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루비로망 사태’가 말하는 것

박하늘 기자 2024. 7.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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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한알 직경이 3㎝가 넘고 당도는 25브릭스(Brix)에 달한다는 붉은색 포도 '루비로망'.

그러던 중 2010년대 후반 해당 묘목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출됐고, 국내 한 종묘업체가 2021년 품종 등록을 마쳤다.

하지만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인 것을 알면서도 국내 업체가 품종 등록을 하고 묘목과 과실을 유통할 수 있도록 한 우리 정부의 대처에도 의문이 드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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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한알 직경이 3㎝가 넘고 당도는 25브릭스(Brix)에 달한다는 붉은색 포도 ‘루비로망’. 최근 국내에서 이 포도의 상표권·품종 등록과 관련한 논란을 취재하다보니 끝맛이 마냥 달지만은 않다.

일본의 한 경매에서 한송이당 14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돼 유명해진 이 포도는 일본 이시카와현이 십수년의 세월을 거쳐 2007년 개발했다. 국제조약에 따라 2013년까지는 해당 현이 우리나라에서 품종 등록을 우선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현은 그걸 놓쳤다.

그러던 중 2010년대 후반 해당 묘목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출됐고, 국내 한 종묘업체가 2021년 품종 등록을 마쳤다. 이시카와현이 뒤늦게 국내 각 기관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로잡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묘목 유출을 막지 못하고 타국에서 품종 등록을 제때 하지 않은 점은 분명한 실책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인 것을 알면서도 국내 업체가 품종 등록을 하고 묘목과 과실을 유통할 수 있도록 한 우리 정부의 대처에도 의문이 드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 회원국 78곳 중 품종보호출원 건수 세계 9위, 등록 건수 세계 8위에 해당한다. 소위 ‘종자 선진국’을 표방하는 나라라면, 개발 주체를 분명히 알고 있는 신품종이 다른 주체에 의해 등록될 때 원래 개발자에게 이를 알리는 등 조처를 하는 게 더 성숙한 자세가 아니었을까.

이는 우리나라 역시 똑같이 당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매년 농촌진흥청과 산하기관을 필두로 많은 연구진이 더 나은 신품종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엄청난 시간·예산·인력을 들여 개발한 우리 품종이 다른 나라에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농정당국이나 검역당국의 안일한 태도도 아쉽다. 만에 하나 이시카와현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 ‘루비로망’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면 국내의 기존 재배농가에도 피해가 있을 수 있다. 이시카와현이 수년째 법적 움직임을 벌였음에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묻는 취재 기자에겐 모르쇠로 일관했다. 중국에서 신품종 묘목이 들어와 국내 재배가 이뤄지는데도 관련 농가수 등 기초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루비로망’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대처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자산업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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