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착취’ 당하는 노인들…가해자는 자녀·간병인 등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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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고령층 금융착취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고령자 금융 자산 착취에 대한 미국의 규제 동향' 보고서에서 신경희 연구원은 "인지 기능 저하로 노인은 착취당한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가해자가 자녀·손자 등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착취가 있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어려워 다수의 피해 사례가 당국에 보고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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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명세 정기적 검사 필수
금융기관 개입 방안도 필요
#70대 A씨는 주택연금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얻고 싶었지만 번번이 아들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A씨는 본인이 물려받을 집을 왜 아버지 마음대로 처분하느냐며 화를 내는 아들의 기세에 눌려 주택연금 가입을 포기했다.
#노인 B씨는 거동이 불편해져 방문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성실하고 친근하게 대해주는 요양보호사 C씨에게 B씨는 본인의 신용카드를 맡기고 장보기 등을 부탁했다. 이후 C씨가 B씨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본인 몫의 장을 보는 것은 물론, 명품 가방을 결제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를 추궁하자 C씨는 허락을 맡았기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고령층 금융착취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앞선 사례처럼 금융착취 대부분이 자녀나 친척·지인 등 매우 밀접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를 당하고도 사실을 밝히기 꺼리는 노인이 많아 통계를 집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금융착취를 당하는 노인이 많아질 가능성이 커 고령층 금융교육 확대와 예방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 ‘금융착취’ 가해자 대부분은 가족·지인= 금융착취는 노인의 의사에 반해 재산 또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를 말하며, 국내에서는 경제적 학대와 유사한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 사례로는 ▲노인의 연금·임대료·재산을 갈취하는 경우 ▲노인의 동의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현금을 인출하는 경우 ▲본인의 빚을 노인에게 갚도록 하는 경우 등이 있다. 금융착취는 선진국형 사회문제 중 하나로 주로 미국·영국·일본 등 연금 생활을 하는 노인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 많이 발생한다.
금융착취의 가장 큰 특징은 주로 자녀나 지인 등 친밀한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2 노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동안 전국 37곳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1만9552건의 노인 학대 사례를 분석한 결과 경제적 학대가 397건이었다. 이 중 가정 내에서 발생한 학대가 312건으로 가장 많았다. 노인시설에서는 74건으로 2021년 22건보다 236.4% 늘었다.
경제적 학대 행위자와 피해노인의 관계를 살펴보면 아들이 167명(42.1%)이었으며 뒤이어 노인기관 관계자가 75명(18.9%), 딸이 44명(11.1%)으로 조사됐다. 가정 내에서 일어난 경제적 학대로 한정할 경우 아들에게 학대당한 비율은 50.3%에 달했다.
이처럼 대부분 가해자가 자식이나 노인시설 관계자 등 노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기에 노인들은 금융착취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거나, 피해 사실을 인지해도 이를 숨기며 피해를 키우는 경향이 크다. 자본시장연구원의 ‘고령자 금융 자산 착취에 대한 미국의 규제 동향’ 보고서에서 신경희 연구원은 “인지 기능 저하로 노인은 착취당한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가해자가 자녀·손자 등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착취가 있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어려워 다수의 피해 사례가 당국에 보고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 “금융기관 모니터링 등 예방 장치 도입 필요”=전문가들은 금융착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인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 동시에 착취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간한 ‘고령사회의 삶과 일 제12호’에서 정운영 금융과행복네트워크 이사장은 “가능한 자신의 통장은 스스로 관리하고, 관리가 어렵다면 무조건적으로 자식을 믿기보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통장 명세를 정기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은행에 일정 금액을 설정하고, 설정 금액 이상 인출되면 거래가 정지되거나 사전에 등록된 보호자에게 통보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개입도 요구된다.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모니터링을 통해 노인들이 사용하는 소비패턴에서 벗어난 결제가 이뤄지는 등 금융착취 징후가 포착되면 금융기관에서 당사자와 보호자에게 연락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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