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답이 있다”… 소통의 힘으로 ‘농협 혁신’[Leadership]
농가 직접 찾아가 애로 청취
“업무의 주역은 현장 직원들
나는 후원·보조자 역할일뿐”
경제지주 통합 등 ‘강한 추진력’
“농협 금융·경제 역량 결집시켜
안심하고 농사짓는 여건 조성”
“변화와 혁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농민 운동가형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복수의 농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17년 만에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강호동(60) 농협중앙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8년 만의 영남권 출신 농협 수장이 됐다. 앞서 지난 1월 25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2차 결선투표까지 상대 후보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강 회장은 개표 결과 총 781표(62.7%)를 얻어 제25대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난 3월 11일 공식 취임한 그는 앞으로 2028년까지 4년 단임 임기를 수행한다.
농협중앙회장은 206만 명에 이르는 농협 조합원을 대표해 흔히 ‘농민들의 리더’로 불린다. 금융·유통 등 농협 사업 전반을 이끌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1년 정부 임명제로 도입된 농협중앙회장은 1988년부터 민선으로 선출 방식이 전환됐다. 이후 정부는 2009년 농협중앙회장 비리를 막기 위해 농협법을 개정해 임기를 한 번으로 제한하고 선출 방식도 간선제로 바꿨다. 그러나 선거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자, 결국 법을 개정해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올해 선거부터 다시 직선제를 적용했다.
강 회장은 2020년 제24대 회장 선거 당시 출사표를 던졌다가 고배를 마셨지만, 재수 끝에 농협중앙회장 직을 거머쥐었다. 그는 앞서 농민신문과 농협중앙회 이사, 경남 합천 율곡농협조합장(5선)을 지냈다. 강 회장은 당선 직후 “보내주신 압도적 지지는 농협을 혁신하고 변화를 이끌어 농민을 위한 농협중앙회로 발전해 나가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답은 현장에 있다” = 강 회장이 높은 지지세를 얻어 당선된 것은 그가 평소 중시하는 ‘현장 행보’가 농협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강 회장은 공식 취임 이틀 후인 지난 3월 13일 곧바로 전남 나주시 세지면의 멜론하우스 피해 현장을 찾아 농민들을 위로했다. 기후 변화 여파로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일조시간이 평년 대비 80% 수준으로 짧아지자 당시 멜론·딸기 등을 재배하는 농가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강 회장은 농민들에게 “피해 복구를 위한 무이자 재해자금 지원과 과채류 하나로마트 특별 판매 예산 지원, 영양제 할인 공급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달 15일에도 경북 성주군 참외 피해 농가를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강 회장은 취임 100일(6월 18일)을 앞두고 지난달 14일에는 중앙·경기본부 임직원 500여 명과 함께 경기 안성 대덕면 일대 농가를 찾아 배 봉지 씌우기 등 영농작업을 도왔다. 그는 “고령화·인건비 상승·이상 기후에 이르기까지 농촌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농협 임직원들의 일손 돕기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앞서 지난 5월 23일에는 서울 중구 농업박물관 앞 야외농장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못줄을 사용한 전통 모내기 체험행사에 참여했다. 학생들이 도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전통 농경문화를 체험하고 다양한 토종 벼 종류와 중요성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농업계 관계자는 “강 회장은 조합장 시절부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을 강조하며 일일이 농가를 찾아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지원하는 데 힘써왔다”며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농촌 문제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농민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평가했다.
◇과감하게 혁신 주도 = 강 회장은 지역 농협을 중심으로 한 농협 전반의 변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28일 세종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과감한 변화와 혁신의 노력만이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고 농협의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또 “농협 본분은 농업인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향상과 실익 증진에 있다”며 “이 역할을 최일선에서 수행하는 곳이 바로 지역 농·축협”이라고 역설했다. 강 회장은 평소 농협중앙회 중심의 경영과 정체되고 있는 사업 경쟁력, 운영상 비효율 등을 혁신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은 취임식 당시 농협중앙회의 핵심 역할을 두고서는 △농·축협 위상 제고 및 사업 활성화를 위한 역량 집중 △생산·유통 혁신을 통한 미래 농산업 선도·농업 소득 향상 △금융부문 혁신 및 디지털 경쟁력 증진 △미래경영·조직문화 혁신을 통한 새 농협 구현 △도농교류 확대와 농촌 경제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회장 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중앙회와 농협경제지주의 통합 추진에 대해서도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나로유통·남해화학 등을 보유한 경제지주 기능을 중앙회로 다시 가져와 효율성을 꾀해야 한다는 취지다. 강 회장은 “경제지주 계열사 중 적자 운영하는 사업체가 많아 이 부분을 어떻게 할지 회장으로서 고민”이라며 “이를 개선하려면 다시 중앙회로 통합하는 방향이 맞다”고 밝힌 바 있다.
