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구조개편 변수는…금감원 2차정정 요구 여부 '분수령'(종합)
美 등 해외에선 합병 시너지 효과 투자자에 상세 고지 보편화
주총 특별결의 통과·주식매수청구권 한도 관건…열쇠 쥔 국민연금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에 금윰감독원이 제동을 걸면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일시적 소강상태를 맞았다.
두산 측이 당국의 보완 요구를 반영한 정정신고서 제출을 준비하는 가운데 주주들의 거센 반발 속 금감원의 두 번째 정정 요구 여부가 첫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다만 상장사간 합병·교환은 시가로 해야 한다는 현행 법령 탓에 이번 구조 개편의 핵심인 합병·교환 비율이 유의미하게 변경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결국 주주총회 특별결의 통과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중요한 이벤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 정정신고서 제출 준비…금감원 2차 정정 요구할까
29일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두산에너빌리티와의 분할합병, 두산밥캣과의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에 지난 24일 정정 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정정 요구에 대해 "주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도록 구조개편과 관련한 배경, 주주가치에 대한 결정 내용,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보완하라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금감원의 정정 요구 사항을 반영해 증권신고서를 보완한 뒤 제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를 받은 회사는 3개월 이내에 내용을 수정한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관건은 정정신고서를 받아 든 금융당국이 한 차례 더 정정 요구를 할지 여부다.
물론 금감원이 합병비율에 대해 정정 요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간 분할합병 비율(1대 0.0315651),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간 교환비율(1대 0.6317462)은 상장사간 합병·교환은 시가로 해야 한다는 자본시장법령을 따른 것이어서다.
같은 이유로 두산 역시 증권신고서에 지적된 사항들을 수정해 투자자들에게 충실히 설명하는 것만 가능할 뿐, 합병비율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금융당국으로선 올해 들어 정부가 강하게 추진했던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거세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사안이다. 이 경우 당국 재량으로 여러 차례 증권신고서를 반려할 수 있다.
마침 정치권도 이번 논란에 주목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두산 사태'가 도마에 오른 데다가,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법인에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부여하는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국이 2차 정정 요구까지 한다면 이건 단순히 신고서의 형식적인 면이 아니라 정책적인 차원에서 보고 있다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며 "금감원이 정책적인 관점에서 여론을 고려하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기업 간 합병을 추진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상세한 시너지 효과를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 등을 통해 상세히 고지하는 게 보편화돼 있다.
지난 5월 완료된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 엑손모빌과 셰일오일 업체 파이어니어의 합병 사례를 보면, 파이어니어 이사회는 주주들에게 합병 계약에 찬성할 시 얻게 될 대가를 투자설명서를 통해 상세히 서술했다.
파이어니어는 엑손모빌의 탑티어 프로젝트들로 이뤄진 글로벌 자산 포트폴리오와 배당 확대, 추가 자사주 매입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다른 어떠한 인수합병도 엑슨모빌이 제공하는 가치와 경쟁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며 주주들에게 찬성을 권고했다.
최근 일반주주 권익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진 만큼 금융당국이 두산 측에 해외 사례에 버금갈 정도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여러 차례 정정 요구를 하면서 합병을 철회시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적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기업의 자본거래를 정무적인 판단으로 막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라고 짚었다.
금감원 넘기면 주총·주매청…7% 가진 국민연금 행보 '주목'
금감원의 심사를 통과한다면 남은 절차 중 주목할 것은 오는 9∼10월로 예정된 주주총회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다.
시장은 두산그룹 3사 중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가장 낮은 두산에너빌리티에 주목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두산과 특수관계인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30.67%를 소유하고 있으며 소수주주 지분율은 63.4%다.
상법상 분할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 결의는 특별결의 사항이다. 참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로보틱스와 에너빌리티 간 분할합병이 이뤄질 수 있다.
열쇠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3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에너빌리티 지분 6.78%(4천341만9천37주)를 가진 2대 주주여서 국민연금 의중과 일반주주들의 결집 정도에 따라 분할합병 계획이 부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주식매수청구권이 얼마나 행사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로보틱스와 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에너빌리티의 매수 한도 6천억원을 넘어설 경우 양사는 분할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2만890원으로 책정된 에너빌리티 주식매수청구가격으로 역산하면 2천872만1천877주만 반대해도 두산의 사업구조 개편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는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도 충분하다.
천준범 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와이즈포레스트 대표)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건 이사회 의결을 한 번 더 거친다는 것"이라며 "두산에너빌리티 이사회 이사들이 비판 여론을 극복하면서 다시 한번 분할합병에 찬성할지가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연일 하락하며 주식매수청구가보다 낮은 1만9천원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다만 체코 원전 수주 소식이 전해진 지난 18일 주가가 장중 2만5천원까지 올랐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변수다.
[표] 두산그룹 사업구조 개편 주요 일정
※ 출처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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