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벽돌위 앉아 우는 부처… 사유를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Ⅱ]
(3) 깊은 인간애를 새기는 작가 김승영
생각하는 사람을 떠난 생각
결국 연민이란 종착점 닿아
스피커를 탑처럼 쌓아 올려
행인·자연의 소리 등 담아
광장이 되고 때론 자연이 돼
원초적인 나와 만나는 명상
벽돌에 이름들 새겨 벽 쌓아
자신은 ‘타인의 총합’ 표현
집에 김승영 작가의 작품이 하나 있다. 일전에 작가가 선물로 준 것으로, 파벽돌에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작품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명패라고 해도 좋다. 다른 몇 사람도 저마다 이름이 새겨진, 같으면서 다른 작품을 선물로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알게 된 사람들의 이름을 파벽돌에 새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파벽돌로 벽을 쌓는다. 인생이란 벽이고, 삶이란 벽이다. 파벽돌을 쓰는 것은 삶이 그런 것처럼 시간이 만들어준 흔적이며 상처가 배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름으로 벽을 쌓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신의 인격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시켜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세간의 상식을 재확인시켜 주는 작업이고, 주체란 타자들의 총체라는 후기구조주의의 관념에도 부합하는 작업이다.
자기 정체성을 묻는 작업으로, 영화가 끝날 때 화면 위로 출연진과 제작진의 이름이 뜨는 엔딩 크레디트의 형식을 차용한 다른 버전의 작업도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와 다른 점은 출연진과 제작진 대신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화면에 뜬다는 것이고, 엔딩 크레디트에서 이름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면 작가의 작업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다르다. 빗방울이 모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가 쌓이고 쌓여서 자신의 인격을 형성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예외가 없지 않지만, 대개 자기 정체성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존재론적인 물음을 묻는 것이다. 그 물음은 아무래도 작가가 작가적 이력을 시작한 P.S.1(1999∼2000) 시절에서부터 발아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국제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당시 작업에서 작가는 사막의 모래밭에 영문자 I(나)라고 쓴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와 글자(나)를 지운다. 그러면 작가는 다시 쓰고, 바람이 재차 지우기를 반복한다.
또 다른 영상 작업에서 작가는 등신대 크기의 자기 사진을 벽에 건다. 그리고 사진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러면 다시 걸고, 사진이 떨어져 내리고, 다시 걸기를 반복한다. 나는 사진 속에 있는가, 영상 속에 있는가, 아니면 영상 밖에 있는가, 그중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작업이다. 그리고 여기에 좁고 굽은 골목길이 있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골목길 끝에는 작은 방이 있고, 방에는 검은 물이 샘솟는 원형의 수조가 있다. 검은 물은 무의식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그 물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잊힌 자기와 만날 수 있다. 자기 반성적인 경험으로 유도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작가는 작은 쪽창에 노란 셀로판지를 붙였다. 셀로판지를 통해 본 현실이 졸지에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작가가 과거, 그러니까 지나온 자기를 현재 위로 되불러 오는 방법이다. 그리고 작가는 낡은 저울에 뇌의 무게를 잰다. 뇌로 대변되는 인간이 물질(유물론)인지 정신(관념론)인지, 아니면 영혼(영성주의)인지 묻는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을 빌려 모두가 공감하는 존재론적 물음을 묻는다.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그 물음은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를 묻는 작업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이런저런 작업이 있지만 스피커 탑이 대표적이다. 스피커를 탑처럼 쌓아 만든 작업으로 아마도 작가의 작업 중 단일 조형물로는 규모가 가장 큰 작업일 것이다. 소리를 내장하면 소리가 나는 소리 탑이다. 소리를 무형의 조각으로 본 이른바 소리 조각과도 통하는 작업으로, 어떤 소리를 내장하느냐에 따라서 상황과 의미가 달라지는, 변신하는 조각이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우연한 소리를 채집해 재생하면 광장 조각이 되고,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나 어긋나는 대화를 채집해 재생하면 현대인의 소외와 불통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되며, 새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재생하면 자연을 통한 치유의 계기가 되는, 저마다 원초적인 자기와 만나는 명상의 계기가 된다.
