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 비리 캐던 모범형사, 교통사고 후 저수지 속 주검으로
부검 말리던 경찰, 버닝썬 게이트 총책임자…9년 만에 의문사 재조명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010년 7월 29일 충북 영동의 한 저수지에서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남성은 이틀 전 실종된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계 이용준 형사였다. 이 형사의 죽음에는 몇 가지의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음에도 한 달 만에 자살로 내사 종결됐다.
그로부터 9년 뒤 이 형사의 죽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이 형사의 부검을 말렸던 경찰 간부가 2019년 불거진 버닝썬 게이트 수사의 총책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3년 연속 모범 경찰 표창을 받았을 정도로 성실했던 강력계 형사의 죽음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있을까.
◇부산으로 향하던 형사, 실종 이틀 만에 영동저수지서 주검으로 발견
이 형사는 실종 전날인 26일 오후 9시 20분쯤 역삼지구대에서 서류 하나를 복사했다. 이후 선릉역에 위치한 한 술집에서 알고 지낸 지 보름 된 서 모 씨를 만나 술을 마신 다음 날 실종됐다.
이 형사는 오전 9시 2분쯤 차를 몰고 경찰서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자신이 소속된 강력반에서 수사 중이던 사건 현장을 찾아 사진을 촬영한 뒤 차를 돌렸다.
그의 차는 오전 10시 32분 서초IC 부근의 버스전용차선 단속 카메라에 포착됐다. 차는 서울 요금소를 빠져나가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고 2시간 뒤인 12시 35분쯤에 경부고속도로 영동군 황간면 부근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차는 오른쪽 가드레일을 충돌한 후 3개 차선을 가로지른 후 중앙분리대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병원 후송 당시 이 형사는 구조대원의 부축 없이 혼자 걸어 들어올 만큼 멀쩡했다. 그는 이마에 난 찰과상을 치료받고 CT와 엑스레이를 촬영했다. 이후 병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에 간 뒤 스스로 링거를 뺀 채 병원을 몰래 빠져나갔다.
CCTV에는 그가 27일 오후 1시 47분쯤 병원에서 사라지는 장면이 담겼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 형사는 행방불명됐고, 이틀 후인 7월 29일 병원에서 2㎞ 정도 떨어진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 의문스러운 정황에도 '자살'로 한 달 만에 내사 종결…유족 반발
유족은 사건 초반부터 이 형사의 죽음을 경찰이 자살과 연결했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는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사인도 나오지 않은 초기 상황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기사가 나온 데 의문을 표했다.
당시 경찰은 가족들에게 부검을 강력히 말리는가 하면 동료들은 이 형사가 여자 친구 문제로 자살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형사는 잠깐 사귀었던 여자 친구랑 이미 헤어졌을 뿐 아니라 실종되기 전 두 달 동안 어떤 여자와도 만나거나 통화한 기록조차 없었다. 가족들은 여자, 금전 문제나 가정환경을 보더라도 극단 선택을 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유족은 부검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부검 결과 시신에서는 두피 출혈, 목 부분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다발성 표피박탈이 발견됐다. 체내에서는 수면제로 사용되고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는 디펜히드라민이라는 약 성분이 나왔다.
이 형사의 의료 기록을 살펴본 결과 어디에서도 약을 처방받은 적은 없었다. 교통사고로 이송된 이후 병원에서도 약을 처방한 적 없었고, 병원에서 저수지로 향하는 길 어디에도 해당 약물을 구입할 만한 곳은 없었다.
의문이었던 건 그의 폐에서 발견된 플랑크톤 성분이었다. 체내에서는 바다에서만 서식하는 플랑크톤인 '디틸륨(Ditylium)'이 검출됐다. 국과수는 "검사 결과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오타가 났으며 최종 부검 감정서에서 미처 수정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 형사가 실종된 당일 낚시터 인근에서 수상한 차량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실종 하루 뒤인 28일에는 젊은 남성이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이 형사의 가족이라고 밝히며 "무서워서 나갔다고 한다"며 안심시켰다. 확인 결과 가족, 지인 중에 전화를 건 사람은 없었다.
