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제도에 사람 끼워 맞추는 저출산 정책, 삶의 질 악화시킬 뿐”[월요 초대석]
저출산 근본 원인과 먼 대증적 해법… 관료-전문가 집단 정책 기득권 깨고
대통령 임기 중 ‘성과 조급증’ 버려야… 인구 감소해도 지자체 226곳 필요한가
한 반 학생 10명인데 9등급 나눌 건가… ‘인구개발 5개년 계획’이라도 세우자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이와 관련해 “아직 장기적인 추세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인구 정책은 인구를 늘리려고 하기보다 인구가 줄어도 사회가 잘 작동하도록 제도와 정책을 손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와 16일 만나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인구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을 1월 “더는 할 일이 없다”며 사퇴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이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고 했는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장의 출산율 제고가 아닌 인구 감소에 대비한 사회 전반의 연착륙을 준비할 것을 제안했다. 현 정부에서 부처마다 미래 대응 전략이 ‘주르륵’ 나올 줄 알았는데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정부마다 활동했던 비슷한 전문가들이 다시 모여 복지 중심의 저출산 정책만 논의했다. 복지 확대만 논의한다면 내가 할 일은 없다고 봤다.”
―복지 중심 저출산 정책이 왜 문제인가.
“복지 확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인구 정책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하면 가깝고 즉각적인 결정 요인부터 멀고 근본적인 결정 요인이 존재한다. 육아휴직 확대, 아동수당 지원 등은 가깝고 즉각적인 결정 요인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정책이다. 복지 정책은 결혼, 출산, 육아를 왜 힘들어하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근간으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어렵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나온다. 인구 정책이라면 인구의 구조적 변동을 이해하고 예측해야 하는데 그런 근본적인 접근이 없었다. 이를 복지 정책이라고 하면 되는데 자꾸 인구 정책이라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복지 정책과 인구 정책을 혼동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예를 들어 육아휴직을 계속 확대해도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는다면 다른 결정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아직 혜택이 부족하구나’ 하고 육아휴직 대상을 늘리고 급여를 올린다. 어린이집이 늘고, 아동수당을 주는 등 양육 환경이 계속 좋아졌는데도 정책 수요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한다. 주택 문제도 서울에선 심각하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다. 저출산 정책이 20년간 그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은 인구 정책이라는 큰 그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인구 정책으로 과감히 전환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첫째, 정책에 관여했던 정부 관료나 전문가, 언론이 기존 프레임에 갇혀 과감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특정 부처나 전문가 집단이 ‘정책 기득권’이 되어버린 거다. 둘째, 대통령 임기 중에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근본적인 대응을 제안하면 맞는 얘기라고 하면서도 너무 먼 이야기라 당장 정책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들 하더라.”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기존 정책에 대한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는 대학 학부부터 박사까지 5.5년에 마치게 하겠다고 했다. 빨리 사회에 나가면 빨리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교육부는 사실 제일 할 일이 많은 부처다. 교실에 30명 놓고 가르칠 때와 10명 놓고 가르칠 때는 교육 방식이 달라야 하지 않겠나. 3년 후면 한 해 20만 명 태어난 아이들이 학교를 간다. 이 아이들을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일렬로 줄 세울 건가. 교실에 10명도 앉아 있지 않는데 9등급으로 나눠야 하느냐 말이다.”
―대통령저출생대응수석비서관이 임명됐고, 앞으로 인구전략기획부가 신설된다.
“우리 사회 전반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저출산은 풀리지 않는다. 2030년, 2040년 우리 사회 모습을 그려보고 현재 정책과 제도가 그때 제대로 작동할 것 같은지부터 물어야 한다. 저출산대응기획부에서 인구전략기획부로 바뀐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저출산 대응으로 가는 순간 이 부처는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역할밖에 못 하는 것이고 기획이 아니라 사업 부처가 된다. 그렇다면 이 부처는 필요 없다.”
―어떤 정책이 미래에 작동하지 않을 정책인가.
