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블랙 요원 명단까지 털렸다니, 나사 빠진 정보기관

조선일보 2024. 7. 2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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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대북 첩보 전쟁 최전선에 있는 국군정보사령부 해외 요원의 신상 등 기밀 정보들이 대거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이 발견돼 군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외교관 신분 등으로 공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뿐 아니라 신분을 숨긴 ‘블랙 요원’ 정보까지 유출됐다고 한다. 블랙 요원의 경우 신분이 발각되면 생명이 위협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 요원의 신상 정보는 다른 사람도 아닌 정보사 소속 군무원의 노트북을 통해 북한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군정보사는 북파 공작원 등 휴민트(인간 정보) 활동에 중점을 둔다. 국정원이 해외·대북 정보를 총괄하고 정보사가 비밀공작의 실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블랙 요원은 신분을 위장하고 해외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한다. 현지에 뿌리를 내리기도 어렵지만 휴민트를 구축하는 데 10년 이상 투자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노출된 요원들을 급히 귀국시켰다는 것은 어렵게 만든 해외 정보망이 통째로 무너질 위기라는 뜻이다. 한 번 무너진 정보망은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측에 정보를 제공해준 북측 인사의 목숨까지 위험해졌다.

지난 2018년에도 정보사 공작팀장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비밀 요원의 정보 등을 건당 100만원에 중국·일본에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푼돈에 동료의 목숨까지 팔아넘긴 것이다. 한동안 중국에는 요원 파견이 어려웠다고 한다. 2017년엔 우리 군의 심장부인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해킹돼 참수작전과 미국이 제공한 대북 정보 등 1500만장 분량의 기밀이 북으로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당시 국방장관은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직후에도 참수부대 소속 대위가 북한 공작원에게 가상 화폐를 받고 부대 작전 계획을 넘긴 사실이 적발됐다. 그 대가는 4800만원이었다. 올해 초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근무하던 인도네시아 근로자가 KF-21 전투기 개발 정보를 계속 수집했는데도 정부는 뒤늦게 알아챘다. 최근 미 연방 검찰이 미 중앙정보국 출신의 한국계 연구원을 기소하면서 국정원과 접촉한 사진을 공개할 때까지 정부는 미국의 동향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정보 기관이 총체적으로 나사가 빠졌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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