또 이 형사와 마지막으로 본 서 씨는 이 형사와 양주를 서너 병 나눠 마셨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이 형사가 평소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고 했다. 교통사고 직후 채혈 검사에서도 이 형사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1% 미만으로 확인됐다.
타살 가능성을 암시하는 정황이 쏟아지자 가족들은 이 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수사 결과를 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경찰-유흥업소 유착 의혹 '시끌'…이 형사, 관련 수사하다 제지당해
이 형사는 실종 당일 내비게이션에 부산에 위치한 한 정비소를 검색했다. 이 형사가 지구대로 출근하는 대신 부산으로 가려 한 이유와 최종 목적지였던 부산이 아닌 영동의 저수지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경찰이 조사한 실종 당일 행적을 살펴보면 이 형사는 술을 마시고 잠든 다음 날 아침 오전 9시쯤 강력반 형사의 전화를 받고 서 씨의 집에서 나와 맡고 있던 절도사건 현장에서 오전 9시 31분 사진을 찍었다. 이후 서초IC CCTV에 찍힌 시간은 10시 32분이었다. 이 형사는 상사의 전화를 받은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부산행을 결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형사는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집에 들른 것으로 파악됐다. 싱크대에는 바나나 껍질이 버려져 있고 잘 정돈돼 있던 욕실에는 수건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 형사의 사고 차 안에는 디지털 카메라와 수사 서류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 형사가 어떠한 사건과 관련해 정보원을 소개받고 취재를 위해 부산에 가려 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이 형사는 강남 유흥업소 비리를 조사하던 중이었다. 이 형사가 사망할 무렵 유흥업소와의 유착 의혹이 불거져 가족들의 의심은 더욱 커졌다. 이 형사의 지인에 따르면 사건에 대해 수사하려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제지당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세금 포탈' 구속 A 씨 사라지자 새 인물 등장, 이후 '버닝썬' 오픈
경찰과 유흥업소 간 비리의 중심에는 90년대 나이트 호객꾼 출신 A 씨가 있었다. 그는 폐업 위기에 몰린 룸살롱을 헐값에 인수해 몇천억 원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A 씨는 공인회계사 출신, 세무사 출신을 자금 관리팀으로 구성했고, 최측근으로 검사 출신을 뒀다.
세금 포탈 혐의로 2010년 구속된 A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찰과 유착관계가 드러났다. A 씨는 1심에서 징역 3년 6월, 벌금 30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A 씨가 자취를 감추고 난 뒤에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2011년 강남에 대형 클럽을 차린 인물 B 씨였다. 클럽에 물건을 납품하는 유통업체 업주는 A 씨와 유착관계가 드러나서 옷을 벗었던 경찰들이었다.
이후 B 씨의 클럽 MD는 또 다른 클럽을 차렸다. 승리, 정준영 등이 연루된 '버닝썬'이었다. 버닝썬은 B 씨의 클럽과 유통업체와 탈세 방법도 매우 닮아 있었다.
버닝썬 초기 수사를 하던 K 경위는 당시 초동 수사가 잘못됐다는 걸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한 뒤 이후 민원 부서로 발령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K 경위는 수사 총책임자의 직권 남용 문제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처벌 없이 사건은 흐지부지하게 끝났다고 전했다.
이후 버닝썬 수사 총책임자는 경찰직을 내려놓고 대형 로펌으로 이직했는데, 그가 이 형사의 부검을 말렸던 형사과장과 동일한 인물로 밝혀지면서 이 형사 의문사가 재조명됐다. 이 형사의 죽음과 버닝썬 게이트의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물증은 없지만, 유족은 아들의 죽음이 순직으로 인정돼 명예를 회복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r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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