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종말의 시간 [한승훈 칼럼]

한겨레 2024. 7. 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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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속적 종말론의 징후는 신비한 예언서 속이 아니라 가까운 역사 속에 있다. 그 징후란 자격 없는 실세의 국정 개입, 국가의 법적 체계를 파괴하며 사익을 추구하려고 하는 측근 세력, 시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통치자 등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3월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전국집중촛불 81차 촛불대행진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당혹스럽다. 40년 만에 ‘엠제트(MZ) 세대’ 취급을 벗어나 ‘영(young)한 척’을 할 수 있는 중년 아재가 되나 했더니, 과거의 ‘영포티’들은 이제 ‘영피프티’가 되어서 계속 젊은이로 살겠다고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연예계의 ‘어른’들이었던 트로트 사천왕의 당시 연령과 근접한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많은 자리에서 ‘어린놈’ 취급을 받고 있다. 최근 집권당의 전당대회에서는 40대 중반의 인사가 청년 계층을 대변하는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얼마 전까지 30대가 당대표였던 정당에서 말이다.

오늘날 젊음의 종말은 지연되고 있다. 청년 기준의 상한선은 사회 주류 세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한없이 높아지고 있다. 온전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동경하지만 가능하면 미루고 싶은 무언가이다. 그래서 나이의 권력을 누리면서도 젊음의 특권 또한 포기하지 않으려는 문화적 전략이 힘을 얻는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막상 중년 취급을 받게 되면 심히 복잡한 기분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바로 앞의 세대가 언제까지나 계속 젊은이로 살겠다고 하니 우리는 대체 언제쯤이나 어른 대접을 받게 될지 조바심이 들 뿐이다.

‘욕망하지만 미루어져야 할 종말’이라는 주제는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14만4천명의 신자가 모이면 세상의 끝이 오고 새 하늘 새 땅이 열린다고 믿는 종교단체가 있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계시록에 등장하는, 종말의 때에 천사들에 의해 이마에 도장이 찍힐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확대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이 교단에서 창작한 교리는 아니고,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등장한 몇몇 기독교 계열 신종교들이 공유하는 믿음이다. 문제는 이 교단이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편 결과, 정말로 그 이상의 신자를 모아버렸다는 것이다.

최근 필자의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이 교단 이탈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약속된 수의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실망해서 교단을 떠난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일부는 교단에서 예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은근슬쩍 교리를 바꿔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14만4천명이 가입자 전체를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교리 시험에 합격한 이들만을 가리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적 종말론에는 특정한 시점을 설정해놓고 그때가 오면 세상이 뒤바뀔 것이라고 하는 유형도 있지만, 인간의 행위가 그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그런 ‘시간의 가속’에는 신자를 모으는 것만이 아니라, 특정한 주술이나 의례를 수행하는 등 세계가 끝날 때 ‘일어날’ 것으로 예언된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일으키는’ 행위 전반이 포함된다. 인간의 참여가 종말의 때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미루려는 행위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의 세계가 부조리와 고통으로 경험될 때, 인간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도 종말론적 사유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현재의 집권 세력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에게 이 체제의 ‘종말’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대통령 임기 종결과 함께 자연히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시한부 종말’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3년은 너무 길다”고 외치며 시간을 가속하려 한다. 모든 진영에서 인기 정치인들에 대한 메시아니즘적인 열광이 일어난다. 그들이 현 정권의 종말 이후 새로운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세상이 끝나야 한다는 사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속적 종말론의 징후는 신비한 예언서 속이 아니라 가까운 역사 속에 있다. 그 징후란 자격 없는 실세의 국정 개입, 국가의 법적 체계를 파괴하며 사익을 추구하려고 하는 측근 세력, 시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통치자 등이다. 이런 사태들은 시민 대다수가 이 시간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게 하는 조건들이지만, 2016년과 같은 종말론적 사건은 지연되고 있다. 현재의 정권이 직전에 탄핵당한 정권보다 월등히 나아서가 아니라, 10년 사이에 두번이나 급변이 일어난다면 국가의 정상적인 질서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우려 때문이다.

임박한 종말이 지연되면 누군가는 이익을 본다. 어느 세대는 늙지 않고, 어떤 종교는 지속되며, 어떤 정권에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든 종언을 향한 압력이 밀려들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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