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 살해하고 시신 옆에서 맥주 마신 스토킹 살인마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7.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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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면서 호감 느낀 A씨에게 차단당하자 앙심 품어
A씨 살해 위해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계획살인”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서울 강남구에 살던 김태현(25)은 전과 3범이었다. 그는 성적인 욕설로 벌금 30만원(2015년),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훔쳐본 혐의로 벌금 200만원(2019년), 미성년자에게 성적인 음성 메시지를 보내 벌금 200만원(2020년)에 각각 처해진 전력이 있었다. 이 중에는 미성년자를 스토킹하다가 대구의 한 고시원에서 발신번호 표시 제한 서비스를 이용해 전화를 걸어 신음소리를 낸 것도 포함돼 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김씨는 군대에 다녀온 후에도 뚜렷한 직업 없이 PC방을 전전했다. 알바 사이트를 통해 한 음식점 면접을 봤다가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하루 만에 그만두기도 했다. 

'노원구 세 모녀'를 잔혹하게 연쇄 살해한 피의자 김태현이 2021년 4월9일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중간 사진은 세 모녀 피살 사건의 피해자들 집 앞 ⓒ시사저널 임준선·뉴시스

A씨 향한 병적인 집착으로 스토킹 시작

김씨는 2020년 11월쯤 온라인 게임을 하다 A씨(여·25)를 알게 된다. 이후 몇 차례 함께 게임을 하면서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고, 카카오톡과 보이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씨가 힘들다고 하면 A씨가 따뜻하게 위로해 줬다. A씨는 평소 남녀 모두에게 친절하고 위로를 잘해 주는 성격이었는데, 김씨는 이걸 호감으로 착각했다. 그는 A씨와 게임을 하면서 마음이 잘 맞는다고 판단하고 연인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2021년 1월초에는 PC방에서 처음으로 만나 게임을 했다. 이후 두 차례 더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세 번째 만남 때는 게임을 함께 하던 지인 2명을 포함해 4명이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김씨가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등 말다툼을 벌이면서 깨졌다. 이 일을 계기로 A씨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김씨를 모두 차단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김씨는 A씨에게 집착하며 스토킹을 시작한다. 그는 A씨가 단체대화방에 올린 사진에서 택배상자에 적힌 주소를 보고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아파트 동호수를 알아냈다. 

1월24일 김씨는 A씨 집에 찾아갔고 집 안에는 A씨 어머니가 있었는데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했다. A씨는 이날 김씨에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 앞으로 찾아오거나 연락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계속 A씨 집 주위를 배회했다. 수시로 찾아오고 연락을 시도했다.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아는 사람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A씨가 연락을 피하면 집 앞에서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A씨는 휴대전화번호까지 바꿨다. A씨는 친구들에게 "김씨의 병적인 집착 때문에 전화번호를 바꾸고, 귀가할 때마다 돌아서서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A씨가 계속 자신을 피하자 김씨는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범행을 준비한다. 3월23일 오후 5시쯤 김태현은 A씨 집 앞에 있는 PC방에 들렀다. 여기는 A씨가 게임을 하기 위해 자주 찾던 곳이었다. 

김씨는 약 20분 동안 머물면서 게임 대신 살해 방법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자신이 평소 잘 쓰지 않던 아이디로 닉네임을 바꾸고, A씨에게 말을 걸어 귀가하는 시간대를 파악했다. 오후 5시25분쯤 김씨는 인근 슈퍼마켓에 들어가 진열돼 있던 흉기 1개를 훔쳐 옷 속에 숨기고, 주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다른 물건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김씨는 피가 튈 것에 대비해 갈아입을 검은색 운동복과 바지 한 벌을 챙겨 오는 등 철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하기 위해 내용물이 없는 종이상자도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 등도 검색했다.

김씨는 범행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되자 오후 5시30분 A씨 집으로 찾아갔다. 당시 집 안에는 A씨 여동생(22) 혼자 있었다. A씨 아버지는 2001년쯤 세상을 떠나 아파트에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포함한 세 모녀가 살고 있었다. 김씨는 인터폰을 눌러 "물건을 배달 왔다"며 퀵서비스 기사라고 속였다. A씨 여동생이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하자, 가는 척하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그는 흉기를 꺼내 들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A씨 여동생은 예정에 없던 퀵서비스가 오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먼저 어머니(59)에게 전화해 퀵서비스를 시킨 적이 있는지 물었고, 그다음에 언니에게도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퀵서비스 시킨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모두 "시킨 적이 없다"고 하자 의아해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바로 그때 문 가까이 서있던 김씨가 문을 붙잡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겁에 질려 있던 A씨 동생을 흉기로 위협하다 급소를 수차례 찔러 살해한다.

