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아리셀 화재 그 후, 우리는 달라지고 있나

기자 2024. 7. 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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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하게 드러난 노동 최말단
참사 피해 상당수가 이주 여성
이제 그들 없이 살 수 없는 한국
아직, 들려오는 건 씁쓸한 소식들

2024년 6월24일 10시30분 경기 화성시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1분도 되지 않는 순간 불꽃과 연기가 작업장을 뒤덮었고 22시간이 지나서야 진압되었다. 23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중 5명은 한국인, 18명은 외국인이었다. 그중 17명이 여성이었고(한국 2명, 중국 14명, 라오스 1명),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가족이 모이고 장례를 치르고 정부 조사가 시작되었다. 경기도는 사건 백서를 만들겠다고 했고, 고용노동부에서는 리튬 취급 사업장 점검을, 산업통상자원부는 신종 소방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의 ‘대국민 보고들’이다.

그런데 정작 희생자와 부상자, 그리고 유가족을 위한 예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대국민 메시지와는 매우 다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화성시청 1층에 설치된 추모 공간은 다른 건물 지하로 옮겨질 예정이고, 유가족에게 지원되던 숙식 제공도 7월 말 종료될 것이라고 한다. 며칠 전에는 화성시 통리단장협의회 소속 주민들의 추모 중단 요구 시위까지 있었다.

가장 중요한 희생자 보상 문제에서 회사와 유가족의 협상은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단 한 차례 유가족과 만났을 뿐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회사는 유가족에게 개인별 문자메시지를 보내 보상안을 제시했고 국적과 비자에 따른 차등 보상을 주장해 유가족의 분노를 샀다.

무엇보다도 여성노동자의 희생이 큰 사건이라 여성의 관점에서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재외동포(F-4) 비자 신분의 노동자들이다. 이 비자로 입국한 분들은 규정상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지만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위해 단순노무직 취업은 금지된다. 따라서 불법취업으로 간주하고 강제출국 가능성을 전제해 국내 체류기간을 7년으로 한정하며 이후는 중국 임금을 기준으로 보상한다는 것이 회사 방침이다. 보상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사고 희생자 중 11명이 재외동포 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는 고용허가제 규제를 받아 사업장을 이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을 갖지 않은 교포 여성들에게 재외동포 비자는 한국 입국에 용이한 수단이 되어왔다. 2023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92만3000명 중 32.3%(29만8000명)가 여성이다. 이 중 재외동포 비자를 가진 사람은 9만8000명(32.9%)으로 8개 비자 범주(비전문, 방문, 전문인력, 유학생, 영주, 결혼이민 등)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 중 상당수는 단순노무직에 취업해 ‘불법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안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지만, 아리셀처럼 (실제로는 100명 이상이 일하지만) 50명 이내의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감독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하청의 하청이 구조화된 제조업에서 소규모 사업장으로 갈수록 여성이 많다. 흔히 중대재해라면 건설이나 중공업 같은 남성 사업장을 연상하지만, 전기전자나 화학물질을 다루는 중소영세 사업장에는 여성이 많다는 것이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여성은 꼼꼼하게 일하지만 낮은 임금을 줄 수 있고 일을 시키기도 쉽다는 현장의 통념들 때문이다. 파견인지 도급인지도 불분명한, 불법적 노동현장에서 자신이 다루는 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어떤 주의나 경고도 받지 못한 채 이들은 그날그날 고용되어 일한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첨단산업이란 수식어가 붙은 배터리 산업의 최말단 사업장에는 불법노동의 위험과 폭발·화재의 위험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주여성이다.

이주여성 노동자는 계급과 젠더·인종의 위계가 지배하는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그들은 ‘수입된 노동력’이 아니라 ‘노동자’이며,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제공하는 저임금 노동의 대가를 누리며 살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식당과 공장, 간병과 돌봄 등 ‘단순노무’로 취급되는 서비스직과 생산직의 수많은 일자리를 채우는 ‘조선족’ 노동자 없이는 지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 세계가 이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좌우로 대립하는 지금, 무작정 외국인력을 늘리고 필리핀에서 아이돌보미를 데려오면 그뿐일까? 이주민들을 맞기 위해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이주민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살아갈 한국인들에게 더 절실한 것일지 모른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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