다. 지금은 드뷔시의 ‘달빛인 것 같다”고 말해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다양성’을 주제로 한 섹션에선 SBS에서 아쉬운 점이 나왔다. 드비이 육교 위에서 프랑스의 미래를 책임질 신진 디자이너들의 쇼에 이어 성소수자들이 함께 하는 무대로 전환됐음에도 SBS의 중계진은 “패션쇼가 멋지네요”라고 감탄했고, 이에 파비앙은 “패션쇼가 아니라 드래그 퀸(여장 남자) 공연”이라고 바로잡았지만 이번 올림픽이 다양성을 중요한 키워드로 삼았다는 부연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 장면은 공동체의 ‘톨레랑스(관용)’ 정신을 기리는 의미로 연출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해 드래그퀸 공연자들의 무대로 만들었지만, 방송3사 중계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설명과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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