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동물은 ‘사유재산’… 방치되고 학대당해도 구조할 수 없다

허시언 기자 2024. 7. 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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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 사자' 바람이의 딸, 청주동물원으로 이송
부경동물원의 열악한 사육 환경에 방치됐음에도
동물은 '사유재산' 해당돼 적극적인 구조 불가능
동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도록 관련 법 개정 필요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예상보다 많은 동물들이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영동물원부터 기업 소유의 대규모 동물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설 동물원, 수많은 사육장과 불법 증식장을 생각하면 ‘사실은 자연에서 뛰어다니는 동물보다 갇혀 지내는 동물이 훨씬 많은 거 아니야?’라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의 소유가 돼 한정된 공간에서 지내게 된 동물이 모두 황제 대접이라도 받고 지내면 좋으련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 보전조차 힘든 동물들이 많습니다.

강릉 쌍둥이동물원에 이송된 바람이의 딸. 연합뉴스


청주시는 지난 23일 부경동물원에서 강원도 강릉시의 쌍둥이동물원으로 옮겨진 암사자 한 마리를 청주동물원에 데려오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암사자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말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동학방)으로부터 학대 논란을 빚었던 '갈비뼈 사자' 바람이의 딸입니다. 이 암사자는 지난해 7월 바람이가 구조될 당시 함께 구조되지 못하고 부경동물원에 남았습니다. 부경동물원은 아빠 바람이가 청주동물원으로 이송되자 실외 사육장에서 지내던 새끼 암사자를 바람이가 살던 실내 사육장을 옮겨 학대 논란을 사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살던 감옥 같은 공간에 딸이 대신 들어가게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홀로 구조된 바람이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청주동물원은 지난해 11월 폐업한 부경동물원에서 바람이의 딸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지만 부경동물원 측의 소유권 주장 때문에 임시 보호 시도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이후 지난 5월 부경동물원과 대구의 시내 테마파크 동물원을 함께 운영하던 대표가 임대료 등 운영비용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면서 동물들이 부채 대신 법원에 압류됐고,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경매에 부쳐진 동물들은 각기 다른 동물원들이 위탁·매입하면서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바람이의 딸도 이때 쌍둥이동물원으로 위탁되죠. 그러다 최근 부경동물원 대표가 청주시에 암사자를 기증하기로 결정하면서 바람이 딸의 이송이 결정됐습니다.

부경동물원은 열악한 사육 환경에 방치된 채 죽어가는 바람이가 조명되며 문제 동물원 폐쇄와 동물 구조·격리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좁고 밀폐된 전시실에 감금돼 있었지만 바람이가 구조된 후에도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동학방이 나머지 동물의 처분을 위해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연락을 하기도 했지만, 동물원 대표는 경영 악화로 먹이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동물 구조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2013~2024년 동안 부경동물원에서 사망한 국제적 멸종 위기종은 113마리에 달합니다. 사망신고 의무가 없는 동물과 대구 테마파크 동물원의 사망 기록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동물이 죽어나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동물자유연대 정진아 팀장은 동물이 ‘사유재산’에 해당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구조가 불가능했다고 답했습니다. “동물의 소유권을 포기시키거나 몰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소유자 측에서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구조가 불가능합니다. 다만 동물보호법에 의해 동물학대가 발생했을 때는 격리 등의 조치가 가능하긴 합니다. 동물자유연대 측에서는 부경동물원 사건을 동물학대로 보고 김해시에 격리 조치 등 개입을 요청했었죠. 하지만 담당 관할 문제 등으로 인해 격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말,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이 시행됐습니다.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개정 법 시행 후에는 본래 서식지와 동물 습성을 고려한 환경을 조성한 곳에서만 동물원과 수족관 운영 허가를 내릴 수 있게 된 것. 대폭 강화된 개정 법 시행 이후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사업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 필요성이 있는 동물들이 발생했을 때 보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을 몰수하거나 강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진 않았죠.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동물들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손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소유권을 제한하는 건 굉장히 엄격한 요건을 필요로 합니다. 동물이 재산으로 다뤄지다 보니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죠. 그래서 2021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폐기됐습니다.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국장은 필요에 따라 동물의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도록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해 동물을 구조·격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여기에 더해 동물이 학대를 당하는 상황에서 보호 조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임시조치나 긴급조치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현재는 ‘격리를 할 수 있다’ 정도로만 명시돼 있어 정확한 절차와 범위가 모호해요. 하루빨리 관련 법 개정이 진행돼야 부경동물원 사건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안전망이 갖춰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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