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금 지연사태’ 큐텐, 무슨 의도로 적자 e커머스 줄줄이 샀을까 [안재광의 대기만성]

2024. 7. 2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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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서울 강남 신사동 티몬 본사 모습 / 사진=한국경제신문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금 지연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셀러(판매자)들 일부가 판매 대금을 정산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소비자 피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우선 주문을 취소해도 환불 조치가 제대로 안 이뤄지고 있어요. 신용카드사 결제를 대행하는 PG 업체들이 티몬, 위메프에서 결제뿐만 아니라 취소까지 막았기 때문인데요. 이런 식으로 가면 결국에는 티몬, 위메프에선 셀러와 소비자가 모두가 돈을 못 받게 되는 사태까지 이를 수 있어서 우려가 됩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2010년 설립된 쿠팡과 함께 한때 ‘소셜 커머스 3인방’으로 불렸죠. 지금은 쿠팡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쿠팡이 커졌지만요. 월간 앱 이용자 기준으로 국내 6, 7위 정도 해서 꽤 규모 있는 e커머스로 꼽히고 있어요. 월간 결제 추정액이 올 6월 기준으로 티몬은 약 8000억원, 위메프는 3000억원을 넘습니다. 합치면 1조1000억원에 달하고요. 그런데 만약에 이 돈이 다 묶이게 된다면요. 최악을 가정하면 1조원가량이 지급불능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티몬, 위메프는 큐텐그룹에 속해 있죠. 큐텐은 2022년에 티몬을, 2023년에는 위메프를 각각 인수했습니다. 또 인터파크 쇼핑, AK몰도 사들였고요. 올 들어선 미국에서 꽤 유명한 온라인쇼핑몰인 위시 인수에도 성공했습니다. 큐텐은 G마켓을 창업한 구영배 대표가 이끌고 있는데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회사를 많이 사놓고 판매대금 정산조차 못한 것일까요.

 

 ◆한·미·동남아 아우르는 e커머스 구상

큐텐이란 회사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22년에 티몬을 인수하면서부터입니다.
 구영배 대표는 G마켓을 2009년에 미국 이베이에 판 뒤 싱가포르로 건너갔고 여기서 세운 게 큐텐이었어요. 큐텐은 해외 직구몰 같은 것입니다. 한국 판매자가 큐텐에 입점해 싱가포르에서 물건 팔 수 있고요.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이베이와 10년간 경쟁하지 않겠다는 조건이 있어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한 것이었죠.

 그런데 이 10년이 지나고 ‘족쇄’가 풀리게 되면서 한국으로 다시 들어 옵니다. 그런데 이때가 쿠팡이 한국 온라인쇼핑 시장을 장악할 때였어요. 코로나 때 온라인 주문이 폭증했는데 배송 잘되는 쿠팡으로 몰렸잖아요. 쿠팡의 질주 탓에 하나둘 낙오자가 생겼고요. 그게 바로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 쇼핑, AK몰 같은 큐텐이 나중에 인수한 곳들이었어요.

 구영배 대표는 이런 쇼핑몰을 비교적 싸게 샀는데요. 적자가 이미 많이 나고 있어서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이 거의 없었거든요. 심지어 돈도 거의 안 주고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현금 대신 줬다고 합니다. 큐익스프레스를 나중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테니 상장하면 지분 팔아서 현금화하란 것이었어요. 사실 큐텐이 가장 눈독을 들인 회사는 11번가였는데요. 11번가는 주주들이 현금이 아닌 지분은 안 받는다고 해서 성사가 안 됐습니다. 11번가는 지금도 안 팔려서 매물로 나와 있죠.

 어쨌든 큐텐은 이렇게 인수한 쇼핑몰을 엮어서 ‘크로스보더 e커머스’로 판을 다시 짜요. 티몬, 위메프에 큐텐 해외직구 상품을 넣고요. 반대로 큐텐에도 티몬, 위메프 판매자를 넣어서 역직구에도 나섭니다. 이 구상의 하이라이트는 미국 위시를 올 들어 인수한 것인데요. 기존에 구영배 대표가 사업 기반으로 삼고 있는 동남아와 한국, 여기에 북미 대륙까지 아우르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크로스보더 e커머스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어요.

 업계 분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구영배 대표는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처럼 국경을 초월해서 직구, 역직구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되는 통합 쇼핑몰을 구상했다고 해요. 마침 K-뷰티, K-푸드 같은 한류 바람도 해외에서 거세기 때문에 한류 상품의 전진기지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봤어요. 또 이런 해외 간 상품 판매가 많아지면 이걸 보관하고 배송하는 건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에 맡겨서 처리하려고 했어요. 구상대로만 된다면 큐익스프레스의 성장은 보장이 된 것이었죠. 그래서 나스닥에 상장해서 대규모 자금을 한 번에 조달할 수 있으로 판단한 겁니다.

