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샌프란시스코의 ‘우클릭’
24세의 알리 알진씨는 지난 2014년 전쟁을 피해 피란길에 오른 부모 손을 잡고 고향 예멘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발을 디뎠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미국 시민권자가 됐고, 어린 나이에 겪었던 고향의 참상은 어느덧 희미한 기억이 됐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여전히 매일이 전쟁의 연속이다. 새로운 전선(戰線)에서 그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골칫거리, 노숙자와 마약 사범들이다.
알진씨의 가족은 샌프란시스코의 테크 종사자들과 화이트칼라들이 기피하는 우범지대 ‘텐더로인’에 터를 잡았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생필품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고, 알진씨는 어린 나이부터 가게 카운터 일을 도왔다. 22일 가게에서 만난 그는 “범죄에 너그러운 민주당 때문에 심각해진 마약 문제는 이제 총격과 칼부림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생명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쳤는데, 우리 가족은 단 하루도 안전함을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철조망으로 둘러싼 가게 밖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마약 중독자 두 명을 가리키며 “꼭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내 고향 예멘을 싫어하는 미치광이지만, 당장 저 거리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없애 줄 수 있다면 누구든 뽑겠다”며 “수십 년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이미 자정 능력을 잃은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텐더로인에서 이라크, 멕시코, 파키스탄 등에서 온 이민자 점주들을 여럿 만났지만, 그들의 생각은 모두 알진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 저층에서 분출되기 시작된 분노는 차차 도시의 기둥인 중산층으로도 번지고 있다. 구글의 한 엔지니어는 “구글은 빅테크 중에서도 회사 문화에 진보적 가치를 강조하는 회사인데, 하루는 ‘눈이 예민한 동료를 배려해 업무 중 형광색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자’는 얘기가 나오더라”며 “1만명이 넘게 잘린 마당에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해서 화가 났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은 올해에만 11만명 가까운 직원을 해고했다. 하루아침에 밥그릇을 잃은 사람들 중 풍요롭던 시절 패션처럼 달고 살았던 ‘정치적 올바름(PC)’의 덧없는 고상함이 지겨워진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최근 만난 샌프란시스코의 골수 민주당 당원은 “당장 샌프란시스코에서 공화당이 선거에 이길 일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분위기 변화를 과소평가할 경우 언젠가는 우리도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에 대한 배려와 포용을 장려하는 PC의 가치를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대의명분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밥이 먹고 싶은 사람에게 자꾸만 명분을 떠먹이는 정치는 과연 올바른가. 민주당이 60년간 장기 집권해 온 샌프란시스코. 그 도시에서 꿈틀대는 변화가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시사점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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