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의 숲을 따라…몸으로 그려낸 ‘빛선소리’

노형석 기자 2024. 7. 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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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블랙홀 전시장 꼭 가서 보세요.'

전시장은 우주와 블랙홀의 의미가 제목의 빛선소리처럼 실감나게 와닿는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는 대형 드로잉 신작 '빛선소리' 말고도 2004년 손톱 끝으로 사포지에 18세기 겸재 정선의 '금강산 만폭동도'를 그대로 옮긴 파격적 회화가 내걸렸고, 작가가 알몸으로 산 속 바위에 누워 괴성을 지르는 장면을 되풀이하는 2015년작 영상 '하울링'의 원초적인 사운드가 시종 울려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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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작가 개인전 ‘빛선소리’
김도희 작가의 신작 드로잉 ‘빛선소리’. 성북예술창작터 2층 전시장의 벽면을 나선으로 휘감아 돌면서 약 43미터 길이의 벽면 위에 목탄 드로잉이 펼쳐진다.

‘성북동 블랙홀 전시장 꼭 가서 보세요.’

요즘 젊은 미술작가들 사이에 이런 말로 감상을 권하는 전시회가 있다. 서울 성북로 23 성북예술창작터 1, 2층 공간에 차려진 김도희(45) 작가의 개인전 ‘빛선소리’다. 전시장은 우주와 블랙홀의 의미가 제목의 빛선소리처럼 실감나게 와닿는 공간이다.

벽면을 쓱 훑어내리는 한손의 움직임과 소리에 맞춰 다른 한손에 목탄을 들고 그어내려가는 방식으로 작가는 1층 계단부터 2층 가장 안쪽 깊은 곳까지 훑어내려갔다. 단 한번도 끊김없이 율동하면서 겹치고 겹치는 선의 드로잉을 펼쳐놓았다. 1층 계단 부분에서는 간단한 목탄 선들의 일렁거림으로 시작한다. 점차 격렬해지는 몸과 손의 움직임에 따라 목탄으로 긋는 선의 세계는 더욱 짙어지고 짙어져간다.

선을 그리고 그리다 겹쳐지면서 벽면은 새카맣게 변해간다. 색조의 어두운 변모는 회오리치는 블랙홀같은 심연의 우주로 진행한다. 결국 관객은 전시장 맨 안쪽 구석에서 칠흑같은 암전의 세계로 빠져들며 묵상하기에 이른다. 작가는 이 궁극의 어둠으로 나가는 드로잉의 진행 과정을 자기의 감각과 세계가 새롭게 깨어나 세계와 하나가 되는 순간들로 받아들인다. 예술가가 온몸을 움직여 목탄으로 그려낸 인식과 감각의 새로운 우주다. 몸을 움직여 미지의 선과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기에 뒤엉키고 겹쳐진 선들은 수북하게 자라난 체모들이 우거진 모습으로도 다가온다. 암흑 세계로 변해가는 드로잉이 펼쳐진 벽면 맞은 편 벽에 작가는 생생한 드로잉 행위 순간의 감흥을 이렇게 적어놨다.

‘새 몸에 닿아보려 통증으로 팽창한 나는, 자전하며 긴 숨으로 하얀 자궁을 짓고, 그 벽에 뺨을 대고 차력하듯 밀어대다가… 마침내 표면이 사라져 흰벽 밖의 우주에 닿을 때…진하게 줄어든 속 몸은 커진 구멍을 잡고 다른 몸으로 뒤집어진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2014’의 출품작가로 미술계에 등장한 이래 작가는 낯설고 거친 감각적 상황을 설정하고 강렬한 몸 기운을 내뿜는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 작업을 펼쳐왔다. 이번 전시에는 대형 드로잉 신작 ‘빛선소리’ 말고도 2004년 손톱 끝으로 사포지에 18세기 겸재 정선의 ‘금강산 만폭동도’를 그대로 옮긴 파격적 회화가 내걸렸고, 작가가 알몸으로 산 속 바위에 누워 괴성을 지르는 장면을 되풀이하는 2015년작 영상 ‘하울링’의 원초적인 사운드가 시종 울려퍼지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와 부박한 개념 일색인 요즘 미술판에서 오직 몸의 에너지와 오감으로 자기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든든한 위안을 안겨준다. 8월3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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