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승부로 오일쇼크 극복… 위기에 더 강했던 ‘항공업계 거인’

장병철 기자 2024. 7. 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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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거 5주기… 평전으로 다시보는 조양호 한진 선대회장
“유가는 적응하는 것”
70년대 고유가, 장비 가동률↑
이후 중동노선 본격 확대 계기
“경영학은 시행착오 정리”
이론 추종 아닌 현장경험 중시
“한번 더 사고 나면 죽는다”
무사고 절대안전 혁신 이끌어
한진그룹은 고 조양호 선대회장 서거 5주기를 맞아 고인의 삶과 철학을 되새기는 평전 ‘지구가 너무 작았던 코즈모폴리턴’을 공개했다. 사진은 조 선대회장 모습.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이 ‘항공 업계의 거인’으로 불리는 고 조양호 선대회장 서거 5주기를 맞아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지구가 너무 작았던 코즈모폴리턴(세계인)’을 공개해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평전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담은 이후 반세기 가깝게 최일선에서 한국 항공 산업을 이끌어온 조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과 함께 한진그룹이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발전해온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울러 ‘그룹 CEO’가 아닌 한 명의 ‘코즈모폴리턴’으로서 조 선대회장이 가졌던 고민과 인간적인 면모들도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조 선대회장의 리더십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는 만큼 평전을 통해 조 선대회장의 경영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 경영 = 조 선대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CEO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 파동)가 발생했을 당시다. 조 선대회장이 대한항공에 입사한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었다. 특히 1978년 2차 오일쇼크 때는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이 수천 명을 감원했을 정도로 항공 업계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조 선대회장은 역발상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다른 항공사들과 달리 원가는 줄이되 시설·장비 가동률은 되레 높이면서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인력과 항공기 수를 줄이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타 업체들과 달리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불황에 호황을 대비한 것이다. 그 결과 대한항공은 오일쇼크 이후 중동 여객 수요를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중동 노선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유가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당시 조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스템 경영론’ 창시 = 조 선대회장은 평소 경영학을 ‘경영의 원리’가 아니라 ‘경영의 결과’로 정의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조 선대회장은 ‘경영학이란 수많은 경영자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룩한 성과를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며 “조 선대회장은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 대부분 인문서였고 경영서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조 선대회장에게 경영은 경영학 이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업과 기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 조 선대회장은 ‘장남의 자격’이 아니라 ‘경영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그는 1974년 대한항공 입사 이후 정비·자재·기획·정보기술(IT)·영업 등 전 부문을 두루 거치며 항공·운송 시스템을 면밀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또 조종사 라이선스를 획득했으며 엔진 소리만 듣고도 항공기 정비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조 선대회장은 본격적으로 CEO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에는 항공·운송업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며 ‘CEO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조율하는 지휘자가 돼야 한다’는 이른바 ‘시스템 경영론’을 창시하기도 했다. 조 선대회장은 시스템 경영론과 관련해 “임직원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규정과 매뉴얼을 충분하게 이해하고 반복훈련을 통해 생활화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정확하고 단호하게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5년 B777 항공기의 엔진을 살펴보고 있는 고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 모습. 한진그룹 제공

◇절대안전을 향한 도전 = 조 선대회장은 1999년 대한항공 회장으로 취임한 날부터 대한항공의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자처했다. 대한항공 한 임원은 “미주 지역 본부장 시절 하루에 100대 가까운 항공기가 머리 위에 떠 있음을 생각하면 순간순간이 아찔한데, 조 선대회장은 전 세계 상공에 수백 대가 떠 있는 것을 늘 염두에 두셨다”고 말했다.

특히 1997년 대한항공 항공기가 괌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조 선대회장은 안전 경영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고 경영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대한항공은 괌 사고 이후 안전운항을 위해 20년 동안 총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아울러 2008년 안전관리시스템(SMS)을 구축하는 한편, 2009년에는 안전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세이프넷’을 개발해 도입하기도 했다.

조 선대회장은 ‘한 번 더 사고 나면 죽는다’는 각오로 안전운항에 사활을 걸었다고 한다. 조 선대회장의 ‘안전혁신’으로 대한항공은 1999년 8509편 화물기 추락사고를 마지막으로 2000년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인명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는 ‘무사고’ 지속으로 보험료가 가장 낮은 항공사로 평가받기도 한다. 한 관계자는 “조 선대회장은 대한항공의 자회사이자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도 안전기준만큼은 LCC가 아닌 대한항공에 버금가는 기준을 적용하도록 지시할 정도로 안전 경영에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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