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재난의 치안화’ 시행령 정치
윤석열 정부가 재난을 대하는 태도는 증상적이다. 이태원 참사 때 유례없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는가 하면, 모든 애도행위에 대해 참사를 정치화한다며 비난했다. 재난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하던 윤 대통령은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독대에서 이태원 참사의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표면적으로는 갈지자 행보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난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거부감과 피해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정확히는 재난으로 촉발된 대중적 불신과 불만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데서 나온 방어적이고 무능력한 반응이다. 이명박 정부의 소고기 광우병 사태,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는 그들의 정치적 DNA에 깊이 박혀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7월9일 국무회의에서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해, 17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신설된 사회재난 유형 27종 중에 ‘국가핵심기반의 마비’ 항목을 추가하고 ‘마비’의 의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른 쟁의행위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로 인한 마비를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노동계과 민변은 즉각 반발했다. 헌법 33조에 기본권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단지 국무회의 의결로 가능한 시행령 수준에서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시행령은 파업뿐만 아니라, ‘그에 준하는 행위’라는 매우 폭넓은 범위로 국가 기반시설에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금융, 의료, 원자력, 환경, 식용수 등을 포함시켰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022년 11월 화물연대 파업이 ‘사회적 재난’에 해당한다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노동자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중대본을 구성한 것은 전무후무하다. 이태원 참사 당시 중대본을 꾸리지 않은 장관이 파업에 대해 중대본을 꾸린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최초의 부인과 회피는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낳는다. ‘이태원 참사는 신종재난이라 예측하기 어렵다’는 회피, ‘이태원 참사의 조작 가능성’이라는 부인은 한쪽에서는 재난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모든 말들을 ‘재난의 정쟁화’라는 차원으로 부정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자 파업과 같은 대중적인 불만과 동요를 ‘재난’이라는 범주로 묶어 통제하고자 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쟁의행위가 사회재난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이 정부에서 가능한 이유는 재난과 파업 모두 ‘반정부 세력들’이 정권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허구적 인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한쪽에서는 재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며, 다른 쪽에서는 재난을 과잉규정하는 이 모순적 행위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시행령은 단지 노동권 침해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재난·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국가에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생명·안전에 대한 권리와 국가 책임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이번 시행령으로 답변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도 신종재난이듯이 파업도 그렇다고. 앞으로 이 모든 재난에 대해 국가는 선제적으로 통제하겠다고. 권리의 요구가 치안에 대한 강화로 돌아왔다. 파업이 무력화되는 만큼 재난도 형해화되었다. 이렇게 모욕적일 수 있을까.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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