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승부로 오일쇼크 극복… 위기에 더 강했던 ‘항공업계 거인’
“유가는 적응하는 것”
70년대 고유가, 장비 가동률↑
이후 중동노선 본격 확대 계기
“경영학은 시행착오 정리”
이론 추종 아닌 현장경험 중시
“한번 더 사고 나면 죽는다”
무사고 절대안전 혁신 이끌어
한진그룹이 ‘항공 업계의 거인’으로 불리는 고 조양호 선대회장 서거 5주기를 맞아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지구가 너무 작았던 코즈모폴리턴(세계인)’을 공개해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평전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담은 이후 반세기 가깝게 최일선에서 한국 항공 산업을 이끌어온 조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과 함께 한진그룹이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발전해온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울러 ‘그룹 CEO’가 아닌 한 명의 ‘코즈모폴리턴’으로서 조 선대회장이 가졌던 고민과 인간적인 면모들도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조 선대회장의 리더십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는 만큼 평전을 통해 조 선대회장의 경영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 경영 = 조 선대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CEO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 파동)가 발생했을 당시다. 조 선대회장이 대한항공에 입사한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었다. 특히 1978년 2차 오일쇼크 때는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이 수천 명을 감원했을 정도로 항공 업계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조 선대회장은 역발상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다른 항공사들과 달리 원가는 줄이되 시설·장비 가동률은 되레 높이면서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인력과 항공기 수를 줄이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타 업체들과 달리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불황에 호황을 대비한 것이다. 그 결과 대한항공은 오일쇼크 이후 중동 여객 수요를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중동 노선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유가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당시 조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스템 경영론’ 창시 = 조 선대회장은 평소 경영학을 ‘경영의 원리’가 아니라 ‘경영의 결과’로 정의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조 선대회장은 ‘경영학이란 수많은 경영자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룩한 성과를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며 “조 선대회장은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 대부분 인문서였고 경영서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조 선대회장에게 경영은 경영학 이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업과 기업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 조 선대회장은 ‘장남의 자격’이 아니라 ‘경영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그는 1974년 대한항공 입사 이후 정비·자재·기획·정보기술(IT)·영업 등 전 부문을 두루 거치며 항공·운송 시스템을 면밀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또 조종사 라이선스를 획득했으며 엔진 소리만 듣고도 항공기 정비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조 선대회장은 본격적으로 CEO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에는 항공·운송업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며 ‘CEO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조율하는 지휘자가 돼야 한다’는 이른바 ‘시스템 경영론’을 창시하기도 했다. 조 선대회장은 시스템 경영론과 관련해 “임직원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규정과 매뉴얼을 충분하게 이해하고 반복훈련을 통해 생활화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정확하고 단호하게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절대안전을 향한 도전 = 조 선대회장은 1999년 대한항공 회장으로 취임한 날부터 대한항공의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자처했다. 대한항공 한 임원은 “미주 지역 본부장 시절 하루에 100대 가까운 항공기가 머리 위에 떠 있음을 생각하면 순간순간이 아찔한데, 조 선대회장은 전 세계 상공에 수백 대가 떠 있는 것을 늘 염두에 두셨다”고 말했다.
특히 1997년 대한항공 항공기가 괌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조 선대회장은 안전 경영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고 경영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대한항공은 괌 사고 이후 안전운항을 위해 20년 동안 총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아울러 2008년 안전관리시스템(SMS)을 구축하는 한편, 2009년에는 안전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세이프넷’을 개발해 도입하기도 했다.
조 선대회장은 ‘한 번 더 사고 나면 죽는다’는 각오로 안전운항에 사활을 걸었다고 한다. 조 선대회장의 ‘안전혁신’으로 대한항공은 1999년 8509편 화물기 추락사고를 마지막으로 2000년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인명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는 ‘무사고’ 지속으로 보험료가 가장 낮은 항공사로 평가받기도 한다. 한 관계자는 “조 선대회장은 대한항공의 자회사이자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도 안전기준만큼은 LCC가 아닌 대한항공에 버금가는 기준을 적용하도록 지시할 정도로 안전 경영에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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