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년 가느니 현역 입대”...공보의 65% 급감, 시골 보건소 비어간다

오유진 기자 2024. 7. 2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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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기간 육군 2배, 징벌 수준”
농어촌 오지 등에서 복무하며 지역 의료를 책임지는 공중보건의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의과 공보의의 경우 신규 배치 인원이 2020년 742명에서 올해 255명으로 4년 새 65% 줄었다. 사진은 충북 충주시에서 치과 공보의가 주민을 진료하는 모습. /충주시

경북 의성군은 인구 5만명 중 45%가 65세를 넘은 농촌 지역으로 병의원이 충분치 못하다. 그런데 의성군 일대 보건지소(보건소 하위 기관) 13곳은 격일로 문을 연다. 의과 공중보건의(공보의) 7명이 대부분 두 곳씩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월 전공의 대규모 이탈로 대형 병원 곳곳에서 의료 공백이 발생하자, 지방에서 근무 중인 공보의를 데려다 투입했다. 여기에 더해 새로 배치되는 공보의도 줄고 있다. 의성군에 매년 새롭게 배치되던 공보의는 2명이었지만, 올해는 1명만 할당됐다. 최근 몇 년 새 공보의 대신 일반 병사로 복무를 택하는 젊은 의대생들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농어촌 의료 취약지의 노인 진료 등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공보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742명이었던 신규 배치 의과 공보의가 올해는 255명으로, 4년 새 약 65% 감소했다. 지난 2015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올해 새로 들어온 의과 공보의(255명)는 복무 만료자(471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복무를 마치고 빠져나간 공보의 빈자리를 보충하는 새로운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전남 해남군 보건소는 공보의가 줄면서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보건지소 순회 진료를 시작했다. 해남군 보건소는 의과 공보의 5명이 보건지소 10곳을 순회한다. 공보의 1명이 보건지소 2곳을 맡아 진료하는 셈이다. 충북 옥천군 보건소는 의과 공보의 3명이 보건지소 8곳을 돈다. 비교적 수도권과 가까운 강원 춘천시 보건소 역시 비슷한 처지다. 춘천시 보건소는 공보의 1명이 보건지소 2~3곳을 맡는다. 그 중 한 곳은 일주일에 한 번 공보의를 만날 수 있다. 공보의가 보건지소에 가지 않는 날은 문을 열지 않아 곧바로 지역 의료에 진료 공백이 생긴다. 공보의 입장에서도 여러 보건지소를 담당하는 순회 진료는 힘든 업무다. 익명을 요구한 공보의 A씨는 “같은 행정 구역의 인근 보건지소라고 해도 30~40km 거리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에서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순회 진료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했다.

의료계에서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전공의 파업’으로 대형 병원에 공보의들이 대거 파견되면서 생긴 지방의 진료 공백도 문제지만, 공보의 복무 자체를 기피하는 구조적인 요인이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일반병의 2배 이상인 복무 기간, 나아지지 않는 처우 문제 등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의과 공보의는 육군 병사보다 군 복무 기간이 2배 이상 길다. 육군 일반병의 복무 기간은 18개월이지만, 공보의·군의관은 37~38개월이다. 의대생 병역은 크게 ‘현역’ 아니면 ‘공보의·군의관’이다. 의대생 때 군에 다녀온 사람 등을 제외한 전공의 대부분은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등록돼 육군 등 일반병으로 입대할 수 없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의대생이 병역의무로 ‘공보의·군의관’의 길을 택했지만, 최근엔 병사들의 생활이 향상됐고 복무 기간도 줄어 일반병을 선택하는 의대생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전공의가 돼서 공보의·군의관으로 갈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등이 군에 다녀오지 않은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과 전공의 139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74.7%(1042명)가 일반병 입대 의사를 표했다. 이 중 89.5%는 “공보의·군의관 복무 기간에 매우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협의회는 “3년 하고도 3주(공보의) 또는 6주(군의관)라는 징벌적 수준의 군 복무 기간은 더욱 막막하게 다가온다”며 “의과대학 학생의 현역 입영 증가 현상의 영향으로 공보의 제도의 존립이 우려된다”고 했다. 복무 기간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병 처우는 크게 개선되고 있지만 공보의는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병사 월급은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최근 2년 사이에 83만원이 올라 올해 165만원(육군 병장 기준)이다. 같은 기간 공보의는 206만원(일반의 기본급 기준)으로 제자리걸음이다. 일반 병사와 공보의 월급 차이가 41만원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젊은 의사들 사이에선 “공보의 근무를 하면 (복무 기간이 늘어) 2억~5억원 정도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현역으로 군 복무를 빨리 마친 뒤 의대를 졸업해 개원하면 시간도 아끼고 경제적으로도 훨씬 이득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공보의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해 복지부는 “복무 기간을 점진적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국방부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공중보건의(공보의)

공보의는 군 복무 대신 36개월간 섬이나 농어촌 보건소·보건지소 등에 배치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말한다. 1개월간 논산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뒤 근무지가 결정된다. 의료 인력이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오지나 외딴섬 등 농어촌 의료 취약 지역의 의료 혜택 부족을 메우기 위해 생긴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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