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정치 문법 깬 트럼프 행정부, 기대에서 시작해 카오스로 끝나[해리스vs트럼프⑤]

2024. 7. 2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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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주의 근간 둔 자국 우선주의, 가치보다 이익 중심
상황 따라 오락가락…내부 핵심 인사도 이탈
2021년 1월 트럼프 시위대가 의사당 앞에 모인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2016년 말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투표 결과는 그가 레드넥(중산층 이하 백인 노동계층)만이 지지하는 별난 후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깼기 때문이다. 검증된 정치인이자 유력한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은 더욱 뼈아팠다.

승리를 이끈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구호를 본뜬 슬로건. 트럼프는 자신의 슬로건대로 반(反)이민, 작은 정부, 외교적 고립주의(Isolationism) 등 공화당 내에서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보수 정책을 임기 내내 내세웠다.

미국 유권자들은 오랜 국외 전쟁과 국가부채, 중국의 도전에 직면해 위기감과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세계의 경찰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점잔을 빼던 패권국의 지도자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사업가 출신 후보가 먹히던 순간이다.

하지만 숫자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대내외 질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아 철군 문제로 그가 직접 뽑은 국방장관은 사임했고 동맹국들과의 관계는 악화했다. 무엇보다 각종 비리혐의와 코로나19 방역 실패 등으로 임기 말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反이민·리쇼어링이 핵심


2017년 1월 첫발을 뗀 트럼프는 임기 마지막 날까지 220개(13765~13984호)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쏟아냈다. 그는 첫해에만 55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당시보다 많은 것이었다.

행정명령은 미국 대통령의 독자적인 정책실현 수단으로서 의회 승인 없이 서명하는 즉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행정부가 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

기존 주류 정치권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트럼프는 임기 내내 이 행정명령을 십분 활용했다. 행정명령 제도는 조율과 타협보다 강한 결단력, ‘속전속결’ 전략을 선호했던 트럼프 자신의 성향과도 맞았다.

특히 임기 첫 달에 발효된 행정명령만 7개였으며 그해 1~4월 사이 집중된 주요 행정명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을 나타내고 있다. 전통적 보수주의에 입각한 이들 정책은 자유와 안보를 내세우는 한편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일 먼저 리버럴인 ‘오바마 지우기’에 나섰다. 임기가 시작된 1월 20일(현지 시간) 서명한 최초의 행정명령(13765호)은 공공건강보험 의무가입 등을 담고 있는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개정령이었다. 전 정부가 증가시킨 예산과 각종 친환경 규제 등을 철폐하며 국가부채를 줄이고 세금을 낮추는 대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지지기반인 블루칼라 노동자와 중산층의 일자리를 지킨다는 명목의 반이민 정책도 이어졌다. 이 역시 미국에서 성장한 불법체류 청소년들의 추방을 유예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기조와 상반된 것이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13767호), 단기 취업 전문직 종사자 대상 H-1B 비자를 엄격하게 운영하는(13788호) 등의 조치가 대표적이다.

기업에는 당근과 채찍이 주어졌다. 법인세율을 21%까지 내리는 동시에 미국 복귀 기업에 대한 공장 이전 비용을 보조하는 한편 해외 생산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관세를 35% 부과했다. 저임금을 좇아 중국, 멕시코 등에 생산시설을 구축한 자국 기업이나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외국 대기업에 대한 경고였다.


 중국 견제·코로나 대응방식 문제 돼

중국 견제와 기업들의 리턴을 돕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은 전 정부부터 추진됐으며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이 초당적 공감대를 지닌 분야였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 2018년 3월 트럼프는 중국산 수입품 1300여 개 품목(연간 500억 달러 규모)에 25%의 ‘관세폭탄’을 던졌다. 2019년 5월에는 사실상 화웨이와 미국 기업, 정부기관의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13873호)이 발효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임기 초 라스무센 리포츠의 여론조사 결과 테러위험국가로 지목된 무슬림 7개국(리비아·소말리아·수단·시리아·예멘·이라크·이란) 국적자의 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하는 반이민 조치에 대한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층에서 34%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오바마 전 대통령, 대권주자인 버니 샌더스 등의 주도로 반대 시위까지 벌였던 상황이었다.

문제는 해가 갈수록 트럼프가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급진적이거나 일관되지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데 있었다. ‘광인 전략(Madman Strategy)’을 연상케 하는 트럼프의 태도에 점차 미국 내에서는 물론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임기 초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천명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다자협상보다 양자협상에 집중했다. 상대 국가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양자협상은 단기적으로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내 편’의 결속을 와해한다는 단점이 있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무임승차론’을 강조하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경을 비쳤다. 2019년에는 한국, 일본 등 ‘부자 나라’라고 지목한 우방에도 본격적으로 천문학적인 명세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한국에 기존 분담금의 4배인 50억 달러(7조원), 일본에는 기존보다 3배 인상한 80억 달러(약 9조원)를 요구하며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2018년 말에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결정했다. 이에 트럼프가 직접 뽑은 강경론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줄줄이 사퇴했고 높았던 미군 내 지지도도 하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독재자를 만나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러시아와는 관계 회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과는 직접 핵협상을 하겠다는 명분에서였다. 이 같은 태도는 그의 정권 초기부터 불거졌던 ‘러시아 대선 개입설(러시아 게이트)’을 떠올리게 했다. 트럼프는 대북제재에 나서던 기존 입장을 버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3번이나 정상회담에 나섰지만 기대하던 결과물은 없었다. 국내에선 “노벨평화상을 노리고 무리수를 둔다”며 빈축을 샀다.

임기 중반부를 넘어서며 트럼프 지지율은 계속 낮아져 일부 여론조사에선 30%대까지 떨어졌다. 2019년 탄핵소추를 불러온 우크라이나 게이트와 정부 예산 셧다운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게이트는 트럼프가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에서 4억 달러 군사원조를 해주는 대가로 재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후보의 비리를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탄핵소추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트럼프는 정치생명을 연장했지만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했다는 여론은 결국 지지율에 마지막 타격을 가했다. 트럼프는 감염증 확산 초기부터 스스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코로나19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결과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2020년 11월 대선에서 패한 트럼프는 결과에 불복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지지자들은 미 의사당을 점거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그 결과 그는 두 번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대통령으로 남았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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