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역습" 모까지 파 먹는다…'관리 사각' 혈세도 줄줄[초점]

김혜인 기자 2024. 7.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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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제초' 왕우렁이 공급 전남 9개 시군 5034㏊ 피해
공급 32억·방제 5억 '혈세 이중 지출'…대리신청 의혹까지
'온난화 탓' 겨울나기 개체 급증…농민 "근본 대책 마련을"
20년전부터 생태계 교란 우려 제기…"실효성·농법 재검토"
[영암=뉴시스] 김혜인 기자 = 24일 오전 왕우렁이 어린모 피해를 입은 전남 영암군 시종면 한 논에서 왕우렁이­­가 갓 심은 어린모를 갉아먹은 탓에 곳곳이 비어있다. 2024.07.24. hyein0342@newsis.com

[무안=뉴시스]김혜인 기자 = 전남 대표 친환경 제초 농법으로 자리 잡은 왕우렁이가 기후 변화로 개체 수가 급증,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전남도가 매년 예산 수십억 원을 들여 왕우렁이 사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어린 모 갉아먹는 피해를 막고자 방제에만 또 다시 혈세를 쓰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왕우렁이 대리 신청 관행에 따라 실제 수요보다 많은 공급으로 보조금도 줄줄 새고 있다.

농민과 전문가는 농법 실효성을 재검토하고 방제 작업을 넘어서는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암=뉴시스] 김혜인 기자 = 24일 오전 왕우렁이로 어린모 피해를 입은 전남 영암군 시종면 논농가에서 농민이 빈 논을 바라보고 있다. 2024.07.24. hyein0342@newsis.com.

공급 32억·방제엔 5억, 왕우렁이 이중 혈세 지출 '촌극'

29일 전남도에 따르면 올해 전남도와 21개 시·군(목포 제외)은 32억1600만원(도비·시군비)을 들여 친환경·일반 농가 논 2만 92562㏊에 제초용 왕우렁이를 공급했다.

그러나 지난 겨울 이후에도 왕우렁이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잡초가 아닌 어린 모까지 갉아먹으면서 피해가 발생했다.

우렁이에 의한 피해 규모는 9개 시군(강진·고흥·해남·장흥·영암·무안·완도·진도·신안) 논 5034㏊으로 잠정 집계됐다.

겨울이면 자연 폐사해야 할 왕우렁이가 따뜻한 기후로 생존·번식을 거듭하면서 피해가 확산한 것이다. 실제 올겨울(지난해 12월~올해 2월) 광주·전남 평균 기온은 5.1도로 역대 겨울 중 가장 따뜻했다.

급기야 우렁이가 수로 등지를 타고 공급 신청을 하지 않은 농경지에까지 흘러들며 피해가 커지고 있다. 올 봄 이후 모 내기를 3~4번씩 한 농가도 있다.

피해 확산이 이어지자 도와 각 시군은 예비비 5억2400만원을 들여 농가에 친환경 인증 살충제를 공급, 방제에 나섰다. 한 쪽에선 공급, 다른 한 쪽에선 퇴치에 혈세를 이중으로 붓는 촌극까지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남도는 농림축산부 지침에 따라 이모작·겨울철 논 고르기(로타리)·수거를 통해 모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농민들은 기후 변화에 따른 근본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관계자는 "고령화하는 농촌을 고려하면 수거와 철저한 방제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온난화에 따른 개체 수 변화에 맞춰 전향적인 보완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함평=뉴시스] 김혜인 기자 = 1일 오전 전남 함평군 나산면 한 마을에 왕우렁이 공급확인·보조금 지불 동의서가 놓여있다. 2024.07.01. hyein0342@newsis.com

'실수요 없는 대리 신청 관행' 혈세도 줄줄

일부 지역에서는 왕우렁이 공급 사업 '대리 신청' 관행 탓에 보조금 혈세도 낭비되고 있다.

도가 왕우렁이 공급 사업을 추진 중인 21개 시군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상당수 이장 또는 농가 대표가 농가를 대신해 해마다 사업 참여 신청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리 신청으로 원치 않은 농가까지 왕우렁이가 공급, 공급업체에 불필요한 보조금까지 지급되면서 혈세가 새고 있다.

특히 함평군에서는 왕우렁이 일괄 대리 신청 논란이 불거졌다. 농가가 왕우렁이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확인 날인도 누군가 날조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우렁이 공급업자가 농가가 부담해야 할 사업비의 10%까지 대납하며 '사업을 위한 사업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경남도에서는 왕우렁이 공급 확인·검증 절차를 통해 보조금 집행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실제 경남 일부 시군은 조례에 따라 읍면 사무소가 보조금 집행에 앞서 무작위로 농가 별 실제 공급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업체 측에는 우렁이 공급 증빙 사진도 첨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해남=뉴시스] 김혜인 기자 = 24일 오후 왕우렁이로 어린모 피해를 입은 전남 해남군 문내면 논농가에서 왕우렁이 떼가 산란을 위해 모여있다. 2024.07.24. hyein0342@newsis.com

20년 전에도 외래종 왕우렁이 위험 예고…"실효성·농법 재검토"

왕우렁이 겨울 나기에 따른 모 피해, 생태계 교란 우려는 20여년 전부터 예고됐다.

2007년 농촌진흥청 '왕우렁이 생태 및 방제체계 연구 보고서'에 보면 당시에도 간척지인 해남·강진에서 왕우렁이로 인한 모 피해가 확인됐다. 왕우렁이 밀도가 높을 수록 수질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왔다.

왕우렁이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꼽은 100대 최악의 침입 외래종으로, 일본 14개 현은 우렁이 농법을 금지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도 왕우렁이를 생태계 위해성 1급으로 지정했다.

환경부는 왕우렁이를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려 했지만 지난 2019년 농업계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우렁이 농법의 실효성·환경 영향 등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전무하다. 관계 부처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환경단체는 기후변화에 따른 왕우렁이 농법의 실효성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래종 반입 절차 강화도 역설했다.

박수완 전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인위적으로 방생한 탓에 왕우렁이 2차 포식자가 없다. 경제성·유기농을 표방해 외래종을 무차별 도입한 결과다. 수로에서 하천·강으로 흘러가는 길목에 차단망을 설치, 확산을 막아야 한다"면서 "정부가 농법 실효성·환경 영향을 재검증해야 한다. 대체 농법 연구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전남도는 "가격이 저렴하고 제초 효과가 탁월한 왕우렁이 농법 외에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 방제 홍보와 함께 피해 최소화에 힘쓰겠다. 보조금 집행 과정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hyein034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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