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산넘고 바다건너 500㎞"…제주에서 '컬리'했다
주문 마감 후 23시간 내 배송
'맛집 밀키트' 최고 인기 상품
빨리빨리? 제주도 빼고
요즘에야 한국 하면 K-팝이나 K-푸드, K-뷰티를 먼저 떠올리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빨리빨리'였다. 사실이 그랬다. 한국은 빠른 해결을 좋아하는 나라다. 지금도 그렇다. 어디서든 주문만 하면 다음날이면 제품이 도착한다. 배송이 2~3일 이상 걸리면 물건 값이 더 싸도 왠지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런 게 '한국적인' 삶이라면 제주도는 그동안 한국이 아니었다. 어디서 주문을 하든 빠른 배송에서 '제주도는 제외'였다. 이커머스의 대세가 된 무료배송 역시 제주도는 예외인 경우가 많았다. 지리적인 한계는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공산품은 그나마 낫다. 조금 더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 시간 단위로 녹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신선식품이나 냉동·냉장 밀키트는 주문하기가 더 꺼려졌다. 특히 덥고 습한 여름철엔 더 그랬다. 모처럼 큰 마음을 먹고 주문했다가 다 녹아서 도착한 밀키트를 받아본 경험은 장벽이 됐다.
그런 제주에 컬리가 손을 뻗었다. 이달부터 제주도를 '하루배송' 권역에 품었다. 이로써 컬리는 울릉도를 제외한 전국을 '컬세권' 영역으로 두게 됐다. 하루배송 권역에서는 밤 11시까지만 주문해도 다음날 퇴근 시간 안팎이면 주문한 제품들을 받아볼 수 있다. 주문부터 배송까지 채 24시간이 걸리지 않는 셈이다. 지난 26일 제주도를 찾아 컬리의 발걸음을 따라가 봤다.
500㎞·23시간의 여정
현재 컬리는 매일 제주도에 5톤 트럭 2대 분량의 물량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 초기인 7월 첫 주에는 1대를 운영했지만 오전 10시쯤 주문이 마감되는 등 수요가 몰리자 12일부터 2대를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종 주문 마감 시간인 밤 11시 전에 주문이 마감되는 일이 빈번하다. 제주도가 하루배송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주문을 마감하는 밤 11시가 되면 평택 물류센터가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차량 한 대엔 평균적으로 박스 1200여 개가 쌓인다. 2시간 가량의 상차 작업이 끝나면 날이 바뀐다. 기상상태 등을 고려해 각기 다른 항구로 분산 출발한다. 0시 30분 1호차가 전라남도 녹동항으로, 1시 13분 2호차가 목포항으로 출발했다.
새벽 도로를 달린 차량은 해가 뜰 무렵 항구에 도착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9시엔 배가 출발, 4시간 가량의 항해를 떠난다. 제주항에서 조금 더 가까운 녹동항에서 출발한 1호차는 제주항에 13시 33분 도착해 짐을 내렸다. 목포항에서 출발한 2호차는 조금 늦은 14시 35분에 항구에 도착했다. 평택 물류센터에서 출발해 제주항까지, 총 500㎞ 거리를 넘어오는 데 걸린 시간은 12시간 20분.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차량은 냉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스팩과 드라이아이스는 아직 '만전'이다.
컬리 로고가 새겨진 박스 1000여 개를 내리고 10여 대의 배송 차량에 옮겨 싣자 어느새 15시 30분. 지금부터 배송 시작이다. 제주도는 넓다. 전체 면적이 1850㎢로 서울시의 3배다. 모든 배송을 마무리하는 데 대략 6시간 이상이 걸린다. 밤 10시면 모든 배송이 완료된다. 1시간 후엔 다시 평택에서 또다른 차량이 컬리 박스를 쌓는다.
괜찮은거니 어떻게 보내준거야
컬리의 하루배송은 수도권·광역시에 운영하는 샛별배송과 다른 '익일배송'이다. 제주도의 경우 평택 물류센터에서 나와 고객의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 23시간이 걸린다. 신선식품과 냉장·냉동 간편식이 주력인 만큼 관건은 배송 상태다.
제주의 여름은 덥고 습하다.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아이스팩이 모두 녹아서 오면 아무래도 꺼려진다. 아이가 먹을 음식이라면 더 그렇다. 이날은 비가 수시로 쏟아지면서도 한낮 온도가 30도를 웃도는 '배송지옥'이었다. 박스가 비에 젖으면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컬리는 베테랑이다. 국내 최초로 풀 콜드체인 배송 시스템을 도입·정착시킨 게 컬리다. 평택에서부터 제주까지 모든 과정을 냉장 차량으로 배송한다. 박스가 햇빛을 보는 건 차에서 차로 옮기는 찰나의 순간 뿐이다. 실제로 컬리의 하루배송을 이용한 제주도민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배송상태다.
이날 컬리 하루배송을 이용한 제주도민 A씨는 "여름휴가를 즐기고 집에 돌아오는 전날 오후에 주문을 했더니 이미 도착해 있었다"며 "냉동상품을 주문했는데 포장이 잘 돼 있어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전혀 녹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주도민들이 컬리의 하루배송을 반기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도내에서 즐기기 어려운 유명 맛집의 메뉴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본 매장 접근성이 높은 수도권과 달리 지방·도서지역은 수도권의 유명 맛집을 방문하기 어렵다. 이 때 컬리의 밀키트로 다양한 식사나 디저트를 즐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컬리에 따르면 제주도 내 주문량 톱 5는 '이연복의 목란 짬뽕'·'압구정주꾸미 볶음'·'하코야 냉메밀 소바'·'해운대 암소갈비의 한우 소불고기 전골'·'사미헌의 갈비탕' 등 모두 '맛집 간편식'이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컬리의 최대 인기 상품이 우유·계란·두부 등 초신선식품인 것과 다른 결과다. 그만큼 제주도민들이 '맛집'에 고파 있다는 증거다.
물론 이제 시작인 만큼 갈 길은 멀다. 침대에 눕기 전까지 주문이 가능한 뭍과 달리 제주에서는 저녁 시간이 넘으면 사실상 주문이 어렵다. 물량이 트럭 2대 분량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컬리는 주문량에 따라 순차적으로 물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아직 제주도 전 지역으로 손을 뻗지 못한 것도 숙제다. 육지에 비해 배송 시간이 길어 냉동제품에는 스티로폼 박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쉽다. 언젠가 제주에도 '올 페이퍼 챌린지'가 닿길 바라본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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