A씨 어머니는 작은딸 전화를 받은 후 걱정돼 3분 후 '나가 봤어?'라고 물었고, 답변이 없자 계속 '뭐 하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김태현이 죽은 작은딸을 대신해 문자에 답했다. 평소 살갑던 작은딸이 무미건조한 답장을 하자 신변 이상을 직감한 어머니는 7차례나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서둘러 집에 돌아왔지만 기다리고 있던 김태현에게 살해된다. 

얼마 후 A씨가 귀가하자 김씨는 흉기로 위협하며 "왜 날 피하느냐"고 따졌다. A씨는 김씨에게 흉기를 내려놓도록 회유했다. 그러면서 "엄마와 동생은 어딨냐"고 물었다. 두 번의 살인을 방에서 저질렀기 때문에 거실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김씨가 "모두 죽였다"고 하자 A씨는 김씨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저항했으나 끝내 살해된다. 김태현은 이렇게 약 7시간 만에 단란했던 한 가족을 몰살했다.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이 범행 전 PC방에서 나오고 있다. ⓒ채널A 방송화면 캡처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집행" 이례적 주문

범행 후 김태현은 A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SNS에 접속하고 자신과 A씨가 게임을 통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을 차단했다. 김씨는 도주하지 않고 세 모녀의 시신이 있는 아파트 안에 그대로 있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마시는 등 한껏 여유를 보였다. A씨의 친구들은 A씨가 연락되지 않자 이를 이상히 여기고 사건 발생 이틀 후인 3월25일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 아파트 현관문 앞에 도착하자 김씨는 목을 찔러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회복한다.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범행동기 등을 추궁했다. 그는 "A씨와 팀을 이뤄 게임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차단당해 그 이유를 묻고 싶어서 스토킹했으나 계속 피해서 앙심을 품고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피해자들 모두 급소를 찔려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검의는 "피해자들의 상처 부위와 깊이를 봤을 때 김씨의 직업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치밀했다"는 소견을 냈다.

김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다수 음란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이 발견됐다. 사건이 알려진 후 김씨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경찰은 세 명의 목숨을 빼앗은 범행의 잔혹성 등을 이유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김태현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했다. 

김씨의 신상이 공개된 후 그와 관련한 언론 제보도 이어졌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김씨가 평소에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고 했다. 장난을 치다가도 욕을 하고 화를 내는 등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성별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과도하게 집착하는 성향도 있었다. 물건을 훔치는 등 도벽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찰에 송치되는 과정에서 김씨는 취재진이 '유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지금 하겠다"며 마스크를 내리고 무릎을 꿇었다. 검찰은 살인·특수주거침입·경범죄처벌법 위반 등 5개 혐의를 적용해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첫 재판에 앞서 네 차례의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A씨를 제외하고는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A씨를 살해하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죽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범행 전에 A씨 여동생이 집에 있는 것을 알았고, 수사기관 조사에서 "A씨를 죽이는 데 필요하면 가족을 죽일 수 있다"고도 진술했다.

사건 다음 날 '스토킹 처벌법' 국회 통과

유족들도 "작은딸이 살아있는 것처럼 메시지를 보내는 등 어머니를 집 안으로 유인해 살해한 것 등이 계획살인 증거"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김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유족은 세 명을 죽인 죄도 크지만 출소하게 되면 보복살인을 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판결 직후 검찰과 김씨 모두 항소했다. 2심에서도 원심판결이 뒤집히지는 않았지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집행을 행정부에 주문했다. 무기징역형은 가석방할 수 있지만 잔인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 참회하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잔혹한 범행을 저질러 세 명을 살해하고 살해 현장에서 시신을 곁에 두고 체포될 때까지 이틀이나 머물렀다"며 "일반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사회적 포악범행"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살해 과정이 무자비하고 교화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며 사형 선고가 마땅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실효성을 상실한 현재 형벌 시스템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상황에서 법원은 가석방 의견을 명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 이후 검찰과 김씨 모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 사건 이후 국회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1999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스토킹 처벌법은 2021년 2월까지 총 21회 발의됐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가 세 모녀가 살해된 다음 날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좀 더 일찍 처리됐다면 세 모녀의 비극을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스토킹 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전화 등을 이용해 말, 음향을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행위"를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김태현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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