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도 없는데 왜 입주자부터 뺐나" 서울혁신파크 이상한 개발
서울혁신파크 개발 계획 발표
개발 기대감에 가려진 우려들
앞뒤 어긋난 의문의 폐쇄
다양한 의견 청취 노력도 없어
제2의 가든파이브 될까 우려도
서울시 아닌 서울시민 부지여야
# 2022년 12월. 6개월 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오세훈 서울 시정市政은 은평구에 있는 '서울혁신파크'를 대대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밑그림을 발표했다. 60층 랜드마크, 여의도 '더현대서울'보다 큰 복합문화쇼핑몰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이 과정에서 내비쳤다.
# 그로부터 1년 7개월이 흐른 지금, 서울혁신파크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현주소를 먼저 언급하면 이곳은 지금 '텅 빈' 상태다. 기존 입주자는 둥지를 뺏겼고, 주변 상권은 얼어붙었다. 하지만 세부 플랜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시는 왜 구체적인 플랜도 나오지 않았는데, 입주자들부터 밀어낸 걸까. 더스쿠프가 길을 잃은 서울혁신파크의 자화상을 취재했다.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코엑스급 규모의 '직職, 주住, 락樂 융복합도시'를 만들겠다." 2022년 말 서울시는 이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혁신파크는 서울 은평구 녹번동(5-29) 일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업무공간이다. 질병관리청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이 있던 곳이었는데, 2004~2008년 서울시가 이를 매입해 2013년부터 10여년간 서울혁신파크라는 이름으로 운영해왔다.
이런 서울혁신파크를 갈아엎고, 새롭게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운 주체는 2022년 7월 출범한 '오세훈 시정市政'이다. 서울시가 밝힌 '직職, 주住, 락樂 융복합도시'는 업무공간까지 담은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 따르면 직職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공간과 취ㆍ창업 기반시설을, 주住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하는 미래형 주거단지를, 락樂은 세대를 아우르는 상업ㆍ문화 복합공간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대규모 중앙 광장, 60층 랜드마크, 여의도 '더현대서울'보다 큰 복합문화쇼핑몰, 첨단산업 공간, 800세대 규모의 공공주택, 서울시립대 캠퍼스(취ㆍ창업 지원 시설과 80호의 기숙사 포함) 등을 조성한다. 공적 기능과 경제적 기능까지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시 홍선기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가 2013년 부지를 매입할 당시부터 서울 서북권의 경제생활문화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1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 서울시민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직職, 주住, 락樂 융복합도시는 서북권을 베드타운(주택 중심 지역)을 넘어 자생적 경제기반을 갖춘 서울 안의 작은 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 이 지점에선 따져볼 게 있다. 서울시가 대규모 개발 계획을 염두에 두고 부지를 매입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부지 매입을 결정한 건 2004년인데, 당시엔 이렇다 할 계획이 없었다. 서울시는 공공주택과 공원ㆍ공연장 등의 문화시설을 짓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2008년에 이와 비슷한 내용의 개발 계획도 발표했다. 오히려 상업시설을 짓자고 주장한 건 은평구다. 지금과 같은 대규모 개발 계획이 나온 건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33대)가 끝나가던 2010년이다.]
■ 우려의 근거➊ 경제성 없는 폐쇄 = 하지만 서울시의 기대만큼 우려도 적지 않다. 그 우려를 짚어보기 위해 개발 계획 발표 후 1년 반이 흐른 지금의 서울혁신파크부터 살펴보자. 6월 21일 오후 1시. 서울혁신파크의 모든 건물은 잠겨 있었다. 건물 입구엔 '폐쇄'라는 글자와 함께 "무단출입 시 민ㆍ형사상 관련법에 따라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청구ㆍ고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당연히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존 입주자는 서울시의 요구에 따라 이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다만, 카페 1곳이 정상 영업 중이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카페 사장 A씨가 "서울시의 재계약 거부와 건물 폐쇄는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참고: A씨처럼 서울시의 방침을 거부하고 있는 입주업체는 총 3곳이다.]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이 카페가 서울혁신파크에 문을 연 건 2021년이다. 이듬해 심사 절차를 밟아 재계약했고,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연세年稅를 받았다. 문제는 재개약 체결 한달 후인 12월에 서울시가 서울혁신파크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터졌다. 서울시는 돌연 '2023년엔 재계약을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장 A씨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2022년에 재계약할 때 이듬해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덜컥 도장을 찍지 않았을 거예요. 따지고 보면, 서울시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명시된 계약갱신의무조차 지키지 않은 셈입니다. 이쯤 되면 악덕 건물주나 다름없죠."
[※참고: 여기선 한가지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임대차 계약을 둘러싼 A씨와 서울시의 견해가 다르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A씨와의 계약을 임대차계약이 아닌 '행정재산의 사용허가'라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는 "행정재산의 사용허가는 1년짜리여서 기간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퇴거 의무가 발생하고, 재계약 의무도 없다"고 강조한다.
