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도 없는데 보조금 논의? '페달 오조작' 방지책 이상한 속도전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증가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주목
상품과 시장 만드는 게 관건
보조금부터 논의하는 정치권
앞선 일본 사례 벤치마킹해야
20.0%.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대비 고령운전자 사고 비율이다. 2019년(14.5%)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그러자 이 비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조건부 면허 도입이나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탑재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된다. 이번엔 제품도 완전하지 않은데 보조금부터 논의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도입 문제를 꼬집어보자.
지난 7월 1일 16명의 사상자(9명 사망)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 이후 급발진과 함께 고령운전자의 위험성이 이슈로 떠올랐다. 쟁점은 이 두가지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에 집중됐다.
우선 급발진 의심 사고는 인정된 선례 자체가 없다. 급발진 예방장치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이는 글로벌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차가 앞으로 돌진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게 먼저다. 정부와 국회가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고령운전자 문제는 좀 다르다. 고령운전자 사고는 대부분 페달 오조작에 의해 발생한다. 고령운전자 본인이 가속페달을 밟았는지 감속페달(브레이크)을 밟았는지 혼동하는 거다. 고령운전자용 조건부 면허 도입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예방장치도 개발 중이다.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란 말 그대로 운전자가 페달을 잘못 밟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다. 예컨대 저속인 상황에서 앞에 장애물이 있는데 운전자가 갑자기 가속페달을 밟는다면 차가 스스로 제동한다. 가속페달을 급작스럽게 비정상적으로 밟으면 계기판에 경고문구가 뜨거나 경고음이 울리기도 한다.
최근 현대차는 자사가 생산한 소형 전기차에 이와 유사한 장치를 탑재하기도 했다. 급발진 사고와 달리 고령운전자 사고는 조금만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성급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보조금 논의다.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를 탑재한 차에 국가나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원하자는 건데, 관련 기술력이 '긴급자동제동장치' 수준에 머물러 있어 개발이 좀 더 필요하다.
시장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김칫국부터 마셔선 안 된다는 거다. 이래선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20여년 전부터 고령운전자 사고 급증 문제를 겪은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애프터마켓에선 중소기업들이 개발한 다양한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가 팔리고 있다. 호환성이 좋아 적잖은 자동차 브랜드에 탑재할 수 있다. 가격도 한화로 25만~30만원 수준으로 적절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의 난립을 방지할 인증체계나 매뉴얼도 잘 갖추고 있다. 지자체는 이런 장치의 장착 보조금을 지원해 고령운전자의 부담을 줄여준다. 일본의 경로에 따르면, '상품개발→론칭→시장(애프터마켓) 형성→지원체계'의 수순을 거쳐야 한다는 거다.
물론 우리나라가 무조건 일본을 따라가야 한다는 건 아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한 만큼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 다만, 먼저 시장을 개척하고 성장시킨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면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고령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꼼꼼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두르면 더 큰 화를 부를지 모른다. 무리하지 말고 국민적 공감대와 합리성을 따지는 과정도 필요하다. 지금은 초석을 세워야 할 때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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