 어떻게 보면 쿠팡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쿠팡은 한국에 사실상 모든 사업이 있고 해외라고 해봐야 대만 일부 있는데 아직은 규모가 작죠. 



 

 ◆위시 인수가 자금난 계기 된 듯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위시 인수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티몬, 위메프를 인수할 때와 다르게 위시를 살 땐 현금이 2300억원가량 들었다고 해요. 큐텐은 이 돈을 치르느라 현금이 바닥났고요. 그래서 큐텐 셀러들에게 정산금을 제때 못 주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게 작년 말, 혹은 올해 초부터였다고 해요.

 이 정산금이란 게 구조가 이래요. 우선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면 이 돈이 큐텐에 들어오죠. 그럼 큐텐이 이걸 갖고 있다가 수수료 일부를 떼고 나머지 돈을 정해진 날짜에 셀러에게 정산해 줍니다. 그 기간이 대략 한두 달쯤 걸린다고 하고요. 그래서 거래액의 한두 달치 돈이 큐텐에 머물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큐텐이 위시 인수하면서 돈을 크게 쓴 뒤에 정산도 제때 못해주니까 셀러들이 엄청나게 항의하고요. 자기들 정산금을 위시 인수에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돈이 하루 이틀만 늦게 들어와도 부도가 날 수 있죠. 그런데 큐텐이 정산을 제대로 못해 주니까 그걸 여기저기에 호소하고 다녔어요.

 그런데도 큐텐의 정산 지연은 크게 이슈가 안 됐는데요. 큐텐은 싱가포르 회사고 셀러는 대부분 한국 회사라 그런 것 같아요. 금액도 티몬, 위메프에 비해 작았고요. 그런데 큐텐 셀러 중에 티몬과 위메프 셀러를 겸하는 곳도 있고요. 또 셀러 사이에 큐텐의 정산 지연 소문이 퍼졌어요. 그래서 티몬, 위메프 셀러들도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상품 팔았는데 나중에 돈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어요. 상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빠지겠다고 한 곳이 하나둘 생긴 겁니다.

 이렇게 해서 거래액이 감소하면 티몬, 위메프의 현금 흐름에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지난달에 100억원어치 거래가 됐는데 이번 달에 90억원어치로 줄면 정산할 돈이 부족해지는 것이죠. 단순 계산으로 부족한 돈이 10억원이라고 할게요. 그럼 이 10억원을 자기자본으로 메우거나 빌려야 하는데 둘 다 불가능해요. 왜냐면 티몬, 위메프는 적자가 그동안 많이 나서 자본잠식 상태거든요. 자본도 없고 대출도 안 됩니다. 정산을 제 날짜에 못해 준 것도 이런 식으로 구멍이 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요.

 티몬 결제 추정액 흐름을 보면 지연 사태가 일어나기 전달인 올 6월에 갑자기 늘어나는데요. 평소 5%가량 할인 판매하던 문화상품권이나 포인트를 10% 할인해서 대대적으로 팔았다고 해요. 이렇게 하면 일시에 대량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거든요. 결국 다 빚이 되는 것이지만 당장은 정산금을 막을 순 있으니까요. 

 그럼 티몬, 위메프는 어떻게 될까요. 현 상황에선 회생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죠.

 티몬, 위메프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오픈마켓 사업자인데요. 얼마나 매력적인 판매자를 확보 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그런데 이미 판매자의 신뢰가 훼손돼서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까지 갔어요. 특히 결제 금액이 큰 여행사들이 이번에 타격을 많이 받아서 전부 이탈했습니다. 여기에 티몬, 위메프 직원들도 이미 많이 나갔고요. 핵심 조직인 상품 바이어들은 거의 다 나갔다고 해요.

 문제는 아직도 정산을 못 받은 분들이 많다는 것인데요. 티몬, 위메프의 거래액이 월간 1조원으로 잡으면 최악의 경우 이 돈이 고스란히 결제 미이행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결하기 위해선 모기업인 큐텐이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데 큐텐도 돈이 없어서 정산 못해주긴 마찬가지인 것 같죠. 이 상황에서 큐익스프레스 상장도 사실상 불가능해졌으니 사태 해결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 희망은 구영배 대표가 직접 나서는 것인데요. 본인 사재를 출연하든 새로운 투자자를 찾든 해서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해 봅니다.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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