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물의 대결, 닮은 듯 다른 독일과 프랑스 악장
박지윤 “악장은 잘 듣는 사람”
이지윤 “악장은 음악적 번역가”
독일과 프랑스 명문 악단의 악장이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드림팀’으로 한 무대에 섰다. “제가 나이가 좀 많아서 큰 지윤이 예요.” 박지윤(39)은 목소리가 차분했다. “저는 그냥 작은 지윤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지윤(32)은 또랑또랑한 말투였다. 두 바이올리니스트는 “우리 둘을 한꺼번에 ‘두 지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웃었다.
지난 24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공연 하루 전에 만난 ‘두 지윤’은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달랐다. 2018년부터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을 맡은 이지윤은 454년 전통의 이 악단에서 최초의 여성 악장, 첫 외국인 악장이다. 박지윤도 2018년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데, 역시 최초의 동양인 악장이다.
“지윤이 바이올린 소리는 힘이 넘치고 윤기가 흘러요.”(박지윤) “언니 바이올린은 소리가 미색이에요. 목소리로 치면 미성이죠.”(이지윤) 두 사람은 “바이올린 음색도 타고난 것처럼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이튿날인 25일 오후 4시,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둘의 음색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지윤은 불처럼 강렬했고, 박지윤은 물처럼 부드러웠다. 여릿하게 흐르는 모차르트 5중주에선 박지윤의 ‘미색’ 바이올린이 그윽함을 더했고, 격정이 넘치는 브람스 5중주에선 이지윤의 격렬한 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제1, 제2 바이올린을 번갈아 연주하며 수시로 눈짓을 교환했다.
파리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인 김한(28)이 두 사람과 호흡을 맞춘 이 공연엔 ‘평창 드림팀’이란 제목이 붙었는데, 사연이 있다. 세 사람은 지난해 9월 프랑스에서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를 연주한 적이 있다. 이 공연을 관람한 첼리스트 양성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이 “대관령음악제에서 드림팀으로 뭉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저한텐 지윤이랑 같이하는 게 드림팀이죠.”(박지윤) “언니랑 하는 거 제게도 꿈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언니 얘길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이지윤) 두 사람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처음 만났고, 시기는 달라도 어린 시절 같은 스승에게 배우는 등 인연이 깊다.
오케스트라 악장은 지휘자 다음으로 중요한 직책. 축구로 치면 지휘자는 감독, 악장은 주장이고, 학교에 비유하면 지휘자는 담임, 악장은 반장에 해당한다. 박지윤에게 악장은 ‘듣는 사람’이다. “악장은 귀가 오케스트라 여기저기에 가 있어야 해요. 악보보다 지휘자의 제스처, 단원들의 눈을 봐야죠.” 이지윤에게 악장은 번역가다. “지휘자의 음악적 해석을 단원들에게 번역해 전달하죠. 단원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해요.” 박지윤은 프랑스어로, 이지윤은 독일어로 단원들과 이야기한다.
동양 여성이 유럽 오케스트라 악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까. “파리는 워낙 열려 있는 도시잖아요.” 박지윤은 “악기별 수석 단원도 여성이 많아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베를린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수석 단원들이 전부 남자인데, 동독 시절부터 연주해온 분들도 있어요. 처음엔 ‘전임자가 하던 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이지윤은 “첫 일주일 동안 너무 고생했는데, 언어가 관건이겠다 싶어 독일어 공부에 매달렸다”며 “단원들에게도 제가 첫 외국인이라 서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고 했다. 유럽 오케스트라엔 악장이 3명씩 있는데, 이지윤은 1년에 90차례, 박지윤은 30차례 정도 악장으로 무대에 선다.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연주를 도맡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연주 횟수가 많은 편이다.
악장들끼리니 ‘척하면 착’이다. “말을 안 해도 너무 잘 맞아요.”(이지윤) “음색을 바로 맞춰주니까 편하죠.”(박지윤) 두 사람은 “같이 연주할 기회가 많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박지윤은 지난 2월, 이지윤은 지난달 국내에서 각각 독주회를 열었다. 박지윤은 프랑스 작곡가 포레를, 이지윤은 슈만, 바그너, 브람스 등 독일 작곡가의 곡을 들려줬다, 박지윤은 최근 서울시향 연주에서 한 차례 객원 악장을 맡았다. 이지윤도 30일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를 연주하는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 악장으로 나선다. 언젠가 국내 악단 악장을 맡을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니냐”며 서로를 보며 웃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8월3일까지 이어진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대한민국 100번째 금메달, 16살 사수 반효진이 쐈다
- [속보] 티몬·위메프, 기업회생 신청…당분간 대금 동결
- 최강 양궁팀엔 10점만 쏘는 훈련상대 있다…실전보다 큰 긴장감
- [단독] 검찰 ‘도이치’ 공소장 3차례 ‘땜질’…1심 땐 왜 안 했나
- [단독] 경찰, 한 달에 1.9명씩 목숨 끊는다…상담인력은 36명뿐
- “한국 양궁 언제 이길 수 있나” 외신기자 질문…중국 대답은
- [단독] 죽음 내몰린 경찰…‘실적 부진’ 13곳 찍은 서울청 압박
- 해리스, 일주일에 2771억원 기록적 후원금…호감도 급상승
- ‘은퇴’ 나훈아 마지막 콘서트…“시원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습니다”
- 친구들의 상담사 19살, 5명에 새 삶…“생전 장기기증 꿈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