반면 A씨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재계약이 이뤄져 왔다"면서 "그런 점에서 서울시는 신의성실의 의무를 다했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신의성실의 의무란 일방이 권리를 행사하더라도 상대의 이익을 배려하고 신뢰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규범이다. 1년짜리 계약이라 해도 그동안 별 일없이 재계약이 이뤄졌으니 서울시가 갑작스럽게 개발 계획을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않는 건 이런 규범에 어긋난다는 거다. 7월 24일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왜 입주자들을 서둘러 밀어낸 걸까. 2022년 12월 발표한 서울혁신파크 개발계획을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개발계획은 1년째 그대로다. 서울시가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는 여태까지 나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계획도 아직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 일정을 물어보면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는 서울시 입장에서도 '큰 손해'다. 세부 플랜도 없는 상태에서 입주자를 밀어냈으면 '임대료 손실'이 불가피하다. 지역 상권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결국 서울시는 입주자를 밀어내고 빠진 공간에 은평세무서ㆍ응암지구대 등을 입주시켰다. 개발 계획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혁신파크의 법적 근거인 조례를 폐지했기 때문에 기존 입주민을 내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무런 플랜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조례부터 없앴는지는 알 수 없다. 조례를 폐지하지 않았다면 입주민을 서둘러 내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입주민은 다른 공간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고, 서울시로선 임대료 손실을 피할 수도 있었는데, '두 토끼'를 모두 놓쳐버렸다. 알맹이 없이 '허울'만 좇는 듯한 서울혁신파크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 우려의 근거➋ 반대 목소리 = 실제로 서울혁신파크 곳곳엔 '우려의 흔적'이 담겨 있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그중 일부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서울시의 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이 걸어놓은 현수막도 적지 않다. '서울시의 상업개발을 반대한다' '시민들과 논의해서 결정하라'는 등의 내용이다. 서울혁신파크 부지 개발을 둘러싸고 이견異見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교롭게도 서울혁신파크를 처음 개장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시계추를 2013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박원순 시장은 전임시장(오세훈)의 부지 개발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서울혁신파크 플랜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부지 개발 계획은 오 시장의 기대만을 담은 게 아니었다. 은평구 주민들의 바람(공원 조성을 원하는 이들도 있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개발 계획 전면 재검토와 함께 서울혁신파크 청사진이 나왔을 때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의견을 조율하고 설득하기보단 서울혁신파크를 밀어붙이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서울혁신파크는 결함이 숱했다. 복잡한 운영 구조와 애매모호한 책임소재 탓에 건물 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조형물을 철거하는 일조차 깔끔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서울혁신파크의 운영주체들은 서울시 감사위원회로부터 수십건의 지적을 받곤 했다.
임대료 수익 반환 규정 위반, 물품구매 계약 규정 위반, 특정업체와 수의계약, 무허가 건축물 설치ㆍ활용, 허가 없는 시설물 폐기ㆍ방치, 사용료 산정기준 위반, 직원 채용방식 위반, 불공정한 공모사업 진행 등 지적의 종류도 다양했다.
이 내용들은 더스쿠프가 통권 277호(2018년 1월)에 게재한 '서울시 예산 269억원, 중복사업에 줄줄 새다'란 제목의 단독보도에도 잘 드러나 있다. '혁신'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서울혁신파크였지만, 혁신은 어디에도 없었던 셈이다. 우려를 외면한 결과다.
서울혁신파크에서 근무했던 한 종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2013년에도 그러더니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개발을 하겠다는데,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고 있어요. 2013년처럼 지금도 '맹목적인 목표'를 세워놓고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려는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서울혁신파크의 수난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우려의 근거➌ 가든파이브 실패의 기억 = 물론 시설부터 지어놓고 소프트웨어는 나중에 채우겠다는 심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 전례前例도 있다. 가든파이브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둥지를 튼 가든파이브는 대형 유통ㆍ상업단지다. 2006년에 착공했고, 2008년 1차 완공에 이어 2017년 2차 완공했다.
서울시는 원래 2003~2005년 진행한 청계천 복원사업 때문에 점포를 잃은 상인들을 위한 상업단지로 계획했다. 하지만 대형 쇼핑몰, 창업지원시설 등이 추가되면서 사업은 초대형화했다. 부지만 82만㎡(약 24만8050평)에 달했고, 투입 자금은 2조원을 넘었다.
문제는 2017년 2차 완공 이후 7년여가 흘렀는데도 여태 분양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규모 상인들이 입점한 라이프동의 분양률은 60%가 조금 넘는다. 청계천 공구상가들이 이전한 툴동의 분양률은 80%가 채 안 된다.
서울혁신파크 역시 가든파이브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세부계획이 빠진 밑그림은 늘 방향을 잃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코엑스급 융복합도시'와 60층짜리 마천루, 여의도 '더현대서울'보다 큰 복합문화쇼핑몰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을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한때 서울혁신파크 입주자였던 B씨는 이렇게 꼬집었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들은 서울시가 돈을 주고 부지를 샀으니 그 부지가 서울시청 것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런데 사실은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산 서울시민의 것 아닌가요. 그걸 오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서울혁신파크는 '혁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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