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人터뷰] “전통과 현대를 생활자기에 담습니다” [한양경제]

이승욱 기자 2024. 7. 2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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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째 이어온 ‘관음요’ 김선식 사기장의 ‘도전’
장작가마 기법 살린 생활자기 ‘다미’로 재탄생
“‘K푸드’ 못지않은 ‘K자기’로 한국 도예산업 혁신”

이 기사는 종합경제매체 한양경제 기사입니다

김선식 사기장(경북도 무형문화재)은 300년 세월 동안 내려온 ‘관음요’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최근 전통 장작 가마를 사용하면서도 현대적 기법을 가미하는 생활자기 브랜드 ‘다미’를 설립하고 한국 도예산업의 새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다완박물관 제공

“도자기에는 요령이라는 게 없습니다. 정직함과 자연스러움이 배어 나오는 땀과 집념이 필요하지요. 소나무 장작 가마라는 전통 방식에 현대적 기법을 가미하면서 최고 품질을 지닌 실용 자기를 만들어 전통 자기의 대중화를 이뤄내겠습니다.”

‘관음요’ 8대 도공 미산(彌山) 김선식 사기장(경북도 무형문화재)이 나고 자란 곳은 경북 문경 첩첩산중이다. 정확한 역사적 배경을 헤아리기는 힘드나, 관음요 1대 도공 취정(就廷)을 위시해 경주 김씨 도공들은 300년 긴 세월 세상을 피한 채 문경에서 전통 자기의 명맥을 이어왔다.

■ 300년 명맥 이어온 ‘관음요’, 현대적 생활자기로 ‘승화’

관음요 도공들은 자기를 굽는 장작 가마와 물레를 이용해 자기를 굽는 기술을 대대로 전했다. 지난 2002년 세상을 갑자기 등진 선친의 뒤를 이어 김 사기장 역시 관음요 도공의 운명을 좇았다.

서민을 위한 막사발과 명품 백자를 굽던 관음요 도공의 운명이 김 사기장의 삶과 중첩되며 관음요 역사가 또 쌓은 것이다. 김 사기장의 아들도 도예가의 길을 걸으며 9대째 명맥을 이어가니 도예 명문가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전통 자기의 명맥을 이어가는 김 사기장이 최근 새로운 도전장을 쓰고 있다. 생활자기 전문 제조·유통 전문기업인 ㈜다미를 설립한 것이다.

‘모든 것을 담는다’는 의미의 순우리말 ‘다미’는 생활자기 브랜드다. 김 사기장은 다미를 통해 전통 방식을 유지해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현대적 기법을 적용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한 생활자기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김 사기장은 다미 생산을 위한 별도 공장도 건립했다. 해당 공장에서는 석고 몰드를 이용해 자기를 예술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형태로 만드는 ‘도자기 슬립캐스팅(Slip Casting)’ 기술을 적용했다.

김 사기장은 다미를 위해 현대적 도예가 조신현씨와 콜라보레이션(협업)을 선택했다. 무형문화재 백자 장인으로서 장작불의 정교한 가마 소성으로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의 미적 감각을 지닌 도예가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전략이었다.

김 사기장은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그동안 작품 자기 위주로 장작 가마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생활자기로 범위를 넓히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지난 3년간 다미 설립을 준비해왔다”며 “전통 자기에서는 취약할 수 있는 디자인이나 성형 부분은 현대적 도예 기술을 전공한 전문가가 힘을 보태도록 해 생활자기의 혁신을 이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생활자기 브랜드 '다미'의 탄생전이 열린 경북 문경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관람한 주요 인사들이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승욱기자

김 사기장은 다미의 본격적인 론칭에 즈음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7일까지 문경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장작불 생활자기 ‘다미 탄생전’을 열기도 했다. 김 사기장은 다미 탄생전에서 문경 전통 가마 ‘망댕이 가마’를 이용, 옛 도공의 역사적 표현 기법과 혼을 담은 최고 품질의 생활자기를 선보였다.

