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인간 승리의 축제… 세계를 울린 ‘희소병’ 셀린 디옹
“지구가 무너질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어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노래 ‘사랑의 찬가’)
캐나다 출신 팝스타 셀린 디옹(56)이 26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에펠탑 오륜기 조형물 아래 공간에 우뚝 서 있었다. 밤하늘엔 올림픽 성화로 점화한 열기구가 보름달처럼 떴다. 국민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 ‘사랑의 찬가(L’hymne à l’amour)’가 디옹의 맑고 힘 있는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파리 센강 일대에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파리 하계 올림픽 개막식 최고의 순간은 셀린 디옹이었다. 근육이 경직되고 발작을 일으키는 희소병 ‘강직인간증후군’을 앓으며 노래와 공연을 중단한 지 1년 반 만인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디옹은 지난달 다큐멘터리 ‘아이 엠: 셀린 디옹(I Am: Celine dion)’에서 노래 도중 발작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선 “노래할 때마다 목을 졸라오는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디옹은 쩌렁쩌렁한 발성으로 병이 무색한 모습이었다. 미국 NBC 개막식 중계 해설자인 가수 켈리 클라크슨은 “그녀는 금메달을 딴 보컬 선수”라고 말하다 방송 도중 울음을 터뜨렸다. 미국 AP, CNN,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도 “올해 올림픽 중 압도적인 최고의 무대”라며 “디옹이 승리의 복귀를 이뤄냈다”고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셀린 디옹은 캐나다의 상징”이라며 “개막식 무대에 서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날 디옹의 완벽한 무대 뒤편엔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다. 그가 앓는 ‘강직인간증후군’은 전 세계 약 8000명만이 지닌 희소병. 현재 완치제가 없다. 약과 운동 치료를 통한 증상 개선만이 가능하다. 소리와 촉각, 감정 자극에 따라 성대와 목 주변을 포함한 근육 경련이 심해져 가수에겐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디옹은 개막식 직전까지 매주 5일 운동을 하고 물리 치료 및 본연의 목소리를 되돌리기 위한 음성 치료를 받았다. 지난 4월 보그 프랑스와의 인터뷰에서 디옹은 “병으로 관절이 굳어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다”면서도 “기어서라도, 손으로 말을 하더라도 무대에 다시 오르겠다”고 했다.
이날 개막식 축하 공연은 디옹의 무대를 비롯해 12개의 대표 장면으로 프랑스의 상징물과 문화유산을 4시간여에 걸쳐 선보였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스타디움 개막식이 아닌 센강 일대에서 펼쳐졌다. 첫 문은 미국 팝 가수 레이디 가가가 분홍색 깃털 장식 사이에서 프랑스 발레리나 지지 장메르의 노래 ‘깃털 달린 내 것(Mon truc en plumes)’을 부르며 열었다. 물랭루주를 중심으로 각종 문학 작품의 밤 무대가 됐던 프랑스 카바레 문화를 상징한 것이다.
1900년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그랑팔레의 지붕 위에서 여성 성악가 악셀 생시렐이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를 부른 순간도 눈길을 끌었다. 시렐은 이날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속 여성 혁명가 마리안과 프랑스 국기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선보였다. 프랑스령 카리브해 출신 부모에게 물려받은 시렐의 까만 피부와 함께 다양성을 추구해 온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를 잘 대변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온몸을 철갑으로 두른 프랑스 국가 헌병대 여성 하사관이 금속 말을 탄 채 센강 위를 달려 올림픽기를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전달한 장면 또한 가장 파리다운 순간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회식 공연에 대해 “스타디움 개막식이란 패러다임을 창의적이고 예술적으로 바꾼 작품”(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정해진 규칙과 형식의 틀을 깨뜨린 또 다른 프랑스 혁명”(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문화적 다양성과 디테일한 장면 연출, 프랑스다운 위트의 조화로 개막식의 클리셰를 깨뜨렸다”(장유정 연출가)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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