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겪은 티몬 피해 사례기…날아간 휴가비, 돌려받을 수 있을까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안돼. 나 벌써 애들한테 다 자랑했단 말이야.”
고대했던 베트남 나트랑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듣자 여덟 살 둘째 아들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폭염 속에서 티몬 본사 사무실 앞에 줄을 서서 환불을 요구하던 이들이 끝내 환불을 받아냈다는 뉴스를 보던 아내는 주말 동안 두 차례 “우리도 티몬 본사 사무실 앞에 줄 설까?” 물었다. ‘화병’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분노의 화가 치밀어오르는 ‘충격기’→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갈등기’→분노의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체념하고 가라앉는 ‘체념기’.
‘분노’는 지난 5일 티몬을 통해 오는 8월 25일 출국하는 베트남 나트랑 여행상품을 251만6000원에 예매하면서 시작됐다. 티몬에선 쇼핑 일정이 끼어있는 여행사 상품과 달리 ‘자유여행’으로 항공·숙박권을 13만원 가량 싸게 팔았다. ‘토스’로 결제하면 추가할인도 됐다. 다만 200만원이 넘어가면 할인이 어려우니 4인 가족은 2인씩 끊어 결제하라는 친절한 안내도 있었다. 여행사도 1등 여행사 ‘하나투어’였다. 하지만 아내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이사비용을 걱정했다. 결국 예매한 지 10일 만인 지난 15일 ‘취소’를 결정했다. 출발일이 한 달 이상 남아 취소수수료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투어 이야기는 예상과 달랐다. 하나투어 담당자는 “환불액을 티몬으로부터 돌려받은 후 40만원의 항공권 취소수수료를 별도로 입금해줘야 한다”고 했다. 여행 상품 취소수수료는 없어도, 항공권 취소수수료는 1인당 10만원씩, 40만원이 발생한다고 했다. 40만원은 총 여행비의 약 16%에 달한다. 당황스러웠다. 그런 안내는 받은 적도 없고 동의한 적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는 “티몬 판매 당시 〈베트남 여행 관련 안내〉를 통해 공지했다”고 했다. 티몬 앱을 다시 열어 확인했다. 폰트가 다 깨진 이미지파일 속 4번 조항 셋째 줄에 ‘항공권 발권 후 취소 시에는 환불 수수료가 적용된다’는 문장이 있었다. 확대를 하지 않고선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안내에 첫 번째 ‘충격’을 받았다.
‘불완전판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1인당 10만원이라는 규정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티웨이항공 홈페이지에는 취소수수료가 가장 비싼 이벤트운임의 경우에도 ‘출발 50분전’ 취소를 해도 7만원의 수수료가 발생한다고 안내 돼 있다. 하지만 하나투어는 끝까지 어째서 수수료가 10만원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먼저 환불을 해줘야 취소수수료를 입금하지 않겠냐”고 따져도 막무가내였다. 온종일 입씨름을 했지만, 하나투어 고객의 소리에 글을 남기라는 것이 전부였다. 환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티몬앱 결제창엔 ‘환불요청중’이 ‘환불취소’로 바뀌었다.
그렇게 첫 환불기회를 날려버리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즐겁게 다녀오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정신승리’가 악몽으로 변하기까지 며칠 걸리지 않았다. 24일 기자들이 모여있는 한 단톡방에 ‘큐텐 부도 사태’, ‘티메프 사태 정리’라는 지라시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지마켓 창업자 구영배가 지마켓 매각 후 싱가포르에서 큐텐을 창업,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내 자본잠식으로 헐값에 나와있는 위메프, 티몬, AK몰 등 쇼핑몰들을 인수했고, 상장에 실패하면서 위메프와 티몬이 6월부터 현금 부족으로 입점 업체들에 대금 지급 지연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24일 하나투어 관계자는 “25일 전체 예약 고객을 대상으로 티몬에서 구매한 여행 상품에 대한 취소 공지를 보낼 계획”이라며 “비슷한 여행상품을 재구매토록 안내하는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 환불을 받아야 비슷한 상품을 구매하지 않겠냐는 물음엔 “티몬이 환불승인을 막고 있다”고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25일 처음 티메프 사태에 대해 “소비자 보호 및 판매자 피해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을 다할 것” 을 지시했다. 정부가 나선 만큼 내 휴가비도 돌려받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오히려 실망감만 쌓여가고 있다. 그 사이 나는 스트레스성 위염이 생겼다.
실제 지난 주말 티메프 관련 비관적인 뉴스에 좌절을 거듭했다. 28일 오후 7시 ‘[단독] 티메프 모기업 큐텐, 중국에서도 미정산… 상해 사무실 4월에 뺐다’, 오후 8시 ‘[속보] 티몬 홈페이지 접속 불가’ 등 기사가 나올 때마다 속이 쓰려왔다. 그리고 이날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은 티몬·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에 최소 5600억원의 유동성을 즉시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항공사·여행사 협의를 바탕으로 항공권 취소수수료 면제도 지원하고, 내달 1~9일 소비자원을 통해 여행·숙박·항공권 피해소비자의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접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분노만 커지고 있다.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통신판매업자는 소비자가 환불이나 청약철회를 요구하면 3영업일 내에 돌려줘야 한다. 현재 사태에서 환불 의무를 지는 판매자는 여행사 등 입점 업체다. 한데 정부는 나랏돈 5600억원을 소비자가 아닌 티몬에 입점한 중소기업과 여행사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항공권 취소수수료를 이유로 소비자의 환불 요구를 거절한 여행사에게 취소수수료 면제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소비자에겐 언제를 기약할 수 없는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접수 받겠다는 게 전부다. 나는, 아니 우리는 티몬으로부터 휴가비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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