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알권리와 피의사실공표

기자 2024. 7. 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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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근거로 1991년 “정보 접근·수집·처리의 자유, 즉 알권리는 표현의 자유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판시했다. 알권리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헌법 21조 4항은 한계도 지적하고 있는데,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알권리는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 외부로 공표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시민들의 명예 혹은 개인정보 등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된다.

시민들의 내밀한 개인정보를 다루고 있는 공공기관은 이를 보호하는 게 법적의무이자 존재 이유다. 특히 범죄 사실을 수사하는 검찰·경찰은 확정되지 않는 범죄 혐의에 대해 중립을 지키며, 시민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이것이 알권리의 정신이다.

이를 위해 형법 126조(피의사실공표)는 “검찰, 경찰 그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분석하면 범죄의 구성요건이 ‘신분범’으로 되어 있다. 신분범이란 구성요건인 행위 주체에 일정한 신분이 있어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처벌해야 하는 주체와 처벌을 받을 대상이 같은 직업인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법은 존재하나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최근 이런 상황에 관해 다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경찰청 소속 수사관이 김재연 진보당 대표 입건 사실을 모 언론사 기자에게 제공해 언론보도로 이어졌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건설노조에서 1000여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김재연 대표는 위법적 피의사실공표라며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6월 재판부는 “기자에게 입건 사실을 제공한 행위는 위법한 피의사실 공표로 김 전 대표의 명예와 인권을 침해한 불법 행위”라고 판단하고 300만원의 국가배상판결을 내렸다. 관행적으로 이뤄진 피의사실공표에 대해 공식적 국가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고 이선균씨 정보를 유출한 경찰과 검찰수사관도 입건되었다. 지난달 27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공무상비밀누설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인천경찰청 경찰관과 인천지검 수사관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마약 사건 수사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와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는 걸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개적인 경찰 소환과 매일 이어지는 마약 관련 혐의 보도로 이선균씨는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고인이 되었다. 최근 검찰에서 김건희 여사를 비공개로 수사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법은 ‘만명’한테만 평등하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과거 피의사실공표는 검찰이나 경찰이 권력자를 수사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언론에 보도되면 수사방해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1987>에서 공안부장(하정우)이 윤상삼 기자에게 박종철 고문사건 수사 자료를 넘겨 신문에 보도될 수 있었다. 이런 예는 군사정부시절 예외적인 사례이고 현재는 법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피의사실공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공권력이 시민을 향해 폭력과 인권침해를 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수사과정에서 흘러나오는 보도는 알권리를 획득 하는 게 아니라 알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된다.

“나에게 한 문장만 준다면 그 어떤 누구라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나치의 선전국장이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남긴 말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바꾸면 “한 건의 피의사실을 제공한다면 누구라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가 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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