자기 내면과 만나는 치유와 명상의 계기를 열어 놓은 것인데, 그 계기가 통해서일까. 현대미술 작가로는 국내 최초로 박물관과 협업 전시한 것이 주목된다. 박물관은 일종의 시간의 집이고, 여기에 현대미술이 개입해 잠자는 시간을 일깨워 준, 그렇게 전시 관행을 바꿔 놓은 사건이라고 해도 좋다.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을 소재로 한 전시로, 2018년 국립춘천박물관을 시작으로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한호 수교 60주년에 해당하는 2021년에는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박물관으로 이어진 순회 전시가 그렇다. 전시장에 파벽돌을 깔아 바닥을 조성한 후 그 위에 좌대에 놓인 오백나한을 모셨다. 파벽돌에는 ‘고맙습니다’와 같은 위로와 격려의 말과 함께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와 같은 저마다 자신에게 되묻는 것 같은 말들이 아로새겨져 있어서 옛사람과 묵언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소리 탑 안에 서서 저마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했다. 2023년 송도국제도시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시에서는 버전을 달리해 인류 최초의 언어적 사건에 해당하는 바벨탑(타워)을 설치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박물관과의 협업으로 성사된 이 일련의 전시에서 작가는 단순한 조각과 조형물의 경계를 넘어, 미술관의 경계를 넘어 공간 설치와 연출이라는, 탈경계와 지평의 융합이라는 또 다른 확장 가능성을 예시해 주고 있다. 일본에서 출발한 일본 작가와 한국에서 출발한 작가가 바다 정중앙에 해당하는 대한해협 공해상에서 만나 교류하는 퍼포먼스(2002)와 함께 문명사적 비전을 내장한 세계사적 스케일의 작업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 우는 부처가 있다. 원래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살짝 비튼 것이다. 원작에서는 턱에 가볍게 손가락을 대고 있는데, 마치 눈물을 훔치듯 손가락의 위치를 눈 밑으로 옮겼다. 그리고 여기에 고개를 살짝 앞쪽으로 기울인 것도 같다. 슬픔의 감정을 고조하기 위한 것일까. 부처가 운다. 부처는 왜 우는가. 사유, 그러니까 생각하는 사람을 우는 사람으로 바꿔 놓은 것인데, 생각의 끝자락에 울음이 있고 슬픔이 있으며 연민이 있다. 생각하는 사람을 떠난 생각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헤매다가 종래에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라는 종착지에 가닿았다. 그러므로 생각이 곧 연민이다.
그리고 스님이 마당을 쓴다. 어제도 쓸고, 오늘도 쓸고, 내일도 쓸고 하염없이 쓴다. 쓸만한 것이 없는데도 쓸고 또 쓴다. 그렇게 스님은 마당을 쓸면서 사실은 자기를, 마음을, 번민을 쓸고 있었다.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표상이며, 예술가의 초상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 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가 겨울에 추위를 덜 요량으로 앉아 있던, 전기가 들어오는, 칠이 벗겨져 반들반들해진 빨간 철 의자와 죽은 새에 이르기까지 김승영의 작업에는 진정한 자기(불교에서의 진아)를 묻는 와중에, 문명사적 비전과 스케일의 와중에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헤아리는 깊이가, 인간애가, 연민이 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
■ 김승영 작가는
김승영 작가는 1963년생으로,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지난 2002년과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받아 작품을 선보였으며,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2006)와 강릉국제비엔날레(2008)에도 참여했다. 또한 몽골 노마딕 아트레지던스 프로그램(2008), 남극 노마딕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2011), 바이칼 노마딕 아트레지던스 프로그램(2014)과 같은 사막이나 극지, 그리고 오지에서 전개되는 여러 노마딕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을 대상으로 한 전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2018·국립춘천박물관)과 ‘당신의 마음을 닮은 나한’(2019·국립중앙박물관), 한국-호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창령사 터 오백나한’(2021·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박물관), 바벨탑(타워)을 설치한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2023·국립세계문자박물관 개관전) 등을 통해 박물관 전시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았다. 동아미술제 대상(1998), 전혁림미술상 대상(2020) 등을 수상했으며, 2022년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조각상인 ‘김종영미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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