“요즘은 가스 가마가 대중화된 상황이죠. 장작 가마를 적용해 실용자기를 대량 생산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다미가 유일할 겁니다. 최고 자기 명품을 만드는 문경의 위상만큼 최고 품질의 생활자기를 생산해 우선 고급 식당을 중심으로 (판매) 마케팅을 하고 점차 일반 개인소비자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 “장작 가마 우수성 알기에 전통 포기할 수 없어”

김 사기장이 전통 장작가마 기법을 생활자기에 적용하려고 한 이면에는 ‘한국 도예산업의 위기’라는 아픈 구석이 있었다. 문경도자기협회 이사장을 맡은 그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침체된 전통 자기 시장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관음요' 8대 김선식 사기장이 전통 방식으로 물레질을 하고 있다. 한국다완박물관 제공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통 자기의 판매가 전무했어요. 또 시간이 흐를수록 80대 도예가들은 점차 은퇴를 하고 있는데 작품 자기의 명맥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한계를 느꼈죠. 생활자기의 명품화를 통해 세계화를 이뤄낸다면 ‘K푸드’ 못지않은 ‘K자기’를 통해 국내 도예산업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생활자기 생산 공정에서 전통 장작 가마보다는 가스 가마가 대중화된 상황이지만 그는 전통 장작 가마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전통 기법의 우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 사기장은 지난 2019년 1월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32-마호 문경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사기장 중 청화백자분야 문화재로는 김 사기장이 처음 지정됐다. 그는 일반적으로 우윳빛이 감도는 백자가 아닌 청색이 감돌며 작은 점들이 언뜻언뜻 보이는 독특한 백자 형태를 선보여 주목 받았다.

김 사기장은 “청화백자라는 신규 분야에 문화재로 지정됐는데 문경만의 청화백자를 보여주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 온 결과였다”면서 “수많은 시행 과정을 거치며 특유의 청화백자를 만들었는데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이론을 정리하는 부단한 과정을 거쳤다”고 소개했다.

전통 장작 가마를 이용한 자기 생산 과정은 순탄치 못하다. 장작을 때는 가마를 이용하는 자기 생산 방식은 쉬이 손이 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흙에 물을 부어 고운 흙을 걸러내는 수비(水飛) 작업을 시작으로 나뭇재와 돌가루, 물을 혼합한 유약을 만든다. 그리고 장작을 만들고서야 자기를 만들고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를 반복하며 간신히 전통 자기를 얻어낸다.

요즘이야 가스 가마가 흔하지만 힘든 과정을 거치는 장작 가마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김 사기장은 “가스는 중동에서 수입을 해오는 것이지만 장작은 우리 나무에서 유래한 것”이라면서 “우리 흙으로 만든 자기를 우리 전통 흙가마 안에서 나무를 때고 불을 만들면 그 기운이 자기에 담기고 차를 담아 마시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힘든 장작 가마에서 얻어내는 데 드는 노력에 비해 결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수고에 걸맞는 대가라고 하기에는 불량률이 너무 높다는 점 때문이다. 생활자기를 위한 대량 생산은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할 말이었다.

김 사기장은 “전통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불량률이 40%에 이르렀다”면서 “하지만 9대째 내려오는 오랜 노하우를 반영해 장작을 건조하고 껍질을 벗겨 굽고 과학적인 온도계를 사용해 작품 질의 편차를 줄이면서 지금은 거의 2% 미만으로 불량률을 낮춰 양산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불량률이 과거 40%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2% 미만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전통 자기와 달리 생활자기라는 측면에서 다미의 규격화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김 사기장은 “로트(rot)를 규격화해서 맞춤형 반도체를 만들 듯이 생활자기의 특징에 맞게 맞춤형 그릇을 생산하고자 했다”면서 “(생활자기 의뢰자가) 원하는 콘셉트와 로고를 주면 주문형 자기 생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생활자기 모델 100종 이상 개발…“도예산업 자양분 되길”

생활자기 브랜드 론칭을 기념해 열린 '다미 탄생전'에 전시된 생활자기. 관음요 김선식 사기장이 전통 장작 가마를 이용해 구워낸 자기에 현대적 문양을 입혔다. 이승욱기자

다미는 앞으로 3단계 세그먼트(segment)로 나눠 전략적인 사업 추진을 할 예정이다. 주로 식당에서 사용하는 생활자기를 중심으로 한 레드라벨을 시작으로, 고급 생활자기(블랙라벨), 최고급 생활자기(블루라벨) 등으로 세그먼트를 다양화한다.

김 사기장은 향후 다미의 생활자기 모델을 100여종 이상 개발하는 한편 중국 도자기보다 무게, 이용도, 예술성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품 자기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다미는 다음달 중 서울에서 다미 탄생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는 다미를 위한 도전이 한국 도예산업의 새로운 혁신 단초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 사기장은 “기업이라는 것이 이윤을 목표로 해야겠지만 사회환원도 중요한 공익적 가치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미가 비단 개인적인 차원의 도전이 아니라 한국 도예산업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gun2023@hanyang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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