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여도 괜찮아’…36년 만의 단체전, 여자 기계체조 선수들은 활짝 웃었다[파리올림픽]
“집중!”, “호흡하고!”
29일 프랑스 파리의 베르시 아레나에선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예선이 열렸다. 개최국 프랑스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함성을 뚫고 까랑까랑한 한국어 음성이 경기장에 퍼졌다. 1988 서울 대회 이후 3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에 출전한 한국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 선수들의 목소리였다. 여서정(22·제천시청), 이윤서(21·경북도청), 엄도현(21·제주삼다수), 신솔이(20·강원도체육회), 이다영(20·한국체대)으로 이뤄진 여자 대표팀은 이날 평균대를 시작으로 마루운동, 도마, 이단평행봉 순으로 연기를 펼쳤다.
첫 종목 평균대에선 재미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평균대에 올라가서 연기하는 건 한 명인데, 왠지 다섯 명이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폭 10cm 평균대 위에서 연기하던 한 명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면, 아래에서 대기하던 나머지 네 명의 몸도 그 방향으로 기울었다. 선수들은 혹여나 긴장해서 실수할까 봐 목청껏 서로를 응원했다. 연기를 끝내고 내려오면 대견하다는 듯 서로를 꼭 안아줬다. 그렇게 이단평행봉까지 모든 종목을 무사히 마쳤다.
한국은 이날 4개 종목에서 152.496점을 얻었다. 12개 참가국 중 꼴찌로,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따지는 못했다. 예선 탈락을 했어도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사실 한국은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선수들도 결선 진출 실패에 대한 아쉬움보다 3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 무대를 밟은 것에 만족감을 표현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여서정은 “꼴등으로 올림픽에 왔으니까 그냥 즐기면서 하자는 생각이었다”며 “다들 다치지 않고, 실수 없이 잘하는 것들을 해서 아쉽기보단 후련하다”고 미소지었다. 신솔이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윤서는 “파리에 오기 얼마 전 부상이 있어서 걱정을 했다”며 “올림픽 단체전에 출전한 것이 너무 영광이었고, 함께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가장 열띤 응원을 펼친 이다영은 “프랑스 관중들의 소리가 너무 커서 제 목소리라도 잘 들리라고 더 크게 외쳤다”며 “그래서 더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나온 것 같은데 목이 너무 아팠다”고 빙그레 웃었다.
예선에서 탈락했다고 해서 아무런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다. 엄도현은 “꿈만 꾸던 무대에 설 수 있어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며 “단체전이 잘 되려면 스스로가 체력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꼈다”고 했다.
한편 도마에서 1, 2차 시기 평균 14.183점을 기록한 여서정은 예선전 상위 8명 안에 들어 결선에 올랐다. 시몬 바일스(미국), 안창옥(북한) 등과 메달을 놓고 겨루게 된 여서정은 “제 것만 잘하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여자 도마 결선은 3일 밤 11시20분에 시작한다.
파리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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