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협의그룹'을 더 신뢰하게 된 이유 [안호영의 실사구시]

2024. 7. 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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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체코 원전 수주보다 중요했던 합의 문서
나토 핵 공유보다 적 위협에 안전한 방식
'핵협의그룹' 저변의 한미 신뢰가 관건
핵협의그룹(NCG) 공동대표인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비핀 나랑 미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가 11일 미국 국방부에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서명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7월 9~11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그 계기로 7개국 정상과 면담하여 방산, 공급망, 반도체, 원전 등 문제를 협의하였다. 우리 안보와 경제 활로 개척을 위한 중요한 방문이었다. 그 방문이 체코 원전 수주의 쾌거로 이어졌는데, 더 주목할 것은 작년 4월 윤 대통령 미국 공식 방문 시 결성된 '핵협의그룹' 이행을 위한 중요한 합의를 이룬 것이다.

한·미 양국 대통령은 별도 면담을 통하여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지침'을 문서화하였다. 우리 국방부는 기존 미국의 공약이 '억제'에 중점을 두었다면, 공동지침은 '대응'까지 포함한 것이고, 한미 동맹을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필자도 이런 설명이 과장이 아니라고 본다.

첫째, 지침의 내용이다. 지침에 따라 핵 전력을 상시 배치 수준으로 하는데, 특정 한반도 상황에서 미국의 어떤 핵 자산을 어떻게 운용한다는 내용을 미리 설정해 두고 해당 자산 전개를 한·미가 지속 협의해 나간다는 내용이라고 알려졌다. 이에 기초하여 한·미 간에 핵·재래식 통합 훈련을 실시하고, 핵 위기 시에는 정상 수준에서 즉각 협의하기로 하였다. 미국의 확장 억제를 우리 국민들이 충분히 신뢰하지 못한 이유는 이것이 일방적 조치라는 인식 때문이었는데, '지침' 문서화에 따라 공동 계획, 공동 이행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둘째, '핵협의그룹'에 대한 미국 내의 높은 관심이다. 필자는 6월 말 미국을 방문하여 핵 전략을 오래 다뤄 온 전·현직 군 지휘관, 그리고 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백악관 핵 담당 고위 참모인 프레네 베디의 6월 7일 미국 군축협회 연설을 '미국 핵 전략 발전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베디 국장은 이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한·미 간의 '핵협의그룹'에 할애하고, 그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미국 의회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상원은 2025년 국방수권법안을 통하여 확장 억제 강화를 요청하면서, 특히 '핵협의그룹'에서 합의한 핵 협의 절차, 핵·재래식 통합, 정보 공유, 훈련, 연습 등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내용과 장애물 설명을 요구하였다.

셋째, '핵협의그룹' 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전술핵 재배치, 또는 나토식 핵 공유에 대한 요구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지침'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한반도 안보 상황에서는 '핵협의그룹'이 나토식 공유보다 우리 안보 확보에 더 효과적인 방식임을 알게 된다.

나토식 공유는 독일·네덜란드·벨기에·이탈리아·튀르키예 등 광범위한 지역에 전술핵을 배치하여 이것을 미국과 관할국이 공동 책임으로 관리하고, 유사시에는 이들 국가가 운용하는 전투기를 통하여 공중 투하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육상에 보관하는 전술핵은 항상 적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국토 면적이 좁은 우리나라는 이러한 노출 위협이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핵협의그룹'을 통하여 제공되는 핵 전력은 육상·공중·해상, 즉 미국의 핵 3축 체제 전반에 걸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위협이 적다. 이들 핵무기 사용의 최종 권한은 미국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부여되어 있는데, 이것은 나토식 공유도 마찬가지이다.

'핵협의그룹'이나 나토식 공유나 확장 억제를 가능하게 하는 최후의 보루는 동맹 간의 신뢰이다. 국제 안보·경제 상황의 급변 속에서 이러한 신뢰를 어떻게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이 현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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