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밸리 계약 해지…CJ, 그렇게 억울할 일인가[딥뉴스]

CBS노컷뉴스 윤철원 기자 2024. 7. 29.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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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일방적 협약 해지? "입장 바꾼 건 CJ"
8년 동안 공정률 3%…"발 뺄 궁리만 했나"
'CJ라이브시티 사업중단 반대' 기자회견. 연합뉴스


바둑에는 '초읽기 시간공격'이란 게 있다. 주어진 기본시간을 다 사용한 기사는 다음 수를 1분 안에 둬야 한다. 이른바 '초읽기'에 걸린 상대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본인의 수를 두는 전략이다.

경기도가 일방적 협약 해지? "입장 바꾼 건 CJ"


지난 1일 경기도가 CJ라이브시티와의 K-컬처밸리 사업협약 해제 발표 직후, 관계자들 입에서 이 단어가 나왔다. 경기도가 CJ로부터 '초읽기 공격'을 당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배경은 이랬다.

사업종료 시한(2024년 6월30일)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달 21일, CJ라이브시티측과 경기도는 사업기간 연장에 사실상 합의했다. 양측은 한 달여의 협의를 거쳐 사업 기간 연장을 위한 조정안을 마련했다. 이제 CJ라이브시티측이 본사(CJ ENM) 의견 청취 후 최종 입장을 통보하면, 경기도 역시 김동연 지사 최종 보고만이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흘이 지난 25일 오후, CJ라이브시티측은 돌연 입장을 번복했다. 올초부터 줄기차게 요구해온 '국토부 조정안'(지체상금 감면 등)을 경기도가 수용해야 사업기간 연장에 동의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한 달여의 협상은 수포로 돌아갔고, 사업종료까지는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주말과 휴일인 29, 30일을 빼면 평일 기준 3일밖에 시간이 없었다. 경기도는 부랴부랴 사실상 사업종료 마지막날인 28일 CJ측에 협약 해제를 통보했다.

경기도가 일방적으로 협약을 해제했다는 CJ측의 주장에 경기도가 황당해 하는 이유다.

경기도 관계자는 "본사 의견을 듣고 갑자기 입장을 바꾼 건 CJ측"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어떻게든 CJ가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GH(경기주택도시공사)와 한국부동산원(국토부 산하기관)까지 끌어들여 국책사업화하려 했었다"며 "예민한 지체상금 감면 문제도 국토부 조정안 조정절차(감사원 사전컨설팅 등)가 끝난 뒤 결과를 보고 재논의하기로 CJ라이브시티측과는 협의를 끝낸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K-컬처밸리 아레나 조감도. 연합뉴스


지체상금은 민간사업자가 기한 내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배상금이다. 법적 근거 없이 임의로 경기도가 지체상금을 감면해 주면 경기도에 재정적 손해를 초래하게 돼 배임과 특혜 등의 혐의로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관계자는 "어느 공무원이 자기가 감옥갈 수 있는 일에 나설 수 있겠나"라며 "수도 없이 지체상금 감면 문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막판에 또다시 지체상금 감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사업 추진 의지가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CJ측이 줄곧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혀온 것도 종국에 경기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로 경기도가 협약을 해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 사업 무산의 책임을 경기도에 떠넘기려 한 의도로 이 관계자는 읽었다.

당시 협상과정을 중재했던 고양지역 한 국회의원도 경기도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21일 CJ라이브시티도 (사업 연장 협상안에) '오케이'했었고, 화요일(25일)까지도 경기도는 사업기한을 연장하는 내용으로 협약서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CJ측의 사업종료 직전 급작스러운 입장 전환을 두고는 바둑의 '초읽기 공격'을 떠올렸다. 경기도에 충분한 대응시간을 주지 않음으로써 '계약부재' 상황으로 끌고 가려 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해제 절차 없이 사업기한이 만료되면, '계약부재' 상황이 돼 협약을 기반으로 한 양측의 권리와 의무는 효력을 잃게 된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협약이 실효되면 지체상금(1천억여 원), 계약금(130억여 원), 협약이행보증금(170억여 원) 등의 환수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며 "사업권 확보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CJ와의 협약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토부 조정안 선수용 후 사업기간 연장이라는) 기존 입장을 한 번도 번복한 적이 없다"며 지난달 21일 합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8년 동안 공정률 3%…"발 뺄 궁리만 했나"

지난 1일 CJ라이브시티와 협약 해제 발표하는 김현곤 경기도 경제부지사. 연합뉴스

이번에 협약 해제의 결정적 요인인 된 지체상금 문제는 앞서 지난 2020년에도 불거졌었다. CJ측은 불가항력적인 대외 환경의 변화로 지연되는 공사 기간까지 지체상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폈다. 경기도 역시 CJ측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다만 당시에도 법적 근거 없는 감면은 특혜 및 배임의 소지가 있으니 완공 이후에 소송을 통해 감면받는 방안을 제시했고, CJ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일단락된 줄 알았던 지체상금 문제를 사업기한 만료 6개월을 남겨두고 CJ측에서 다시 들고 나왔다.

CJ측은 지난해 2월 한전으로부터 '대규모 전력 공급 불가 통보'를 받은 것과 고양시가 추진하고 있는 '한류천 수질 개선 공공사업 지연' 등을 불가항력적인 대외 환경의 변화로 판단했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T1(테마파크) 부지의 경우 2028년 이후에나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고 하고, 전체 사업 부지 중앙을 관통하는 한류천의 수질 개선은 2030년은 돼야 한다"며 "시설을 완공하고도 개장을 할 수 없는데, 지체상금은 수 천억 원 넘게 쌓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CJ측은 지난해 12월 국토부 산하 '민관합동 건설투자 조정위원회'에 지체상금 감면을 위한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위는 CJ측 요구안을 대부분 받아들였고, 경기도에도 지체상금 감면 등 7개 사안의 수용을 권고했다.

하지만 문제는 조정위의 권고안을 경기도가 받아들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데 있다. 조정위의 권고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조정위의 권고안은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강제력이 없다"며 "결국은 (권고안을 수용할 경우) 공무원이 다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한전으로부터 2022년 7월, 고양지역 전력공급난 우려에 대한 안내를 받고도 CJ측은 신청서 한 장만 내면 되는 상황에서 한 달이나 늦게 내 공급불가 상황을 자초했다"며 "그동안 CJ측은 어떻게든 공사를 지연시킬 구실만 찾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K-컬처밸리의 전체 공정률은 3%(아레나 공연장 17%)밖에 진척되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속에 경기도는 CJ측이 지난 8년 동안 난항을 겪어온 K-컬처밸리 사업에서 손을 떼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체상금 문제를 물고 늘어진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협약 해제 이후 CJ라이브시티의 본사인 CJ ENM의 대외 신인도가 상승하기도 했다.

경기도 고위 관계자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추진해온 김동연 지사가 CJ측과의 협약 해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이 뭐가 있겠냐"며 "CJ측이 사업 추진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 경기도가 신속하고 책임감 있게 사업을 재추진하기 위해 (협약 해제가)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앞서 경기도는 지난 1일 K-컬처밸리 사업과 관련 사업 시행자인 CJ라이브시티와의 협약을 해제하고 공공개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경기도는 K-팝 공연장(아레나)과 스튜디오·테마파크·숙박시설·관광단지 조성 등 기존 개발 컨셉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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