“현재 기초지자체가 226곳이다. 한 해 80만 명 이상이 태어날 때는 지자체마다 사람도 있었고, 공통적인 행정 기능이 필요했다. 3년 전부터 한 해 출생아 수가 2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게다가 절반 이상 수도권에서 태어났다. 과연 226곳 모두 유지할 필요가 있나. 한 곳, 한 곳마다 행정 비용이 상당한데 감당할 수는 있나. ‘지방 소멸론’의 해결책이 지자체 226곳을 유지하는 것인지, 미래 인구 수에 맞춰 지자체 수를 줄여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소멸기금 10조 원을 89곳에 나눠주며 인구를 늘리라고 한다. 과거에 만든 제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데 인구를 늘려 그 제도를 다시 작동하자는 것이다. 제도를 사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제도에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화 지체 현상에 빗대 인구 지체 현상을 설명했다. 한국은 지금 인구 지체 현상을 겪고 있는 건가.
“아이 낳는 연령이 20대부터 40대에 걸쳐 있고, 가구는 1인부터 다둥이까지, 외국인도 섞여 살고, 사는 모습이 굉장히 다양해졌다. 그런데 사회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으니, 사람들이 한 꼭짓점을 향해 일렬로 달리는 거다. 대입, 노동시장, 사회보험 제도 등이 과거 그대로이다. 인구 구조에 맞지 않는 제도가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가 아니라 이 변화에 맞지 않는 제도가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생존 본능이 재생산 본능을 누르고 있다. 이를 인구 지체 현상이라고 봤다.”
―출생아 수가 지난달부터 지난해 대비 반등했는데…. 인구 지체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뜻인가.
“인구 그래프는 직진이 아니라 진동하며 움직인다. 그 진폭 가운데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쟁이 줄면 모든 에너지를 생존에 쓰지 않고 재생산에 쓸 가능성이 생긴다. 또 여성의 수가 줄면 분모가 줄어들어 출산율이 올라간다. 일본의 출산율 반등이 그런 경우다.”
―이민이 대안이 될 순 없나.
“이민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받아야 한다. 지금은 지난 수십 년간 제조업 공장을 유지했는데 당장 일할 사람이 없으니 공장을 돌릴 외국인을 뽑아 달라는 것이다. 경쟁력도 낮고 내국인이 오지 않을 것이 정해진 산업에 싼 노동력을 구해 과거로 회귀하자는 식이다. 이래선 안 된다. 인구가 줄어드는 2030년, 2040년 대한민국이 비교 우위에 있을 산업이 뭔가를 찾아내고 여기에 필요한 인재를 받아야 한다. 경쟁력 있는 산업도 내국인만으로 유지가 어려운 시점이 온다. 특히 연구개발(R&D) 인력난이 심각해질 것이다. 인구가 줄고 취업이 쉬워지면 석박사 학생이 급감한다. 두뇌 유치를 위해 미국 일본 중국과 경쟁해야 할 시점이 올 거다. 지금부터 우수한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는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기득권을 가진 기성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이민 정책을 펴야 한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는 저출산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70만 명대가 태어난 1990년생 청년보다 40만 명대가 태어난 2010년생 청년이 체감하는 경쟁 압박이 줄지 않았다. 인구가 줄었으면 경쟁이 주는 것이 당연한데 왜 그럴까. 서울, 딱 한 곳에만 경쟁 피라미드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쟁 피라미드가 여러 곳에 분산돼 있었다. 지금은 서울로 대학 가고, 서울에서 직장 잡고, 서울에서 집을 사야 하니 경쟁이 줄지를 않는다. 연령별로 스마트폰 동선을 분석했는데 25∼34세 청년의 동선은 서울 강남 종로 영등포 마곡, 경기 성남시 판교에만 몰린다. 서울이라는 꼭짓점만 바라보는 청년을 대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나 보육을 지원해도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지난해 출생아 수가 23만 명이다. 합계출산율은 어느 날 갑자기 2.0이 되지 않는다. 2035년에 출산율 1.0이 된다 하더라도 출생아 수가 30만 명이 안 될 것이다. 인구 감소세에 맞춰 국방, 교육, 산업 모조리 바뀌어야 한다. 인구의 거대한 흐름이 단기간에 바뀌지 않으므로 인구 흐름을 예측해 미래를 새롭게 그려 나가자는 거다. 개인적으로 ‘인구개발 5개년 계획’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본다. 쌍팔년도식이라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52) |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에서 사회학 석사, 인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인구학을 가르치고 있다. ‘정해진 미래’ ‘인구 미래 공존’ 등의 저서를 통해 인구 구조 변동에 따른 한국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베트남 정부 인구 정책 자문,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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