강 회장은 율곡농협조합장 당시 시골의 작은 단위 조합을 도시 인근의 대규모 농협조합 못지않게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0년대 후반 지역 농협 최초로 9만9000㎡ 규모 고구마밭을 일궈 농장을 만들고 직접 생산·판매를 해 주목받았다. 또 농산물저온저장고 6개 동을 건립해 양파즙과 아이스 딸기 등 특산물의 해외 수출시장을 개척한 바 있다.
◇격의 없는 소통도 강점 = 강 회장은 공식 취임 나흘 전인 지난 3월 7일 서울 중구 농협 본부의 본관과 신관, 별관을 찾아 모든 층을 돌며 전 직원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60여 년간 농협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직원 여러분의 수고와 노력 덕분이었다”며 “다만 현재 농협을 바라보는 국민과 농업인들의 시각이 녹록지 않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가 변화·혁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을 만드는 데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농협의 모든 업무 추진과정에서 현장 직원들이 주역이고, 회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후원자 내지 보조자 역할을 하겠다”고 사기를 북돋웠다.
강 회장은 취임 이후 다양한 업무 관계자 등과 허물없는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4월 5일에는 대구 달성군 델리베리 딸기농장을 찾아 청년 농업인의 애로사항 등을 경청하는 데 집중했다. 당시 황희재 델리베리 딸기농원 대표가 “청년 농업인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과 관심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강 회장은 “농협의 금융과 경제 역량을 결집해 농업인이 안심하고 농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강 회장은 이달 초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 회장으로 취임하며 “농업이 처한 녹록지 않은 현실로 인해 ICAO 회원기관 간 단순한 교류를 넘어 무역·합작 등 실질적 협력사업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를 반영해 협동조합 간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다양한 국가들의 ICAO 회원기관과의 소통·연대를 강조한 것이다. 농업계 관계자는 “강 회장에게는 농업인 수익증대와 농촌 일손부족, 이상기후 피해대응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조직의 비전과 목표 달성을 위해 구성원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6만 조합원 대표하는 ‘농민 리더’… 금융·유통 등 32개 계열사 이끌어
■ 농협중앙회장은…
농협중앙회장은 전국 206만 명에 이르는 농협 조합원을 대표하며 ‘농민들의 리더’로 불린다. 비상근직으로 임기는 4년 단임이다.
또 금융·유통 등 사업 전반을 이끌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농민신문사 회장도 겸임한다.
농협중앙회 32개 계열사 자산 규모만 약 145조 원에 이른다. 총자산 525조 원의 농협금융지주까지 더하면 우리나라 한 해 예산과 맞먹는 막대한 자산을 굴릴 수 있다.
농협중앙회는 1961년 발족해 25대에 걸쳐 총 18명의 중앙회장을 배출했다. 초창기였던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에는 현역 군인이었던 임지순, 오덕준 전 회장이 임명됐다. 이후 3대와 4대에는 재무부와 한국은행 출신인 이정환, 문방흠 전 회장이 각각 뒤를 이었다. 이후 5∼13대까지 중앙회장은 모두 관료들이 독식했다.
정부 임명제였던 농협중앙회장 선출 방식은 1988년 민선으로 전환됐다. 민선 1대(14∼15대) 중앙회장은 강원 출신으로 15대 국회의원(자유민주연합)을 지낸 한호선 전 회장이다. 2대는 16대 국회의원(자민련)을 지낸 서울 출신 원철희 전 회장이고, 3대는 경남 출신으로 삼랑진농협조합장을 지낸 정대근 전 회장이다. 이어 4대는 경북 출신 최원병 전 회장으로, 15년간 경북 도의원(민자·한나라)을 지낸 이력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고교 후배로 잘 알려져 있다. 5대 김병원 전 회장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4년 단임제를 처음 적용받았다. 호남에서 배출된 첫 민선 회장이기도 하다.
7대(25대) 강호동 현 회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면 단위 조합인 율곡농협조합장을 지냈다.
강 회장은 취임 직후 “지난 60여 년 농협이 추진해온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농협을 새롭게 혁신하겠다는 임직원의 강한 의지로 비전 2030을 수립했다”며 “이를 변화와 혁신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농민과 농·축협이 중심이 되는 농협, 국민에게 사랑받는 농협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비전 실현을 위한 슬로건은 ‘희망농업, 행복농촌 농협이 만들어 갑니다’로, 핵심 가치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농민을 위한, 지역 농·축협과 함께하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농협으로 각각 정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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