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책 트릴레마와 녹색금융[금융시장 돋보기]
요즘 미국 대선, 안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으로 시장 관심은 예전 같지 않지만 기후변화정책이 단기적인 시장 흐름에 휩쓸릴 일은 아니다. 탄소중립은 30년짜리 그랜드 프로젝트다. 오히려 지금이 시장의 다음 도약을 위해 그간의 성과를 복기하며 녹색금융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할 때다.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녹색금융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과 정책 의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적했듯이 기후변화 정책에는 트릴레마가 있다. 탄소중립과 재정안정, 그리고 정치적 수용성은 하나의 정책수단으로 동시 달성이 어렵다. 매년 수십 조원이 드는 탄소중립 재원을 모두 재정으로 조달한다면 정치적으로는 가능하나 재정은 30년 후 파탄 난다. 반대로 탄소세나 배출거래제 같은 민간 부담으로 모두 조달한다면 재정은 건전해지나 정치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 재정과 녹색금융 정책 믹스는 탄소중립 달성의 필수요소다.
다음으론 제도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지금의 제도와 규제는 모호하고 유인체계가 부족하다. 모호한 규제의 중심에는 K택소노미가 있다. 그린워싱을 경계해 무엇이 녹색인지 상당히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강제성은 없고 요건이 까다롭다 보니 민간은 적극적이지 않다. K택소노미를 발전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시행 3년 차를 맞은 유럽연합(EU) 택소노미 개선 논의는 시의성이 있다. 한마디로 녹색·비녹색 이분법으로 경제금융활동을 규정하는 것이 실효성 면에서 의문이라는 것이다. 녹색금융과 적색금융(화석연료)에 더해 제3의 영역인 전환금융을 연녹색으로 포섭해 녹색금융의 확장을 고민하고 있다. 당연히 시장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이다. 일본의 모호하고 무분별한 전환금융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녹색·연녹색·적색금융을 과학기반으로 분류하는 신호등분류체계의 택소노미는 지지부진한 우리의 녹색금융 활성화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소위 ‘진’녹색과 녹색 지향 활동을 모두 녹색금융 체계 속에 포섭해 금융의 흐름을 탈탄소와 저탄소 금융으로 전환하는 효과가 있다. 전환금융은 프로젝트별 자금용도 기반의 K택소노미를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가령 녹색금융 대부분을 차지할 녹색대출의 경우 자금용도가 특정되지 않은 운영자금에는 적용이 어렵다. 전환금융은 택소노미 적격(eligible) 경제활동에 대한 금융, 탄소중립 경영 목표를 평가하는 지속가능연계대출(SLL)과 지속가능연계채권(SLB) 등 녹색성을 지향하는 부문으로 녹색금융을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녹색금융이 활성화하려면 민관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의 길을 넓혀야 한다. 혼합금융은 하나의 녹색투자에 대해 공공과 민간이 위험과 수익을 공유하는 화학적 결합이 핵심이다. 지금도 공공과 민간의 녹색금융 실적이 있으나, 위험과 수익 공유보다는 투자 대상이 정부 따로 민간 따로인 경우가 많다. 더하여 지금의 혼합금융은 대규모기후투자 프로젝트로 집중될 필요가 있다. 기후테크를 위한 혼합금융은 뉴딜펀드 등의 경험과 정책의지로 시장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수소, 탄소 포집·사용·저장(CCUS) 등 기술과 경제성 양측면의 불확실성이 커 재정과 공공이 장기간 높은 위험을 공유하는 혼합금융이 절실하다. 특히 탄소차액계약제도(CCfDs) 같은 시장가격을 활용한 혼합금융이 배출권가격의 장기 저평가가 지속하는 상황에서는 서둘러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녹색금융은 탄소중립 달성을 지원하고, 시장 조성 과정에서 혼합금융 성격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콘트롤타워의 역할이 중요하다. 탄소중립 이행갭(implementaction gap)을 모니터링하며 녹색금융 규모와 우선순위를 정하는 배분효율을 생각해야 한다. 콘트롤타워는 반드시 물리적인 실체를 갖출 필요는 없다. 영국 녹색투자은행 같은 실체형 모델도 있으나, 유럽이 고심 끝에 도입한 인베스트 EU처럼 기존 정책금융기관의 조직과 전문성을 활용하되 지배구조로서 통합 기능을 행사하는 모델도 가능하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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