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55] 루르드 성지의 거북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4. 7. 2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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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공간을 바꾸는 것이다. 공간을 이동함으로써 시간, 인간도 바뀌고 새로운 공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에너지! 여행 중에서도 성지순례가 압권이다. 성지(聖地)는 터에서 솟아나는 에너지가 순례자에게 삶의 의욕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가톨릭 성지나 유서 깊은 교회, 수도원을 가보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의 풍수적 원리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가톨릭 성지들은 거의 모두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국의 기도발 잘 받는 절터나 암자 터와 그 터 잡기의 원리적 구조가 똑같다. 어떻게 이렇게 전개 과정이 달랐던 양쪽 문명의 터 잡기 방식이 일치할까? 이쪽도 풍수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가톨릭의 루르드(Lourdes) 성지. 흰옷 입은 성모 마리아가 여러 번 출현한 장소이다. 로마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지이기도 하다. 1858년 베르나데트라는 14세 소녀가 18회에 걸쳐 성모마리아를 목격하면서부터 이 성지는 이름이 나기 시작하였다. 루르드의 특기는 치병(治病)이다. 지팡이를 짚고 갔다가 지팡이 버리고 온다는 소문이 나 있다.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병을 낫기 위해서 루르드를 방문한다.

나 같은 이교도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심은 희박하지만 ‘어떤 터이길래 여기에서 사람을 살리는 에너지가 나온단 말인가?’라는 문제의식은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한마디로 루르드는 ‘영구음수(靈龜飮水)’의 터였다. 신령한 거북이가 물을 먹는 형국이었다. 피레네 산맥에서 북쪽으로 100여 리 남짓 구불구불 흘러내려 온 지맥(地脈)이 강물 앞에서 멈췄다. 거북이는 장수의 상징이다. 가브드포강(江)은 U턴 하듯이 거북이 머리를 감싸고 흘러간다.

루르드의 뒷산 모습은 등짝이 둥그스름한 커다란 거북이 형상이다. 이 거북이가 맑고 시원한 벽계수(碧溪水)를 꿀꺽 꿀꺽 마시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피레네 산맥에서 내려온 강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해서 수만 명의 환자가 품고 온 탁기와 병기(病氣)를 싹 청소해 주는 상황이었다. 신령한 거북이의 입에 해당하는 지점에 마사비엘이라고 하는 동굴이 있었다. 이 바위 동굴에서 나오는 샘물이 영험해서 수많은 순례자가 이 물을 마실려고 한다. 이 터에는 흰색의 에너지가 자기장처럼 감싸고 있었다. 터의 고급스러운 에너지는 흰색으로 나타난다. 성모 마리아가 출현할 때 보이는 흰색 복장도 이와 관련 있어 보인다. 유럽의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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