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에 대문서 잠을"…저장강박,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

광주CBS 김한영 기자 2024. 7. 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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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면 쌓이고, 치우면 쌓이는 저장강박 의심가구①]
저장강박 의심가구 대부분 쓰레기로 일상생활 어려워
화재·질병 등 위험에 무방비…이웃과 극심한 갈등도
광주 5개 자치구 관리 저장강박 의심가구 107명
주민 신고 의존…발견 못 한 가구 포함하면 더 많아
편집자 주
과도할 정도로 각종 물품 수집에 집착하는 저장강박 의심가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 저장강박 의심가구는 대부분 가족, 이웃 등과 단절된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지내고 있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쌓아 놓은 물품으로 인해 각종 질병과 화재 등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광주CBS는 치우면 쌓이고, 치우면 쌓이는 저장강박 의심가구에 대한 실태를 짚으며 제도와 관련 대책을 모색해 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29일은 첫 번째 순서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저장강박 의심가구 사례를 보도한다.
저장강박 의심가구인 A씨가 최근 광주 남구 자신의 주택 대문 앞에서 폐지와 각종 물품에 둘러싸인 채 잠을 자고 있다. 김한영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쓰레기 더미에 대문서 잠을"…저장강박,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
(계속)

온갖 잡동사니를 집 안으로 들여오는 저장강박 의심가구.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저장강박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집 마당에 잡동사니 가득…집 앞에서 노숙까지   


"집으로 들어가려면 산 넘고 물 건너 가야제"

최근 광주 남구 월산동의 한 주택 앞.

저장강박 의심가구인 A(68·여)씨는 경계의 눈초리로 주변을 쳐다봤다. 집안 공개를 주저했던 A씨는 동 행정복지센터 사례관리 담당자의 사정 끝에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을 열었다.

A씨가 대문을 열자마자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겼다. A씨의 집 마당에는 오랜 기간 보관해 온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쓰레기 등이 쌓여있었다. 쌓여진 쓰레기의 높이는 대문 크기보다 더 높았다. 쌓인 물품은 폐비닐과 폐지, 고철, 헌옷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집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 넘은 쓰레기 산을 넘어서 가야 한다.

A씨는 지난 6월까지는 집 마당에 쌓인 물품들로 인해 집안이 아닌 대문 앞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A씨는 대문 밑에서 자던 중 바로 앞에 있는 도로로 떨어져 지나가던 차에 깔릴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현재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집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A씨 집 안팎으로 쓰레기 등 각종 물품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다. 동 행정복지센터는 최근 A씨 집 앞에 적치된 쓰레기를 모두 정리했다. 김한영 기자


특히 A씨의 집과 불과 50여m도 안 되는 거리에는 어린이집이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실제로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혹시나 쌓인 쓰레기로 인해 불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어린이집 근처에 저장강박 의심가구가 있는지 몰랐다"면서 "지금 당장은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겠지만 언제든지 안전사고 등이 발생할 수 있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동 행정복지센터의 사례관리 담당자 등은 수시로 A씨를 찾아가 정리를 위해 오랜 기간 설득했다. 하지만 A씨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심해 정리를 거부하고 있다.

'마을 미관' 저해와 질병·화재 등 위험 노출에 이웃과 갈등도


"바퀴벌레도 나오고 습하고 쓰레기도 많아서 너무 힘들어요"

광주의 또 다른 저장강박 의심가구.

광주 한 자치구의 복지담당 팀장은 지난 6월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저장강박 의심가구인 70대 B(여)씨의 집을 정리하기 위해 찾았다가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악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B씨는 수년 동안 집 안팎으로 쓰레기 등을 물품을 수집했다. 집 안에는 수도꼭지도 형체를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녹이 쓸어 있었다. 안방을 비롯해 주방에는 각종 묵은 때가 찌들어있었고, 곳곳에서 바퀴벌레와 개미 떼 등이 눈에 띄었다. 냉장고도 심하게 오염이 돼 당장 버려야 하는 상태였다.

이날 구청과 동 행정복지센터 직원 10여 명이 4시간 넘게 청소와 방역 작업을 진행해 3톤의 쓰레기를 치웠다.

저장강박 의심가구인 B씨는 집안 팎으로 각종 물품을 수집하면서 이웃들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한 주민은 "외관상으로도 좋지 않고 멀리서 봐도 폐가처럼 보인다"면서 "집 근처만 가면 악취도 나고 바퀴벌레와 개미 떼들이 나와 이웃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B씨 집 마당에 폐지와 깡통, 폐목재, 각종 쓰레기 등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김한영 기자

앤디 워홀 같은 광주 저장강박 의심가구는 107명이 전부?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은 호더(Hoader)라고도 불린다. 물품을 사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일단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일종이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도 의미 없는 물건을 집 안에 모으는 저장강박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장강박 의심가구들은 대부분 A씨와 B씨처럼 집 안팎이 각종 쓰레기로 가득 차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저장강박 의심가구들은 자신의 증상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례관리 담당자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의 치료 권유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광주 5개 자치구가 사례를 관리하는 저장강박 의심가구는 △동구청 17명 △서구청 21명 △남구청 13명 △북구청 32명 △광산구청 24명이다.

이처럼 광주에서 사례로 관리되는 저장강박 의심가구는 모두 107명. 이마저도 대부분 쓰레기가 밖으로 노출돼 발견됐을 뿐 아직 발견되지 못한 가구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저장강박 의심가구는 대부분 인근 주민 신고에 의존하다 보니 현황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서 조선이공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장강박이 의심되는 사람이 거주하는 가구에 대한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에서 각 읍·면·동 맞춤형 복지팀을 총가동해 단순히 쓰레기만을 치우는 것이 아닌 촘촘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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